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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민우 Jun 04. 2021

걸레를 빨다가 득도하다(행복은 걸레에 있다)

우리는 이루기 위해서 사는 걸까요? 살기 위해서 이루는 걸까요?

총 2만 원의 화려한 내 셔츠 컬렉션

샤워 타월 중에 낡은 걸 걸레로 쓰고 있어요. 좁은 방 큼직한 걸로 걸레질하면 금방이거든요. 문제는 그걸 빠는 시간이 제법 걸려요. 식기 세척제를 두 방울 뿌리고, 샤워기를 틀어서 거품을 빼줘요. 거품이 끝도 없이 생기니까 조바심이 나요. 그래 봤자 2,3분일 텐데 그 시간이 참 길어요. 빨리 끝내고 싶다. 내가 이깟 걸 세탁하려고 태어났나? 울화가 치민다고 해야 하나요? 그 시간이 그렇게 아까울 수가 없어요. 빨래가 끝나면, 저를 기다리는 시간은 첫 번째가 넷플릭스, 두 번째가 잘 가는 커뮤니티 사이트(사실 요즘엔 왜 가나 싶지만, 분위기가 이상해졌거든요), 페이스북과, 인스타그램, 유튜브 순서예요. 넷플릭스로 곧장 들어갈 경우에는 '김씨네 편의점'이 기다리고 있어요. 의외로 재밌더라고요. 예전 미국 시트콤 감성 가득한 수작이던데요? 캐나다가 괜히 가깝게 느껴지더라고요. 그동안 큰 감흥 없었는데, 오히려 '김씨네 편의점' 때문에 캐나다가 그리운 거예요. 고향 같은 느낌이랄까요? '김씨네 편의점'을 보는 게 걸레 빠는 것보다는 훨씬 더 재밌으니 짜증이 날만도 하죠. 


자주 가는 커뮤니티에서는 특정 검색어를 활용해요. 코로나, 일본, 근황 같은 키워드로 전 세계 코로나 분위기가 어떤지, 연예인이나 유명인 가십은 뭐가 떴는지를 봐요. 코로나는 마치 스포츠 경기를 보듯, 확진자 추이를 흥미롭게 보고 있어요. 게임이나 주식, 도박할 때와 크게 다르지 않은, '감정적 자극'을 원하는 거죠. 코로나를 철저히 대비하겠다거나, 세상이 어찌 돌아가려고 이러는지. 이런 걱정은 진즉에 둔감해졌고요. 누가누가 빨리 끝내나. 누가누가 이기나. 경마장에서 판돈을 걸고, 응원하는 심정과 크게 다르지 않아요. 어서 빨리 우리나라가 이 경주에서 이겼으면 하는 바람이긴 하지만, 애국심인지는 잘 모르겠어요. 승부 자체에 더 몰입을 하는 것 같아요. 세상 뉴스가 한결같이 같은 화제로 떠들어대니, 잘도 낚여서 놀아나는 중인 거죠. 


SNS에서는 댓글과 좋아요를 확인하고요. 이웃들의 일상을 봐요. 나에게 좋아요를 눌러준 사람들에겐 보은의 좋아요를 잊지 않으려 노력하고요. 그렇지 않은 이들도 눌러 주기는 하지만, 나는 더 착하다. 이런 감정적 우위를 느껴요. 돈 한 푼 안 들이고 덕을 쌓는 거야. 싸구려 선민의식을 1초씩 징검다리 식으로 즐겨요. 얌체고, 계산적이고, 이기적이야. 문득 부끄럽지만, 안 그런 사람도 있어? 자기 합리화로, 재빨리 감정적 평화를 유도해요. 


이런 시간들이 걸레 빠는 시간보다 질적 우위에 있나? 걸레를 빠는 순간에는, 걸레와 거품에 집중해요. 누군가를 평가하지도 않고, 나 자신의 평가를 확인하지도 않아요. 세상 돌아가는 걸 확인하는 게, 내 삶에 유익한가? 아닌 걸 알면서도, 그걸 확인하는 시간이 걸레 빠는 시간보다 낫다고 우겨요. 일종의 세뇌인 거죠. 적어도 걸레를 빠는 시간은 세뇌에서 자유로워요. 사실은 걸레를 더 오래 빨아야, 나의 정신 상태가 건강해질 거란 생각을 오늘 했어요. 그래서 평소보다 오래, 그래 봤자 4분 이내겠지만, 정성껏 걸레를 빨아요. 행복이라는 게, 신기루라는 확신도 해요. 그 순간이 오면 잠시의 전기적 자극, 성취감을 느낄 테고요. 우리는 다시 일상으로 돌아와야 해요. 매 순간 이 재산이, 지위가, 성취가 좋아 죽겠다. 그건 정신병인 거죠. 발작적으로 24시간 좋아 죽겠다. 그런 감정은 세상에 존재하지 않아요. 잠시의 감정적 자극을 위해 평생 노력하고, 평생 괴로워해요. 과대평가된 성취의 가치에 모두가 말려들어요. 방향인 거예요. 방향에 답이 있는 거예요. 걸레를 즐거운 마음으로 빨 수 있는 사람이, 어려운 시험에 합격한 사람보다 결코 하위 개념의 행복을 누리는 게 아니란 거죠. 그래서 이젠 걸레를 빨 때 조금은 더 경건해지려고요. 걸레를 빨고, 보게 될 '김씨네 편의점'이라는 전기 자극에 너무 들뜨지 않겠다 이 말입니다. 이렇게 훌륭한 정신적 성취를 이루었으니, 저는 '김씨네 편의점'을 마저 보겠습니다. 데헷


PS 매일 글을 씁니다. 군더더기 없는 채움. 이게 어떤 건지 고민하고 있어요. 뒤돌아 보지 않고, 걱정하지 않으면서 좋은 에너지로 남은 생을 채운다면 누구보다 성공한 삶이라고 확신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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