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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민우 Jun 15. 2021

충격, 몸에서 발견되는 노화의 징후

이런 일들이 내게도 일어나다니

평생 젊은 몸일 거라고야 생각하지 않았죠. 어떻게 노화가 저만 비켜 가겠어요? 그 정도의 상식이면 노화를 받아들인 거라고 착각했어요. 한국 나이로 마흔아홉, 저에게 일어나는 노화가 갑작스러워요. 누구나 늙는다는 말 좀 그만 하실래요? 상식은 상식이고, 내 몸뚱이는 상식이 아니거든요. 단 하나뿐인 내 몸뚱이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좀 보시라고요.


1. 흰 털이 콧구멍에도 날 수 있다니


흰 털은 머리에만 나는 건 줄 알았어요. 그 흰털이 온몸 여기저기서 창궐을 해요. 어릴 때부터 백발을 동경했어요. 멋있잖아요. 이십 대 때는 진지하게 회색으로 염색을 고민했어요. 머릿결이 안 좋아진다고 해서 시도를 못했을 뿐이지, 흰색 머리에 대한 로망은 지금도 있어요. 하지만 순백이어야지, 섞이면 안 돼요. 그러니 드문드문 새치는 전혀 반가운 게 아니죠. 머리털에도 몇 개, 수염에도 몇 개, 콧구멍에도 몇 개, 성기와 항문 주위에도 아, 아닙니다. 이건 기습 공격이라고요. 비열한 노화의 전략을 그냥 보고만 있어야 하나요? 흰 털이 나야 할 곳은 정해져 있는 거 아니었나요? 가장 보기 싫은 건 콧구멍 털이예요. 콧구멍도 늙는다는 걸, 여러분은 아셨어요? 태연한 척 하지만, 여러분도 사실 깜짝 놀라셨죠? 귓바퀴 안에도 털이 나는 건 또 뭔가요? 이것들을 다 불로 지지고 싶다고요.


2. 발 각질이 나 같은 한량에게 왜?


아버지가 각질이 그렇게 심하셨어요. 우유배달을 하셔서라고 생각했죠. 겨울만 아니면, 늘 맨발로 다니셨거든요. 너무 갈라져서 나중엔 발에 안티프라민 듬뿍 바르고, 비닐로 돌돌 말고 주무셨어요. 험한 일을 하시니, 발도 험해지나 보다. 그러고 말았죠. 저처럼 글이나 쓰는 한량이 왜 각질이 이리 심할까요? 좀 건조해지나 싶더니, 뒤꿈치가 점점 갈라져요. 너무 갈라지는 거 아닌가 싶더니, 사이로 피까지 나요. 저 역시 양말을 안 신어요. 더운 태국에서 양말을 왜 신냐고요? 나이를 먹으면서 몸의 수분도 빠져나가나 봐요. 붙어 있어야 할 피부가, 못 견디고 갈라지고, 찢어지네요. 이제 제 발은 황무지고, 사막이에요. 너무 무서워서 각질 크림을 샀네요. 바르고 많이 좋아졌어요. 그래도 예전의 뽀송뽀송한 발은 아니에요.


3. 머리카락의 그 꿋꿋한 힘은 어디로?


빠지기도 많이 빠지지만, 머릿결 자체가 달라졌어요. 보기 드문 말총머리였거든요. 그 말총머리를 무스 듬뿍 발라서, 세우고 다녔어요. 두피가 훤히 보일 정도로요. 그 뾰족 머리로 풍선을 다 터뜨렸다니까요. 그런 꿋꿋하고, 굵은 머릿결이 어느 순간부터 잠잠해졌어요. 풍선을 어떻게 터뜨려요? 자력으로 일어서지도 못하는, 시든 콩나물이 됐는데요. 젊을 때 보다 머리숱이 많이 훨씬 줄기는 했지만, 그래도 감사하려고요. 아버지 형제들은 모두 삼십 대부터 대머리셨어요. 저는 외가 쪽을 닮아서, 대머리는 무사히 넘긴 것 같아요. 가끔 원형 탈모로 속을 썩이기는 하지만요.


4. 상처가 잘 낫지 않아요


설거지를 하다가 손가락에 자주 피가 나더라고요. 왜 그런가 봤더니, 수세미에 찔려서 피가 나는 거예요. 그깟 수세미에 피가 나는 연약한 살결이 된 거죠. 종이에 베서 피가 나지를 않나, 습진을 달고 살지를 않나, 예전엔 상처가 나도 하루면 다 아물더니요. 2,3일은 기본으로 가더라고요. 그러니 손을 베면 화딱지부터 나더라고요. 며칠 고생해야 하니까요. 설거지할 때 말도 못 하게 쓰라려요. 고무장갑도 안 쓰고 설거지를 하니, 손가락이 멀쩡하면 그게 더 이상하죠. 지금이라도 고무장갑을 쓰긴 해야겠는데, 이 더운 나라에서 고무장갑은 어찌 쓰냐고요? 사다 놓고 버리고를 몇 번 반복했더니, 잘 안 사게 돼요. 시원한 고무장갑 어디 없나요?


5. 얼굴살, 똥꼬 살이 모두 다 늘어나요


노화로 얼굴 피부가 내려앉는 거야 당연한데, 항문까지 그럴 줄은 몰랐죠. 치질인 거죠. 변기에 앉아 있으면, 항문 안쪽이 늘어진 씹던 껌처럼 주르르 내려와요. 용무가 끝나면 돌돌돌 말려서 올라가고요. 그걸 내치핵이라고 하더라고요. 항문 바깥으로 나오는 속살이 점점 길어진다는 게 느껴져요. 이렇게 길어지다가 나중엔 복구가 될 수 있으려나? 검색을 해봤더나, 저만 그런 게 아니더군요. 이게 너무 튀어나오면, 결국 제거 수술을 한대요. 얼굴 살, 뱃살만 신경 쓰고 살면 되는 줄 알았죠. 똥구멍 살까지 내려올 줄 누가 알았겠어요? 확실히 젊은 친구들은 뼈에 몸이 찰싹 달라붙은 게 보여요. 늙는다는 건, 뼈에 잘 붙어 있던 살점이 점점 느슨해지는 과정이기도 하죠. 그렇다고 넋 놓고 있으면 안 되겠죠. 케겔 운동이라도 열심히 해야죠. 똥구멍에 힘을 줬다 풀었다. 이런 치욕스러운 운동을 남몰래할 수 있다는 거에 감사하려고요. 힘을 줬다, 풀었다. 누구보다 열심히, 항문을 감시하겠습니다.


PS 매일 글을 씁니다. 왜 나는 그때 더 열심히 살지 않았을까? 가장 바보 같은 후회라고 생각해요. 오늘만 생각하고, 오늘만 후회 없이 살면 백점 아닐까요? 하루치씩 소분해서 살아요. 과거와 미래의 대용량 시간까지 책임지려 하지 말자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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