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인 고기리 깊숙한 곳에서 나는 잘리는 중이었다. 단박에 깨닫지는 못했다. ‘보류’한다니까, 그런 줄 알았다. 3층 사무실에 돌아와서도 계속 멍했다. 이 카페는 우리나라에는 몇 대 없다는 네덜란드 기계로 커피콩을 볶는다. 여러 대학에 매점까지 있다. 커피콩을 볶기 전에 여러 번 세척 한다. 깨끗한 커피 맛이 이곳의 자랑인데, 이보다 맛있는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마셔본 적이 없다. 나는 작가로 이곳에 스카웃 되었다. 드립 커피의 시대를 확신한 대표는, 글쟁이의 참신한 표현력을 써먹을 참이었다.
여행하며 사는 사람이 됐다. 주로 강연으로 여행 경비를 번다. 내 이야기를 듣겠다고 사람들이 온다. 강연료로 받을 때도 있고, 참석한 이들이 모아서 줄 때도 있다. 그것만으로는 부족하다. 하루는 이런 메일이 왔다.
-애플리케이션을 운영하는 회사인데, 작가님의 컨텐츠를 쓰고 싶어요. 너무 기뻐서, 원고료를 물었다.
-작가님의 간단한 여행 정보나 여행 기술 같은 걸 글로 써 주시면 돼요. 짧게요. 건당 세전 만 원입니다.
세후로는 9천 원 정도다. 충격적인 액수였다. 글쟁이로 열심히 살았어도 나의 가치는, 나나 주장할 뿐. 강연은 주로 독자들이 연결해 준다. 학교 선생님이, 보험회사 직원이, 숙소 사장이, 카페 사장이, 돈가스 체인점 사장이 독자다. 그들이 사람을 모아준다. 그게 너무 미안해서 내가 먼저 여기저기 연락을 했다. 공공 도서관 위주로 메일을 보냈다. 혹시 저의 이야기가 필요하지 않으세요? 박민우 여행작가입니다.
-강의료는 책정이 된 게 없어서요. 그냥 해주시는 건가요?
그냥 해주는 강의가 아니어서, 나는 죄스러웠다. 열 곳에 메일을 보내면 서너 곳에서 답을 주고, 서너 개의 답은 다음을 기약했다. 열 권의 책을 냈다. 누군가의 인생을 바꿨던 책들이다. 내 입으로나 떠벌리는 자랑이다. 발버둥 친다. 모욕감은 번번이 강렬하다. 고기리 카페 사장은, 그래서 은인이다. 글재주로 확실히 보답해야 한다. 최고의 원두를 깨끗하게 씻고, 볶고, 우린다. 기가 막힌 글로 세상에 알릴 것이다. 우울증으로 힘든 시간을 보내는 연예인에게 커피를 선물하는 건 어떨까? 대표의 아이디어다. 나는 그 연예인에게 보낼 동영상을 재빨리 만들었다. 목소리가 좀 많이 좋은 내가 더빙까지 했다. 우울증으로 고생하는 연예인은 나 덕에, 드립 커피 마시는 법을 알게 됐다. 그리고 잘렸다. 여행을 떠난 이후에도 글로 소통하기로 했었다. 첫 달은 사백. 여행 중에는 백오십. 유튜브에 동영상도 올리기로 했다. 여행 중에도 이 회사의 원두를 갈고, 드립 커피를 마실 참이었다. 그렇게 세상에 노출된다. 대표는 무슨 복일까? 글쟁이 하나 잘 만나서, 백오십으로 어마어마한 홍보를 하는구나. 백오십은 너무 적지 않나? 그런데 잘렸다. 첫 달 사백만 원은 무사히 받았다. 당분간 프로젝트는 미룬다고 했을 때, 백오십은요? 묻고 싶었다. 잘리는 건지, 아닌지 모호해서 머리를 굴렸다. 퇴근 시간은 여섯 시. 점심 전에 간다고 하면 대표가 놀라야 한다. 어디가 아프기라도 해요? 황당해하며 조퇴 이유를 묻겠지.
-아이고, 이렇게 가세요? 네네, 건강하시고요. 여행 잘 하시고요.
눈치 없이 사무실에 오래 앉아 있었구나. 백오십이 여전히 궁금하다. 따져서 얼마간이라도 받아낼 인간이 못 된다. 남다른 안목을 가진 대표가 드립 커피의 미래에서 나를 지웠다. 자본주의에서 탈락된 자는 어떻게 걸어야 할까? 내 뒷모습이 걱정이다. 구부정하고, 홀쭉해져서 고기리 버스 정류장으로 향한다. 그럴 리 없는 병신이, 나다. 대표 덕에 사백만 원이 생겼다. 대표 덕에 치과에서 썩은 이를 도려냈다. 하늘을 나는 드론 카메라를 장만했다. 회사 주방에서 주는 점심은 늘 맛있었고, 회식으로 먹었던 소 등심은 썩은 이로도 한없이 부드러웠다. 남다른 안목의 따뜻한 대표가 나를 내쳤다. 좋은 글을 쓴다. 좋은 책을 낸다. 나의 믿음은 유효한가? 짐을 싸는 이유는 비행기 표를 이미 끊었기 때문이다. 어떠한 설렘도 없다. 쓸모없는 인간이 감히 설렘을 탐해? 내가 세상에 있어도 될까? 의심이 확신으로 치닫기 전에 짐을 싼다. 서두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