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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민우 Mar 11. 2019

안 늙고 싶다! 마흔일곱 살의 몸부림

그대로네요 란 말을 듣고 싶다, 너무!


나가지 말까?


아, 이 꼴로 어떻게 나가? 내 피부는 밀가루 반죽이다. 잡아당기면 한없이 늘어난다. 아홉 살, 열 살 때부터 팔자주름이 있었다. 이제는 조각칼로 파낸 것처럼, 분명한 선이 됐다. 급이 아예 다르니까, 신기하게도 신경이 안 쓰인다. 쭉쭉 늘어나는 밀가루 피부가 나이가 들면서 처지기 시작한다. 이것 역시 급이 달라서, 조금은 흥미롭게 지켜보는 중이다. 가면을 쓴 것처럼 얼굴의 80%가 색이 다르다. 귀 주위는 좀 더 색이 밝다. 햇빛 때문이다. 그런데 왜 전부 까맣지 않지? 예전에 시술받았던 부분이 변색한 게 아닐까 싶다. 속 피부를 태워서 피부를 팽팽하게 당겨준다는 레이저, 두 달 후면 얼굴이 차 오른다는 스컬트라, 얼굴 선을 팽팽하게 당겨주는 한방 매선 침 등을 받았다. 확실히 달라 보였다. 사람들이 왜 이렇게 안 늙느냐는 말에, 그냥 웃었다. 자유로운 영혼이어서, 안 늙어요. 굳이 시술로 효과 봤어요라고 말할 필요가 있어? 이제는 피부과 갈 돈이 없다. 그냥 늙겠다. 노화의 자랑스러운 증거, 진짜 자유로운 영혼이 되겠다. 이제라도!


"와, 대박 늙었어."


아르헨티나 조카 리안이가 인천 공항에서 나를 보자마자 한 말이다. 5년 만이다. 기억 속 삼촌은 세계 테마 기행 삼촌일 것이다. TV로만 본 나를 실제로 봤다. 보통 TV가 얼굴을 대놓고 보여주기 때문에 실물이 낫다. 그 예외가 나다. 얼굴 주름, 볼살의 꺼짐을 화면에서 가려준다. 그게 실제로 드러나면, 열 살 아이에겐 치명적으로 놀라운가 보다. 리안이는 몹시 흥미롭게, 내 늙음을 관찰하고 있다.


그날부터 나는 물구나무서기를 한다. 중력으로 처진 피부를 조금이라도 되돌리자. 하루에 한 시간. 벽에 등을 기대고, 발로 벽을 치면서 한 시간이다. 한 시간 내내는 못하고, 십 분, 오 분. 띄엄띄엄 한 시간을 채운다. 생기 없는 얼굴에 피가 조금이라도 돌기를. 학교 후배들을 만난다. 십 년 이상 보지 못했던 친구들이다. 다시 거울을 본다. 이 꼴로는 죽어도 못 나간다.


유튜브에서 MTS 롤러란 걸 발견한다. 바늘이 있는 롤러다. 바늘로 얼굴에 상처를 내면, 그 상처가 회복되며 피부가 젊어진다고 했다. 기뻤던 이유는 롤러 가격이 5천 원도 안 했기 때문이다. 그래, 이거야. 바늘 달린 롤러가 얼굴 위를 구르면서 따끔. 생각보다 아팠다. 너무 아팠다. 바늘 길이가 길어질수록 고통이 배가된다. 0.75mm 바늘로 꾹꾹 눌러 돌렸다. 유투버는 그렇게 하라고 했다. 손목에 힘을 줘서, 마구마구, 피가 보일 때까지 굴리라고 했다. 못할 게 없다. 피가 철철 난다. 젊어질 수만 있다면, 와, 선배 그대로네요. 그 말만 들을 수 있다면, 더 아플 수 있다. 피범벅 얼굴은, 거울 속에서 살려달라고 했다. 아니, 나는 너를 살려둘 마음이 없다. 늙어가는 괴물아, 닥쳐. 부은 얼굴은 화끈거렸다. 마스크 팩으로 진정시키고, 수분 크림을 덧발랐다.


붓기는 조금씩 사라졌다. 상처는 여전하다. 이 꼴로 어떻게 나가. 형 보고 싶어요. 선배 보고 싶어요. 나를 너무 보고 싶다는 녀석들이다. 어머니 화장대에서 파운데이션을 찾아낸다. 그걸 얼굴에 덧바른다. 와, 파운데이션이 대단하구나. 상처들은 감쪽같이 사라졌다. 어찌나 많이 발랐는지, 미세먼지 마스크도 살색으로 얼룩덜룩했다.


"형, 하나 도안 늙었어요."


붓기로 차 오른 얼굴로, 나는 웃었다. 그 말을 들었다. 이루었다. 너무 좋지만, 크게 웃으면 안 된다. 파운데이션이 갈라진다. 절대로 들켜선 안돼. 나는 자유로운 영혼이고, 늙지 않는 피터팬이야. 그 말을 듣기 위해 피투성이가 됐다. 효과는 모르겠다. 당장은 붓기로 팽팽하다. 죽을 때까지, 이렇게 발버둥 치면서, 끌려가듯 늙을 것이다. 이토록 어리석고, 이토록 쩔쩔매는 자가, 글을 쓴다. 떠돌아다닌다.


새벽까지 술을 마신 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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