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른 세상 사람들, 부자 친구들

신기하고, 부럽고, 나 자신이 초라하게 느껴졌던 그때의 친구들

by 박민우


michael-heuser-0dW-eQVL0WQ-unsplash.jpg

80년대 부자였던 사람이 얼마나 되겠어요? 그런데도 나만 가난하고, 우리 집만 전세 살고, 우리 부모님만 배움이 짧다고 생각했어요. 가정 방문이 그렇게나 싫었어요. 꼭 못 사는 우리 집 형편을 들켜야만, 학생을 더 잘 이해할 수 있는 걸까요? TV 있는 집 손! 피아노 있는 집 손! 아버지 사무직 손! 아버지 건설업 손! 이런 걸 교실에서 왜 묻는 걸까요? 아이들이 눈 감으라고 하면 감나요? 어머니는 도시락 반찬으로 콩나물과 파래는 왜 싸주신 걸까요? 반찬 뚜껑을 열 때, 귓불까지 빨개져서는 가난한 내 반찬을 열심히 주워 먹어야 했어요. 친구들은 손도 안 대니, 저라도 열심히 먹어 치워야죠.


서울 혜화동에 있는 경신 고등학교를 나왔는데, 빈부의 차가 좀 극단적인 학교였어요. 성북동 재벌가 아이들과 삼양동, 미아리 가난한 아이들이 함께 학교를 다녔죠. 반장이랑 친해서, 같이 등교를 하곤 했어요. 요놈도 혜화동 저택에 살았어요. 학교랑 걸어서도 5분 거리인데, 아버지 차로 가자더라고요. 그때는 쉽게 볼 수도 없는 그랜저였어요. 문을 어떻게 열고 내려야 하는지를 몰라서, 땀을 삐질삐질 흘렸죠.


-상욱이 내린 쪽으로 내려라.


아버지가 반장 내린 쪽으로 내리라고 하시는데, 그렇게 또 치욕스럽더라고요. 소문으로는 고려인삼 창업주 손자였나? 그 친구랑도 가끔 어울렸는데, 방마다 전축이 있는 거예요. 침대도, 전축도 하나 없는 저는 그저 충격이었죠. 거실에는 미국판, 프랑스판 보그와 일본 논노 잡지들이 종류별로 가지런히 펼쳐져 있더군요. 부럽다는 생각도 안 들었어요. 어느 정도 차이가 나야, 그런 마음도 들죠. 아예 다른 종족이구나. 대문에서 현관까지 한참을 걸어가야 하는 집이 현실에도 있다는 게, 그렇게 비현실적으로 느껴질 수가 없었어요.


대학교에 들어가니까, 친구들의 스케일이 더 커지더군요. 세금을 우리나라에서 두 번째로 많이 내는 집, 롯데 백화점 와인의 4분의 1을 사들여서 쟁여 놓는 집(사놓으면 무조건 오른대요), 심심풀이로 집을 보고, 사러 다니는 친구 놈. 덕분에 갤러리아 백화점 라운지에서 공짜 커피도 얻어 마시고, 호텔 일식집에서 밥값을 깎는 진귀한 풍경도 목격했네요. 음식 값이 정확히 기억은 안 나는데 인당 40만 원 정도 나왔을 거예요. 그걸 당당하게 깎더라고요. 서빙 보는 사람이 그렇게 하십시오. 이러는 거예요. 명품도 VVIP들은 깎아준다더군요. 없이 사는 사람은, 가격표 가격만 전부라고 생각하잖아요. 다른 세상이 있구나. 그렇게 신기할 수가 없었어요.


그때 들었던 재밌는 이야기 중에, 재벌들도 짝퉁을 산다는 거였어요. 이태원 특 A급 짝퉁을 그렇게들 사간대요. 연예인이나 모델 애인에게 짝퉁 선물을 준대요. 설마 이런 사람이 짝퉁을 사겠어? 감히 영수증 내놓으라고 묻기도 겁날 테니까요. 재벌들 사이에선 파리 바게트를 부러워한다는 말도 들었네요. 뭐니뭐니 해도 현금 많이 도는 장사가 최고라면서요. 재벌가 며느리들도 대부분 재벌집 딸들인데, 의외로 현금이 별로 없대요. 그래서 몇 천만 원 그림도 십 개월 할부로 끊는다고 하더라고요. 다 들었던 이야기니까요. 재미로만 들으세요. 어릴 때는 굉장한 동경의 대상이었고, 지금은 악의 없이 바라보는 즐거운 영감의 대상이에요. 부자도, 서민도 좋은 사람, 나쁜 사람 골고루 있어요. 부자라서 악마, 부자라서 천사. 그런 이분법은 말도 안 되는 거죠. 제가 누군가를 판단할 주제도 못 되고요. 하지만 부자들에 대한 동경은 사라졌어요. 어떤 조건이 삶을 바꾼다는 생각은 안 들더라고요. 남들이 너무나 부러워하는 미국계 금융 회사에 다니는 후배는 매일 술판이더라고요. 겉은 번듯해 보여도, 결국 영업을 해야 해요. 영업의 대상이 힘 있는 사람이라는 게 다를 뿐이죠. 그렇게 퍼마시더니, 결국 응급실로 실려가더라고요. 같이 봤던 같은 직장 친구는 직장암 3기여서, 아슬아슬 수술로 회복 중이고요. 지금의 지위나 부는 이름표 정도라고 생각해요. 그 이름표가 내 것이 된다고, 행복 시작이 아니라는 걸 알아요. 이런 사람, 저런 사람이 공존하니까 세상이 예쁘고 조화로운 거죠. 돈이 많으면 뭐부터 하고 싶으세요? 저는 그리스나 이탈리아에서 바다가 보이는 호텔에 머물면서, 매일 요가학원에 다니고 싶네요. 단골 식당에서 맡겨 놓은 와인 반 병을 생선 요리와 홀짝이고 싶네요.


PS 매일 글을 씁니다. 우리가 보지 못하는 건 분명히 있어요. 그걸 볼 수 없지만, 존재한다고 생각할 수는 있죠. 그게 무엇이든지요. 그게 저를 겸손하게 하고, 세상에 대한 호기심을 잃지 않게 해 줘요. 제가 보고 있는 건 전부가 아니에요. 일부 중의 일부일 뿐이죠.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고기를 안 먹는 삶 두 달 - 굿바이 육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