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공항이 무서워요(Feat 한국 왔어요)

공황장애? 공항장애!

by 박민우


Part1


늘 공항이 무서웠다. 지금은 좀 지겹다. 특히 검색대. 신발 벗고, 허리띠 풀고, 배낭에서 노트북, 카메라, 스마트 폰 꺼내고, 동전, 손수건, 휴지가 주머니에서 바구니로 옮겨지고. 아오, 그냥, 싫어! 상당히 건방져졌다. 공항은 늘 공포였는데... 나를 처단할 수 있는 절대자!


여권이 어디에 있지?


인생 첫 해외여행, 괌이었다. 공항 면세점에서 쇼핑을 끝내고, 비행기만 타면 된다. 여권이 없다. 안내 방송으로, 박민우 여권을 찾는다고, 내 이름이 쩌렁쩌렁 김포공항을 울리고, 최소 30분 땀 뻘뻘 뛰어다녔다. 나는 끝장이다. 여권은 내 카트에, 면세점에서 샀던 담배(그때는 담배를 피웠다) 밑에 살포시 깔려 있었다. 찾았으니 됐다. 여행을 못 가는 것뿐인데, 죽는 것처럼 무서웠다. 공포는 확실히 과장된 측면이 있다.


콜롬비아 보고타에서는


비행기를 잘못 탔다. 활주로에서 엉뚱한 비행기 한 번씩은 타보잖아요? 내 자리라며, 선량한 콜롬비아 승객에게 큰소리쳤다. 큰소리친 내가 틀렸다. 나는 허겁지겁, 내 비행기를 찾아 뛰었다. 비행기가 나 안 기다리고, 활주로에서 쌩 미끄러졌다. 아, 멋있다. 존나 멋있다. 내 짐도 저 비행기에서 멋지게 웅크리고 있겠지? 나는 진짜로 끝장났다. 몇 시간 기다려서 비행기를 탈 수 있었다. 추가로 내는 돈도 없었다. 그것도 무서웠다. 내 잘못인데, 비행기를 놓쳤는데, 왜 공짜로 비행기를 태워줄까? 비행기라는 놈은, 공항이라는 녀석은 뭔가 내 상식을 벗어난 우주다. 신비로워. 그래서 무섭다.


가장 아름다운 공항은 필리핀 일로일로 공항이었다


물론 지금은 바뀌었겠지. 일로일로는 필리핀에서 3등쯤 하는 도시다. 체크인할 때 수하물 무게를 재는 저울이, 바늘이 부르르 떨리는 정육점 저울이었다. 비행기 티켓은 일일이 손으로 써준 번호표였다. 비행기 안에서는 퀴즈쇼를 하고, 상품도 줬다. 안전벨트는 왜 새끼줄이 아닐까? 멀쩡한 안전벨트여서, 실망스러웠다. 부탄의 공항이 그렇게 짜릿하다던데. 히말라야 산들을 비집고, 추락인가? 착륙인가? 애매한 지점에서 덜컹덜컹 비행기가 산 중턱에 내리꽂는다던데. 그런 이유로 부탄에 가고 싶다. 아직도 하루에 100달러일까? 여행자라면 무조건 내야 하는 체류비용 1일 100달러. 사실 그 돈 내고 갈 의향 있다. 언젠가는 가야 할 곳이다. 언젠가는


노트북을 놔두고 온 적도 있다


노트북에 항공권이 저장되어 있어서, 그걸 프린트해야 했다. 요즘 같은 스마트폰은 없었다. 헐레벌떡 프린트한 종이 쪼가리를 들고, 체크인을 했다. 어째 가방이 가볍다? 노트북이 없다. 나는 다시 뛴다. 비행기를 제때 탈 수 있을까? 나는 왜 이리 모자랄까? 공항이 나를 이렇게 만들었다. 그깟 종이 쪼가리 없다고, 비행기 못 태워준다니까. 그게 무서웠다. 종이 쪼가리를 뽑은 순간, 살았다는 안도감에, 노트북이 안 보였던 거지. 다들 이해되시죠?


과장된 공포가 아닌지도 모른다. 우리의 여행은 삶의 축소판이다. 새로운 곳은, 탄생이다. 모든 게 처음이다. 엄마 뱃속에서 나왔을 때와 같다. 그렇게 태어나서, 돌아올 때, 완전히 그 세계와 떨어진다. 죽음과 같다. 공항에서의 거부, 공항에서의 퇴출은 삶의 불허다. 비행기 안은 또 얼마나 위태로운가? 우린 공중에서, 훨씬 더 가깝게, 죽음과 만난다. 생일은 달라도, 제삿날은 똑같을 승객들을 찬찬히 본다. 이미 가족이다. 추락할 때, 땅에 꽝 떨어지는 그 지점에서 폴짝! 절묘하게 뛰면 살 수 있을까? 그런 귀여운 상상은 한다. 추락하는 엘리베이터는, 폴짝 뛰면 살 수도 있을 것 같다.


엉뚱한 이야기! 외계인을 납치하면, 우린 우주 혹은 인류의 기원에 대해 알 수 있을 거라고 믿는다. 빛의 속도를 뚫는 비행접시를 타고 다니는데, 당연한 거 아니야? 내가 훨씬 더 미개한 행성에 납치됐다면? 내 손에 쥔 스마트폰을 어떻게 만드냐고? 무선 인터넷의 원리? B형 간염 백신? 라디오의 원리? 난 그 누구보다도 확실히 모른다. 우리와 만나는 우주인은, 평범한 시민일 뿐이다. 그들의 모름을 우린 받아들여야 한다. 나는 모를 뿐이고, 미개한 행성인들은 화를 내겠지? 굳이 나를 해부해야겠어? 나는 억울한 채로, 해부될 것이다.



Part2


한국의 저가 항공 비행기 안이다. 밥도 안 주고, 수하물도 15KG을 넘으면 안 되고, 약간 싼 비행기일 뿐이다. 대한항공이 아주 괜찮은 가격이라고 요즘 생각한다. 밥도 맛나고, 짐도 더 부칠 수 있다. 그런 걸 다 빼고, 저가 항공이다. 싼 게 아니라, '없는' 비행기다. 밥도 없고, 맥주도 없고, 영화도 없다.


나는 통로석. 오른쪽으로 두 명의 여자다.


"네 시, 네 시야. 이제 와서 말을 바꿔? 이게 태국 왔다고, 막 말을 바꿔. 진짜, 너, 진짜!"


때리려고 하는 건지, 울려고 하는 건지 모르겠다. 목소리는 떨리고, 손찌검을 하고 싶은 듯 팔을 올린다. 언니다. 동생은 또 침착하다. 맞아도 된다는 건지, 안 때릴 걸 아는 건지, 침착하다. 통금 시간이 네 시라니. 그럼 새벽 네 시겠지? 언니가 너무 흥분한다 싶은데, 네 시면 뭐, 관대한 통금시간이긴 하네. 집에만 들어오라는 거지. 나는 이 자매의 이야기가 안 궁금하다. 새벽 두 시다. 충분히 졸리다. 30분 내내 험악하다. 자매의 입장은 좁혀지지 않는다. 적당히 좀 하세요. 어른으로서 이 말을 해야 할 타이밍은 진즉에 지났다. 나는 무섭다. 흥분한 언니, 침착한 동생, 둘 다 무섭다. 내 목소리가 안 떨릴 거라는 자신감도 없다. 언니가 네 시까지 안 오는 동생 때문에 뜬눈으로 밤을 새운다잖아. 동생의 삶은 화려하고, 언니는 동생만 기다린다. 비행기가 뜨고, 그제야 싸움이 멈춘다. 승무원을 불러야 하나? 마음이 참으로 복잡했다.


인천이란 땅에 도착하고 나서는


둘은 평화롭다. 싸움의 후유증은 나만 있다. 엄청난 기복이다. 히말라야에서 태평양의 심해로 한 번에 내리꽂는 번개다. 지구를 대표하는 자연현상 같은 자매다.


한국이다.


3월과 4월. 나는 한국에 거주하는 진짜 한국인이 된다.


새로운 여행이 시작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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