뭐? 화장실 좀 깨끗이 쓰라고?(더러움 주의)

정말 더럽게 억울합니다.

by 박민우
20190526_093655.jpg 신발 여섯 켤레 아리에 침대, 보라고오오!


"화장실 좀 깨끗이 사용해 주셔야겠어요."


하나도 못 알아듣겠다. 호스텔에 상주하는 거구의 남자다. 방금 똥을 누고 나온 건 맞다. 수동 비데(물 호스)를 쓰면 바닥까지 물바다다. 휴지를 뜯어서 닦았다. 좋은 휴지다. 아껴야지. 휴지 세 칸으로 닦았다.


"무슨 말을 하는 거예요?"


나는 거구를 앞세웠다. 두 눈으로 확인하겠다. 그리고 결백을 주장하겠다. 호스텔만 전전한 세월이 20년이다. 하, 정말 나를 뭘로 보고. 더럽게 화장실 쓰는 인간들을 충분히 혐오하며 살았다. 그래, 도대체 뭘로 시비를 건 거야? 화장실 바닥 물기가 조금 있다. 휴지 열 칸을 써서 닦았으면 만족했겠네? 나름의 배려를 몰라줘? 하수구가 없는 미개한 화장실이 내 탓이야?


"이렇게 브러시로 바닥까지 닦으셔야죠."


거구가 브러시를 들어 변기의 목구멍을 쓱쓱 긁는다. 나는 유치원생이 된다. 변기가 목이 깊다. 밑에 흔적이 있다. 그래, 있다. 있다고오! 형편없는 수압 때문이잖아. 그래. 그거 내 똥 맞아. 물이 체념한 상태로 졸졸졸 나오는 변기잖아. 어제는 흔적 없이 사라졌어. 방심했다고. 바닥까지 제대로 쓸려갔나 확인 못 했어. 한국에선 안 해도 되니까. 이런 수압의 변기는 한국에선 있을 수가 없으니까. 이렇게까지 망신을 줘야 해? 다른 사람이 불쾌할 수 있으니까 조심해 주세요? 선반에 짐 한 가득 쌓아 놓은 콘스탄틴(러시아), 옷을 다 까발려서 아무 곳에나 놓는 신발 여섯 켤레 아리에(이스라엘)는 괜찮고? 청소하는 아주머니, 당신이지? 힐끗힐끗 나를 보더니 거구한테 이른 거야? 더러운 한국 놈, 뒤에서 수군댄 거야? 내가 연 찬장 문 일일이 닫고, 내가 앉은자리 테이블보까지 똑바로 해놓더니. 일부러 그런 거지? 꾸짖는 거지? 남의 눈 의식하며 깔끔 떠는 깍쟁이라고 생각했는데, 추접하고, 일 만드는 미개한 놈이었던 거야? 아냐, 이건 인종 차별이야. 내가 어떤 밤을 보낸 줄 알아? 목젖과 명치를 찌르고, 태우는 고통으로 식은땀 한 바가지 흘린 사람이야. 무사히 왔다는 기쁨조차 없어. 아프지 않았던 시간이 가장 가고 싶은 곳이야. 내가 백인이 아니어서야. 내가 만만해서야. 몸에서 악취가 펄펄 나나? 아픈 사람은 체취부터 고약하잖아. 나를 쫓아내고 싶은 거야? 망신 주고 싶은 거야? 어떻게 복수하지? 청소 아주머니 그만 힐끗대세요. 이제 솔질 잘할게요. 휴지도 스무 칸 뜯어서 바닥 물기 꼼꼼히 제거할게요. 이 놈의 호스텔 악질 후기로 보내버릴 겁니다. 두고 보세요.


"저는 한국어 가르치는 아제르바이잔 사람인데요. 혹시 시간 있으세요. 한국어 수업 시간에 와 줄 수 있나요?"


인스타그램으로 메시지가 와 있다. 바쿠 사진을 몇 장 올렸는데, 그걸 본 모양이다. 내가 숙소에서 얼마나 더럽고, 추한 사람인지 모르는 여자다. 적어도 내게 호감을 느낀다. 초롱초롱 학생들 앞에서 나는 새롭고 싶다. 지금의 치욕을 세탁하고 싶다. 어느 때보다 깨끗이, 공들여 샤워를 한다. 내 하루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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