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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민우 May 03. 2021

노년의 인터넷은 어떤 세상일까?

어머니의 카톡 생활을 보면서

일흔이 넘은 나이에 스마트폰을 과연 사용하실 수 있을까? 처음 LG 스마트폰을 사다 드릴 때, 반신반의했어요. 사실 저부터 남들보다 한참 늦게 스마트폰을 접했으니까요. 일종의 오기였죠. 다른 사람처럼 살지 않겠다. 후배가 1,2년 지난 아이폰을 그냥 주는 거예요. 자기가 새 아이폰을 살 때마다요. 공짜로 생기니까, 그건 또 거부 못 하겠더군요. 그렇게 스마트폰을 쓰기 시작했어요. 남들은 쉬워도요. 처음 접하면, 모든 게 낯설어요. 전화기에만 익숙했던 사람이, 액정 화면을 문지르고, 누르는 게 얼마나 어색했나 몰라요. 어머니는 저와 같은 시대에 태어났다면, 새로운 기계나 문물에 저보다 훨씬 능숙하셨을 거예요. 그만큼 호기심도 많고, 도전 정신도 강한 분이세요. 생각보다는 잘 쓰시더라고요. 처음엔 오타가 좀 많은 카톡 문자가 오다가, 어느 순간부터는 이모티콘이 늘어나더군요. 남들은 예쁜 이모티콘도 많이 쓰는데, 엄마한테 좀 쌈빡한 이모티콘 좀 선물해 다오. 이모티콘 욕심을 내시더라고요. 


어머니는 하루가 멀다 하고, 저에게 메시지를 보내셔요. 건강 정보가 가장 많아요. 특급 정보입니다. 지우지 말고 두고두고 보세요. 1억짜리 영상입니다. 이렇게 시작을 하는 정보들이요. 파인애플을 물에 몇 조각 넣어서 먹으면, 암이 예방된다. 하루 물 1리터를 마셔라. 양파의 효능, 생강의 효능 등등을 보내 주세요. 서커스 영상, 세상에 이런 일이 느낌의 영상도 많이 보내 주세요. 이런 영상을 네가 어디서 보겠니? 아들아! 어서 보고 감동하렴. 가끔만 봐요. 곡예단의 스케이팅이나 줄타기가 신기하다고 해서, 누구나 다 재밌는 건 아니니까요. 제가 진정한 효자라면, 어머니가 보내주신 영상보다 열 배, 백 배 신기한 영상을 찾아서 보내드려야죠. 그냥 영혼 없이 보거나, 아예 안 보거나 하고 말아요. 


사기 전화를 조심하자. 이런 문자를 친구분들과 매일 공유하고 계시더라고요. 예를 들면 특정 번호는 절대 받지 말아라. 받기만 하면 천만 원이 인출이 된다. 이런 식의 경고 메시지를 저에게도 보내 주세요. 일단 그런 번호로 전화가 온다고 해서 단번에 알아볼 수 있을까요? 그런 번호들을 달달달 외워야 가능한데요. 즉 모르는 번호면, 그 어떤 전화도 안 받겠다. 결국 그렇게 될 수밖에 없죠. 그런데 그게 진짜 가능은 해요? 특정 번호로 전화가 오면, 받기만 해도 은행 돈이 빠져나갈 수가 있어요? 그런 기술이 가능하다면, 통신사에서 번호를 색출하고, 막는 게 우선 아닌가요? 그런 기술은 불가능하다고 보지만, 저도 워낙 세상 물정 모르는 기계치라서요. 


아름다운 사진과 좋은 글귀도 즉시즉시 보내 주세요. 꽃 사진, 풍경 영상 같은 거요. 세련된 영상도 많은데, 북한이나 중국에서 만든 것 같은, 궁서체 영상을 보내 주세요. 아름다운 시, 오늘의 명언을 보내 주실 때, 어머니는 얼마나 뿌듯하셨을까요? 좋은 영상, 좋은 글 많이 봐서 나쁠 거야 없죠. 하지만 자극적인 영상과 글이 넘쳐나는 시대에 영혼이 맑아지는 글이 저의 심금을 울릴 수 있을까요? 노인들의 인터넷 세상은 훨씬 더 순수해요. 좋은 정보가 있으면, 못 나눠서 조급해지고, 모르는 번호는 공포 그 자체예요. 유튜브 영상을 클릭하면 돈을 내야 하는 거냐고,  자주 물어보세요. 스마트폰 업데이트 해도 되는 거냐고 항상 물어보시고요. 뭐라도 하나 잘못 누르면, 돌이킬 수 없는 일이 일어날 것 같으신가 봐요. 페이스북을 봐도요. 나이 드신 분들은 늘 감사의 인사를 나눠요. 친구 신청을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소중한 인연 허락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누군가에겐 형식적인 관계일 뿐인데, 대단한 의미를 부여해요. 인터넷 세상은 나이가 많을수록 신생아가 되는 게 아닐까요? 나이가 어린 친구들은 인터넷 세상을 마음껏 휘젓고 다니고요. 노인들에겐 모든 게 다 놀랍고, 두렵고, 반가워요. 쉽게 사기당할 수 있는 표적이라, 아프리카의 임팔라처럼 늘 아슬아슬하기만 해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터넷 세상을 포기하지 않는 세상의 모든 노인분들을 존경합니다. 


PS , 매일 글을 씁니다. 오늘이 어떤 날인지, 이번 달이 무슨 달인지, 올해가 몇 년도인지도 자주 생각하지 않으면 까먹어요. 그런 하루하루를 조금은 선명하게 만들어 주는 게 글쓰기인 것 같아요. 그래서 씁니다. 하루가 하루의 의미로 소비되기를 바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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