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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민우 Jun 14. 2021

내가 독보적으로 못하는 것, 청소

누구나 다 똑같을 수 없는 건 알지만

매일 방청소를 해요. 영혼 담지 않고, 철저하게 대충 쓸어요. 어제는 선풍기에 먼지가 가득해서, 방바닥으로 떨어지고 있더라고요. 매일 틀면서도, 이제야 눈에 들어와요. 분노의 먼지 털기를 했죠. 필사적으로 대충이긴 했지만요. 바깥공기보다 과연 내 방 공기가 깨끗할까? 자신 없어요. 그렇다고 아주 무신경한 편도 아니거든요. 냄새에는 나름 민감한 편이고요. 그래도 테이프로 방바닥 머리카락 하나씩 떼내는 사람 보면, 나와는 다른 인종이란 생각밖에 안 들어요. 저에겐 보이지도 않을뿐더러, 보여도 눈 뜬 시간 내내 곤두서며 살고 싶지는 않아요. 차라리 로봇 청소기를 들여놓고 말죠. 


어릴 때는 형이 그렇게 깔끔을 떨더라고요. 저에게 청소를 지시해요. 전 당연히 반항하죠. 보기 싫은 사람이 치우든, 아니면 더럽게 살든. 그게 저의 논리였어요. 그리고 뒈지게 맞아요. 형은 더러운 건 절대로 보지 못하지만, 자기 손으로는 죽어도 치울 수 없는 사람이었어요. 청소를 할 거면 같이 하든가, 죽어도 독박 청소는 못 하겠다. 그게 한 살 터울 동생의 입장이었죠. 군생활을 그럼 누가 더 잘했을까요? 형이 압도적으로 잘했어요. 빠릿빠릿, 말뚝 박으란 소리까지 들었나 보더라고요. 솔선수범 내무반을 쓸고, 닦았겠죠. 평소에 더러운 꼴을 못 보는 그 눈썰미가 분명 도움이 됐을 거예요. 저 역시 최선을 다해서 쓸고, 닦기는 해요. 결과는 늘 처참해요. 총기만 해도 그래요. 제 눈에는 먼지 한 톨이 안 보이는데, 욕 엄청 먹었어요. 총 관리 제대로 안 한다고요. 군복을 차곡차곡 접어도, 동기들처럼 예쁘게 각이 안 나와요. 국민학교 때도 친구들 도화지나 스케치북은 깨끗한데, 제 것만 꾀죄죄했어요. 


그러니 런던에서 식당 알바할 때 사장이 못마땅해할 수밖에요. 전임자도 한국인이었어요. 고맙게도 저에게 청소일을 연결해 줬죠. 전임자를 영웅(Hero)이라며, 식당 사장이 엄지척을 하더라고요. 레전드의 후임이 얼마나 불리한 건지 아시죠? 열심히 하면, 깨끗해지겠지. 변기가 뚫어질 정도로 닦아요. 솔직히 어디가 얼룩인지, 어디를 더 집중적으로 닦아야겠는지 모르겠는 거예요. 제 눈엔 이미 깨끗한 변기였거든요. 오죽하면 잠시 대타로 맡긴 친구에게, 사장이 가지 말라고 사정사정을 했겠어요? 박민우란 놈은 알아서 자를 테니, 네가 제발 우리 변기를 책임져 달라고 바짓가랑이를 잡더랍니다. 더러움을 변별해내는 능력이 크게 떨어지는 사람이에요. 고등학교 때 단짝 친구가 제 방에 와서 놀라더라고요. 너무 어지럽혀져서 해방감을 느낀다고요. 누가 자기 방 청소만 해도 금방 아는 친구들 있잖아요. 신기하더라고요. 전 제 물건 잃어버린 것도 한참 후에나 알아요. 내 물건에 대한 애착도 별로 없어요. 대부분의 시간을 멍해 있거나, 공상에 빠져서 살아요. 먼지나 머리카락이 눈에 들어올 틈이 없어요. 요즘 들어 청소를 하는 이유는 우울한 아재가 되고 싶지 않아서예요. 태국 TV에서 보니까, 어떤 할아버지가 바퀴벌레랑 사시더라고요. 집안이 쓰레기장이에요. 더러움도 시작이 어렵지, 익숙해지면 한도 끝도 없죠. 저 꼴 되기 싫으면, 최소한의 관리는 해야 한다. 관리 차원으로 하는 청소지, 더러움을 못 견뎌서 하는 청소가 아니에요. 


빨래할 때 섬유 유연제를 꼭 쓴다거나, 매일 샤워를 두 번, 세 번 하고, 하루 입은 옷은 다음날 입지 않는 버릇(바지 제외)도 일부러 길들인 버릇이죠. 대부분은 자신의 체취를 모르더라고요. 저라고 다르겠어요? 그러니 냄새가 나건 말건 무조건 세탁기 돌리는 거죠. 스웨덴 친구였나? 중국 칭다오에서 만났는데, 양말을 삼 일째 신는다고 자랑하더라고요. 그렇게 신어본 적도 없지만, 땀 때문에 딱딱해지지 않나요? 일본 친구 카즈마도 일본인답지 않게 양말을 이틀에 한 번 갈아 신더라고요. 선천적으로 땀이 안 나는 사람이 있기는 해요. 양말을 매일 갈아 신는 제가 되려 이상한 사람이었어요. 양말을 며칠씩 신는 놈들과는 가까이하고 싶지 않은 걸 보면, 딱히 더러운 인간도 아닌데 말이죠. 


분명 저처럼 의도치 않게 열등한 사람이 있을 거예요. 군대에서나, 런던의 식당에서 인정받고 싶었어요. 최선을 다하기는 했단 말이죠. 전설의 청소왕이 되고픈 무모한 꿈도 있었어요. 안 되더라고요. 욕만 먹었죠. 어떤 건 잘하고, 어떤 건 못해서 평균의 사람이 되는 게 아닐까 싶어요. 모든 걸 평균 이상으로 잘하는 사람이 희귀한 거죠. 그러니 너무 구박하지 마시라고요. 그 사람은 더 답답할 거예요. 어떤 점은 부족하지만, 다른 재능이 분명 있을 거예요. 중학교 2학년 때였나? 딴짓하고 있었는데, 영어 선생님이 저를 지목하시더라고요. 방금 선생님이 읽은 문장을 외워 보라는 거예요. 그걸 어떻게 외우나요? 게다가 저는 책에 낙서 찍찍하면서, 딴생각 중이었는데요. 그런데 입에서 줄줄줄 나오더라고요. 영어 선생님도, 아이들도 깜짝 놀랐지만, 가장 소름 돋았던 건, 당사자인 저 자신이었어요. 


PS 매일 글을 씁니다. 아무것도 아닌 것 같지만, 아무것도 아닌 게 아니다. 내 삶에, 나의 역사에 새겨진 미세한 흔적들을 들여다보고, 글로 옮기고 있어요. 아무것도 아닌 건 없어요. 그 의미를 해독해 내기만 하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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