낯설고, 그립고
1
한국 도착
한국으로 돌아갈 땐 안심이 된다. 왕복 항공권을 요구하지 않아서다.
대부분의 나라는 돌아가는 항공권을 요구한다.
무조건 떠나야 해!
한국은, 내 나라는
언제까지 머물러도 된다.
2
공항버스 TV
전국 노래자랑 아나운서 특집
최승돈 아나운서가 청포도 사랑을 부른다.
또 저 노래야?
대학 방송국 선배였다.
그때도 저 노래를 곧잘 불렀다.
무대가 끝나고도 송해 선생님과 인터뷰가 길다.
우승인가 봐!
결과가 궁금했는데, 중간에 끊겼다.
하늘 같은 대선배였다.
재미나고, 다정하고, 애교심도 대단했다.
내가 가끔 노래방에서 청포도 사랑을 부르는 건 승돈이 형 때문이다.
선배가 기가 막히게 불러제낄 때 난 박수를 대충 쳤다.
다른 이들처럼 환호하면, 나는 지는 거다.
내 존재의 증거를
타인을 부정하는 데서 찾았다.
뉴스를 검색해보니 선배가 우승을 했다.
2학년 올라가면서 방송국을 그만뒀다.
그만둔 이유도 웃긴데
나 같은 싸가지 후배를 볼까 봐
그만뒀다.
그 꼴을 어떻게 봐!
참고로 KBS 이상협 아나운서가 후배인데
겁나 착했다.
3
32번 버스가 보인다.
뛰면 탈 수 있다.
뛰기 싫다.
커다란 트렁크를 끌고 뛰기가 쉬워?
성남 모란역에서 32번을 타고 광주로 넘어가야 한다.
20분을 기다린다.
뛸 걸!
20분 만에 버스가 온다.
뒷문으로 타도 되는 거야?
저래도 되나 싶지만, 저래도 되나 보지.
굳이 기다린 시간만 따지면 내가 1등이지만
내 자리는 없다.
평소에 25분이면 되는데
한 시간이 걸린다.
기록적인 교통 체증이다.
십 년 간 이런 적은 처음이다.
한국에 오자마자 10년 최악의 교통 체증이라니.
잠깐만 뛰었다면
눈 앞의 32번만 보내지 않았어도
나는 집에서 따뜻한 밥에 김치찌개를 먹고 있을 것이다.
잠깐의 게으름이
너무 치명적이다.
평소의 나는 늘 이토록 무기력하다.
모든 걸 놓친다.
놓친 이유를 합리화하며
내 불행을 적당히 끼고 산다.
한 시간을 버스에서 서서 간다.
내가 얼마나 철저하게 늙어가는지, 주름이 패는 소리가 들릴 정도다.
내가 지긋지긋하다.
4
겨우겨우 왔다.
무거운 트렁크를 낑낑댄다.
내린다.
먼저 갔던 32번이 보인다.
먼저 32번, 내가 탄 32번 똑같이 내린다.
응?
교통 체증에 더 오래 묶여 있었다.
버스를 놓쳤기에 그나마 덜 고생했다.
한 시간 반을 서있을 뻔했다.
약간의 불편함에도
존재를 의심하고
존재를 재판한다.
내가 지긋지긋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