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박민우 Mar 07. 2019

태국 어디까지 먹어 봤니? 1탄 - 천하 요물, 망고

녹는다는 표현 좀 함부로 쓰지 맙시다. 망고는 써도 돼요

망고 처음 먹을 때, 충격적이지 않았나요? 전 멕시코시티에서 처음 먹어 봤어요. 복숭아와 비슷한데, 신맛은 적고, 과육은 많고. 천국에서 쟁여놓고 먹는 과일이, 망고였구나. 입에서 나오는 모든 표현이 너무 식상했죠. 이렇게 고귀한 맛을 고작 맛있다느니, 녹는다느니.



그린 망고는 시어요. 단맛은 없어요. 떫기조차 해요. 이걸 도대체 무슨 맛으로 먹을까요? 태국 사람 중에 좋아하는 사람 많아요. 소금과 고춧가루 섞어서 콕콕 찍어 먹어요. 과일을 왜 순대 소금에 찍어먹을까요? 여기서 교훈. 맛난 게 흔하면, 우습게 본다. 차라리 자극이 좋다. 삶도 비슷하지 않을까요? 모든 걸다 갖춘 삶은 지루하죠. 고생스러운 도전을 찾죠. 제가 셀프 거지 생활, 그래서 하는 거죠. 흠, 깨달았스



제가 그린 망고 이야기를 왜 꺼냈게요? 그린 망고라고 다 시지는 않아요. 그린 망고 중에요. 일단 만져 보세요. 만져서 물렁물렁, 부들부들한 게 있다면 업어 오세요. 저도 올해 처음 먹어봤어요. 거들떠도 안 봤죠. 시고, 아삭아삭한 세련된 맛이 제 취향 아니라서요. 초록색이지만, 전혀 시지 않은 그런 망고가 있더라고요. 마트에서 살짝 눌러보세요. 아예 노란 망고보다 약간 덜 달긴 한데, 대신, 그 향이 깊어요. 천국 귀족 맛이랄까요? 지금까지의 내가 뭔가 더럽게 느껴진다고 해야 하나? 아, 물론 이 표현은 굉장한 오버입니다. 제가 느꼈던 감정이 그런 류의 감정이었기는 했어요. 신에게 조아리고, 허락받고, 먹어야 할 것 같은, 말 같지도 않은, 기품의 향이 폴폴 나더란 말입니다.


그러니 물렁한 그린 망고, 꼭 도전해 보세요.




이게 바로 문제의 카오니야오 마무앙(ข้าวเหนียวมะม่วง).


카오 - 쌀, 니야오 - 찰진, 마무앙 - 망고. 네, 망고 찹쌀밥입니다.  


여러분은 망고를 좋아합니다. 그리고 약밥도 좋아합니다. 약밥? 안 좋아할 수도 있겠죠. 하지만 싫어하기엔, 애초에 큰 존재감도 없지 않나요? 약밥과 망고가 합쳐집니다. 딱히 감흥 없을 거예요. 굳이 그렇게까지 먹어야겠어? 따지고 싶은 마음도 안 드시죠? 우리에겐 애초에 없는 조합이니까요. 누가 딸기에 약밥을 연유 듬뿍 뿌려서 먹겠다고 합니다. 여러분은 허락하시겠어요? 태국 사람은 허락합니다. 근본 없는 욕망 덩어리들! 절제의 미덕을 몰라요. 무조건 달고, 무조건 부드러워야 해! 아이처럼, 떼를 써요. 유치해요.


네, 이 거지 같은 음식은 밥에다가 설탕 넣고, 코코넛 밀크 비벼요. 어떻게 먹나 싶으실 겁니다. 이걸 태국 사람은 후식으로 먹죠. 밥 배불리 먹고, 다디단 밥을 또 퍼먹습니다. 소금이 들어가긴 해요. 약밥도 간장 들어가듯이요. 그 짠맛이 얼마나 다행인지 몰라요. 덕분에 무사하게 달콤합니다.


태국 사람들처럼 배부를 때 드시지 마세요. 열기구가 된 듯, 불쾌한 포만감이 엄습합니다. 점점 부풀어서 공중으로 꺼져야 할 것 같은, 지긋지긋한 포만감이죠. 태국 사람은 천천히 흉내 내도 좋겠어요. 공복에 드시길 권해요. 출출할 때 커피와 드셔 보세요. 눈이 번쩍, 안구 돌출! 제가 새롭게, 고마워질 거예요.


여럿이서 나눠 먹는 거예요. 한 사람 당 하나씩 주문하면 난리 납니다. 열기구 되는 거예요. 위가 서서히 달궈지며, 풍선처럼 부풀어 오르죠. 인원수대로 시키시면, 아니, 아니, 아니 되옵니다. 물론 디저트 전문점에서 나오는 작고, 아기자기한 건 예외고요. 제가 말씀드리는 건, 식당에서의 경우죠. 가운데 딱 한 그릇 올려놓고, 몇 스푼씩 나눠 먹는 거예요. 양에 대한 압박이 없어야만, 그 맛이 다가와요. 풍요롭고, 은은하게 단 찹쌀밥이 혓바닥을 쓰담 쓰담하죠. 더, 더 부드러운 망고도 같이 씹히면서요. 진짜 태국 사람은 자제를 몰라요. 끝까지 밀어붙이고는, 뻔뻔하게 냠냠하죠. 능글맞아요. 알파고가 결코 이기지 못하는 상대는, 어쩌면 태국에 있을지 몰라요. 태국의 종갓집 할머니들은, 알파고가 못 이겨요. 논리가 아니라, 분석이 아니라, 천진함이거든요. 아이 같은 맛으로, 어른을 설득하죠. 설득당해요.


태국 맛은 못 이겨요.


어서 무릎 꿇고, 어서 달려드세요.


자, 아!

매거진의 이전글 태국 음식 어디까지 먹어 봤니 - 쌀국수(1편)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