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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민우 Jul 06. 2019

망했다, 긁어라 - 공포의 베드 벅스 출현

아니 여기서 어떻게 자냐고? 왜 못 자?


가렵다. 여기저기, 올록볼록. 쭉 짜 본다.  진물이 나온다. 



베드 벅스 



침대 빈대다. 가장 악랄한 놈과 마주쳤다. 악랄하고, 더럽고, 끝까지 물고 늘어지며, 알을 깐다. 잡것들이 나를 택했다. 내가 가려움에 옴짝달싹 못하는 동안 열심히 빨아댄다. 알을 깐다. 그들의 신세계가,  우주가 내 몸뚱이다. 어쩌지? 사장한테 알릴까? 며칠 참을까? 숙소에서 나온 걸까? 그전 숙소에서 옮겨온 걸까? 내 탓이다. 내 잘못이  아니지만, 빈대의 숙주가  됐으니, 이젠 내 잘못이다. 오염된 몸뚱이다. 문제를 키우고 싶지 않다.  도망치고 싶다. 나는 모르는 일. 시침 떼고 싶다. 변기 물이 안 내려가 똥을 들킨 것처럼 치욕스럽다.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식중독을 베드 벅스로 착각했다. 그래서 신중해야 한다. 함부로 입 놀리다가 죄 없는 매트리스만 길바닥으로 다 나온다.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매트리스 소독을 한다고 숙소 전체가 발칵 뒤집어졌다. 부기가 가라앉고 나서야 식중독임을 알았다. 제가 착각했네요. 식중독이었어요. 그럴 용기는 없었다. 장담하지 마시라. 당신도 나처럼 어물쩍 넘어가길 바랄 것이다. 진실이 밝혀져서 기쁠 사람은 아무도 없다. 그냥 베드 벅스여야 했다. 그때 부에노스아이레스는, 남미는 베드 벅스 천지였다. 빈대의 시간이었다. 비싼 숙소도 예외가 아니었다. 손님이 몰고 오는 벌레를 완벽하게 차단하는 건 불가능했다. 진물이 나오는 곳이 여러 곳이다. 베드 벅스가 확실하다. 입을 다물면 2차, 3차 피해자가 생긴다. 양심적인 인간은 아닌데, 양심적인 인간인가 봐. 팔뚝, 다리 최소 열 군데 물린 사진을 사장에게 보냈다. 12시 반이면 출근하더니, 오늘은 유난히 늦다. 기다리다가 사진을 보냈다. 



-그거, 모기야. 어제 누가 창문을 열어 놨더라고. 



진물이 나왔다고요. 이 멍청한 사장님아. 그 말은 삼킨다. 진물 짜는 동영상이라도 보내야 하나? 베드 벅스 같은 모기가 아르메니아에 있을 수도 있지, 뭐. 모기일 리는 없지만, 사장이 아니라면, 아닌 거다. 베드 벅스 목격자가 한 명이라도 생기면 그게 다 소문이다. 일단 부정하고 싶은 사장 마음,  이해한다. 2차, 3차  피해자가 있어야 정신 차릴 것이다. 그렇다고 내가 전적으로 옳다고도 못하겠다. 베드 벅스가 아니라 햇빛 알레르기라든지, 다른 것일 수도 있다. 병은 우주처럼 무궁무진하다. 병의 창의력을 무시하고, 내 경험치 안에서 분석하는 것도 어리석다. 그냥 사장 네 말이 맞아. 이게 나도 편하다. 놀랍게도, 나는 빈대가 창궐한(아닐 수도 있지만) 침대에서 사흘 더 잘 준비를 한다. 세계의 베드 벅스에 공평히 물린 결과, 얼마간 긁어야 하는지를 안다. 초기엔 평생 24시간 내내 긁어야 하는 줄 알고, 발광하고, 부정했다. 물론 응급실을 간 친구도 있었다. 1초마다 긁어야 하는 공포에, 하얗게 질린 일본 여자였다. 증세가 확실히 예전보다 덜하다. 몸이 기억하고, 싸운다. 속수무책이 아니다. 얼마든지 잘 수 있다. 굉장한 진화다. 이 글을 읽는 모든  사람처럼 나도 지금 도리도리 고개를 젓는다. 어떻게 그 침대에서 잘 생각을 할까? 나는 지금 뭔가 말이 안 된다. 강해졌다는 표현도 부적절하다. 베드 벅스가  끔찍하지도,  어마어마하지도 않다. 궁금하기도 하다. 베드 벅스가 아닐 수도 있다. 맞을 수도 있다. 명확한 결과를 알고 싶다. 제길, 이딴 호기심도 내가 가지고 있다니. 몰랐다. 긁다가 어쨌든 잠들었다. 불면으로 아침까지 지새지 않았다. 잠이 들 정도의 빈대다. 빈대를 이겨낼 정도의 몸이다. 대신, 대신 



사흘 후에는 떠난다. 



정이 뚝 떨어졌다. 사장의 태도도 감점. 내 얼굴을 보고도 물린 곳 좀 보자는 말을 안 한다. 사소하다고 생각하는 건지, 사소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건지. 최소한의 책임감을 보여주지 않았다. 방값을 낸 날까지만 있겠다. 예레반이 좋다. 얼마나 좋냐면, 하루 중 십분 정도는 울컥할 정도로 좋다. 바스켓 채로 파는 블랙베리,  산딸기가 좋다. 체리가 좋고, 살구가 좋다. 300원짜리 감자 크로켓이 좋고, 400원짜리 슈크림 빵이 좋다. 과일로만 배를 채워도 하루 만 원을 쓰기 힘들다. 아르메니아 사람들이 깊숙이 다녀갔다. 몇몇은 머물렀다. 포테이토 칩을 먹는 중이었다. 굳이 내 벤치에 앉아서, 자매가 포테이토 칩을 먹는다. 꿈틀이 같은 걸 준다. 한국 드라마,  k pop 이야기를 늘어놓는다. 대담하고, 순수하다. 모든 아이들은 엄마, 아빠와 함께 놀고, 먹고, 걷는다. 그런 아이들이 골목에도, 공원에도, 식당에도 가득하다. 평생 가족이 똘똘 뭉쳐서 같이 늙는다. 축구를 하다가도 깜짝 놀라며 집으로 뛰어간다. 엄마가 부르는 소리를 포착하는 능력이 그 어느 나라보다도 뛰어나다. 집에 갔다가 금세 나온다. 엄마를 졸라 한 시간을 더 얻어냈다. 그런 아이들이 축구를 한다. 80년대 우리 풍경이다. 조금이라도 더 놀고 싶은 아이들이 예레반 골목마다 있다. 이제 남은 시간은 사흘. 지금까지와는 다르다. 이 아까운 아르메니아를,  예레반을 알차게 써야 한다. 아, 벌써부터 눈물이 나려고 한다.  



PS 매일 글을 씁니다. 저만의 오체투지입니다. 낮은 자세로, 천천히 닿고 싶습니다. 글 하나로,  한 권의 책이 더 팔리면 좋겠습니다. 지금은 '입 짧은 여행 작가의 방콕 한 끼'로 오체투지 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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