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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민우 Jun 17. 2021

의욕이 발목을 잡는다. 의욕의 함정

의욕이 부족한 게 아니라, 넘치는 게 문제였다

유튜브 각 잡고 제대로 해야지. 이런 다짐만 3년째 하고 있어요. 저야말로 모순 덩어리죠. 글쓰기 강좌를 할 때마다 강조하는 게 있어요. 20점짜리 글을 쓰라고요. 백 점 짜리 글을 쓰려고 하니까, 시작부터 막히는 거라고요. 글은 얼마든지 고칠 수 있는데, 시작부터 힘 빼지 말라고요. 유튜브라고 다르겠어요? 처음부터 잘할 필요 없어요. 잘할 수도 없고요. 머릿속은 영화감독이 따로 없어요. 명색이 여행 작가인데 막영상을 올릴 수야 없지. 나야, 나! 박민우라고. 내가 작정만 하면, 유튜브 생태계는 다 초토화되는 거야. 마음속 유튜브 왕으로 산 지가 3년이 넘었다고요. 여전히 자신감은 유효해요. 몰라봐서 죄송합니다. 제가 제대로 만들어 올리면, 다들 무릎 꿇고 조아릴 거예요. 두고 보세요. 실컷 비웃으셔도 돼요. 모두의 비웃음은 영웅 탄생의 딱 좋은 환경이죠. 영웅은 반전이라는 양탄자를 타고 나타나는 법이니까요. 늘 어마어마한 반전 속 주인공을 꿈꿔요. 야, 박민우. 당신의 한계는 어디인가? 신인가? 인간인가? 이런 올라운드 능력 천재 같으니라고. 이런 말을 귀가 따갑게 듣는 상상을 해요. 아드레날린이 퐁퐁 샘솟습니다. 


그 대단한 반전의 주인공을 탐내다가, 무대에 평생 서지도 못하게 생겼어요. 잘난 척을 제대로 하고 싶다는 욕망이, 나를 파괴한다는 걸 왜 깨닫지 못하는 걸까요? 


-대단해질 필요가 없다. 


여기에 답이 있어요. 공부를 할 때도 똑같아요. 학창시절 시험이 코앞이면, 다짐부터 하죠. 하루 한 과목씩 끝내는 건 일도 아니죠. 그러려면 일단 정신이 맑아야  하니까, 낮잠을 거하게 자요. 출출하면 집중력이 떨어지니까, 라면에 밥 말아서 든든하게 먹고요. 간식도 당연히 챙겨 먹어야죠. 화끈한 몰입을 위해서, 답답함을 해소시킬 필요가 있겠어요. 늘 방치하던 책, 잡지, 만화책 등을 뒤적여요. 입이 심심해진 것 같으니 냉장고도 한 번 더 열어 보고요. 과일이 있으면, 집어와서 먹어요. 평소에 눈에도 안 들어오던, 고전 소설이 요상하게 맛깔나요. 몇 페이지만 읽고 말아야지. 그랬던 고전을 단번에 독파해요. 시험공부를 하기로 하지 않았나? 내일부터 하죠, 뭐. 마음먹으면, 하루에 두 과목은 또 못 하겠어요? 책을 마저 읽기로 해요. 독서가 나쁜 게 아니잖아요? 내일부터 화끈하게 몰입해서 공부만 할거니까요. 중학교 때 펄벅의 '대지'를 중간고사 기간에 다 읽었어요. 관심도 없던 중국이란 나라가, 청나라 말기 혼란스러운 역사가 어찌나 찰지게 와닿던지요. 시대의 탐욕과 삶의 무상함을 그 어린 나이에 구구절절 이해하겠더라고요. 


그냥 몇 페이지만 볼까? 


그렇게 어깨 힘을 빼고, 뒤적이던 순간에 마법이 시작돼요. 유튜브도 그렇게 시작했어야 해요.  유튜브가 지금의 위상이 아니었다면, 소수만 즐기는 채널이었다면, 재미 삼아 올렸겠죠. 이렇게도 해보고, 저렇게도 해보면서 새로운 세상을 탐구했겠죠. 조회수나, 얼마나 벌 수 있나 같은 현실적인 생각은 집어치우고요. 그랬다면, 의외의 완성도도 가능했을 거예요. 재미 삼아 조금씩 능력치를 쌓아 올리는 거죠. 머릿속으로는 이미 박찬욱이고, 봉준호인 저란 사람은, 아무것도 할 수가 없어요. 대충 할 거면, 망신당할 거면 시작도 말아야 해. 그 함정에 걸려버렸어요. 이런 놈이 무슨 글을 가르친다고 설치냐고요? 자기 앞가림도 못하면서요. 저를 옭아맨 덫에서 빠져나와 보려고요. 이 고약한 덫에서 빠져나오면, 진짜 다들 죽었어요. 유튜브 왕이 등장하는 겁니다. 짠짠짠! 에휴, 아직 정신 못 차린 것 같죠? 하찮은 시작에 비밀이 있음을 알면서도요. 시작하는 사람 되시라고요. 제가 해결 못한 함정, 여러분부터 빠져 나오시라고요. 시작하고, 서로 끌어주는 사람이 되자고요. 제가 이 글을 쓰는 이유입니다. '비루한 시작'이, '대단한 다짐'을 이깁니다. 저만 믿으세요. 실패자 주제에 입만 살았다고, 비웃지 마시고요. 


PS 매일 글을 씁니다. 지혜라는 게, 숨어 있지 않아요. 답은 이미 있는데, 우린 그 답을 외면하며 사는 건지도 모르죠. 누구나 알고 있는 것들도, 그래서 굳이 글로 써요. 누군가에겐 허를 찌르는, 해답이 되기를 바라면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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