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으로 하찮은, 지극히 개인적인 취향 고백

이렇게 다양한 취향이 모여서 제가 되었습니다

by 박민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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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회용 종이 빨대를 싫어해요. 환경이 먼저인 건 알지만, 입에 닿는 감촉이 왜 이리 거북할까요? 뜨겁지 않은 국물을 싫어해요. 수프를, 국물을 미지근해도 먹는 사람을 이해할 수가 없어요. 뜨끈하지 않으면 세상 모든 국물은 존재 이유가 없어요. 라면을 중간 정도 먹다가, 다시 끓여서 먹은 적도 있어요. 한국 사람이 뜨거운 국물에 유난히 집착하는데, 저는 한술 더 뜨는 거죠. 플립플롭을 좋아해요. 누구는 비치샌들이라고 하고, 또 누구는 쪼리라고도 해요. 발가락만 걸치는 슬리퍼요. 원래 브라질에서 신기 시작했대요. 브라질 아이들은 플립플롭 신고 축구도 어찌 그리 잘하나 몰라요. 발바닥에 자석이라도 달렸나 봐요. 플립플롭을 신으면, 발가벗고 거리를 활보하는 것처럼 자유로워져요. 지금 제 발등은 플립플롭 자국만 빼고 시커매요. 우스꽝스러운데 그게 또 여행자의 훈장 아니겠습니까? 같은 이유로 반바지도 좋아해요. 편하죠. 오래 입어도 뽀송하죠. 좀 멋져 보이는 것도 같아요. 아버지가 저 반바지 입는 꼴을 못 보세요. 태국 모시고 다닐 때, 온통 반바지 세상을 보고 적잖은 충격을 받으신 모양이더라고요. 아버지, 이제 저 반바지 입게 해 주세요. 그랬더니 네가 서양인이냐? 네가 외국인이야? 이러시더라고요. 반바지 입는 게 꼴 보기 싫으실 수는 있는데, 아버지는 혐오 수준이라 좀 신기해요.


스타벅스 로고가 세상 촌스럽다고 생각해요. 인어 공주인가요? 왕관은 또 뭔가요? 게다가 초록색에 흰색이요? 스타벅스 단골이긴 하지만, 로고를 볼 때마다 놀라워요. 초등학교 백일장에서 장려상 정도 받은 솜씨 아닌가요? 뭐 성공하면, 다 멋진 거죠. 어디서나 이 촌스러운 초록색 공주만 보면, 반갑긴 해요. 같은 미국에서 애플도 나오고, 스타 벅스도 나왔다는 게 신기해요. 하긴 미국 자동차 디자인도 참 구수하죠. 미국 자동차 보면서 와 멋지다 그런 적 있나요? 미국은 디자인 선진국인가? 아닌 것 같아요.


밥을 비벼 먹는 걸 좋아해요. 나물에 참기름, 구운 김 정도만 있어도 충분해요. 비빔면도 좋아해요. 김치를 드르륵 갈아서, 진짜 맛있는 김치 비빔면 만들 수 있어요. 마요네즈에 밥 비벼 먹어도 얼마나 맛있는데요. 수영장을 싫어해요. 이유는 잘 모르겠어요. 오성급 호텔에 화려한 수영장을 봐도 발조차 안 담가요. 대신 목욕탕은 좋아해요. 뜨거운 탕 속에서 몸 지지는 걸 좋아해요. 우리나라가 최고의 목욕탕 선진국이죠. 어딜 가도 목욕탕에 찜질방이 넘쳐나요. 이런 나라 없어요. 외국에 살다 보면 한국의 목욕탕이 너무나도 그리워요.


순대국밥은 무조건 순대만요. 내장 다 빼고, 순대만 들어간 순대 국밥을 좋아해요. 당면이 들어간 싸구려 타입이면 더 좋고요. 그럴 거면 순대 국밥을 왜 먹냐는데, 딱 그 정도가 깔끔하고 맛있어요. 세상에서 제일 맛있는 음식 중 하나가 저에겐 만두예요. 그러고 보니, 재료가 섞이는 불분명한 맛을 좋아하나 봐요. 누구는 그런 잡탕찌개스러운 음식이 싫다는데, 저는 어우러진 맛을 좋아해요. 우리나라 봉지 만두는 미슐렝 딤섬 맛집에 전혀 뒤지지 않아요. 어떻게 이런 만두를 공장에서 찍어낼 수 있을까? 사람이 굳이 애써서 만두를 빚을 필요가 있을까? 인간의 노동력은 쓸모가 없어지는 건 아닐까? 만두를 보면서 인류의 미래가 조금 무서워져요. 면발이나 떡국 떡은 펴져도 상관없어요. 퍼질까 봐 조마조마해들 하는데, 저는 그 꼬들꼬들함이 너무 당당하면 더 끓여요. 죽처럼 돼도 화가 안 나요. 쫄깃함에 대한 열망이 없는 거죠. 하루 지난 떡국이 그렇게 맛있어요. 그렇게 누그러진 식감을 선호해요. 이도 나쁜 편이 아닌데 말이죠.


꽃을 보면 눈이 하트가 되는 사람들이 신기해요. 예쁘군. 그러고 말아요. 자연 속에 있으면 좋지만, 쓰다듬으면서 교감하는 사람들이 역시 신기해요. 나무나 나물이나 다 그게 그거처럼 보여요. 꽃만 보면 카메라부터 들이대는 사람들이 참 아름답고 순수하다고 생각해요. 옷이 구겨지거나 뭐가 묻어도 기겁하지 않아요. 내 옷에 누가 그렇게 관심을 쏟겠어? 그렇다고 남의 시선에서 자유로운 사람도 아니에요. 노화로 쾡해진 얼굴에는 또 무척이나 억울해하고, 숨고 싶어 해요. 아이스크림은 초콜릿이 코팅된 돼지바류나 하겐다즈를 좋아해요. 녹차맛도 좋아하고, 민트 초코도 대환영이죠. 치킨은 양념 반, 프라이드 반이요. 단 한 가지 맛으로 시킬 용기는 아직까지 없네요(요즘엔 고기를 안 먹긴 하지만요). 김밥은 참치 김밥에 마요네즈를 한 줄 더 깔면 최고예요. 간짜장이 짜장면보다 1.5배 더 맛있다고 생각하고, 짬뽕 국물을 챙겨주지 않는 중국집은 다시는 안 가요. 떡볶이보다는 떡볶이 속 어묵이 더 맛있고, 어묵보다는 종이컵으로 마시는 국물이 더 맛있어요. 게장이 지구에서 가장 맛있는 음식이라 생각하고, 게장에 뜨거운 흰쌀밥을 비비면 우주에서 가장 맛있는 음식이라고 생각해요. 이런 취향도 사실 과거 시제예요. 커피도, 와인도 이제는 잘 못 마셔요. 몸이 잘 안 받아 줘서요. 좋아했던 많은 것들을 이런저런 이유로 보내주고 있어요. 매콤한 쫄면에, 튀김 만두를 휘적휘적 비벼먹고 싶은 날이네요. 깻잎 떡볶이에 튀김을 우악스럽게 비벼먹고 싶어요. 삶은 달걀을 반으로 으깨서, 떡볶이 양념에 비비면 캬아아!


PS 매일 글을 씁니다. 글의 힘을 믿습니다. 교감의 힘을 믿습니다. 어울림의 힘을 믿습니다. 보이지 않는 에너지로 이루어진 아름다운 자기장을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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