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려둘 수는 없죠. 저는 악랄한 인간이니까요
방에 갇혀 지내는 부작용 중에는 벌레 감정이입이 있어요. 요즘엔 아예 갇혀 지내지는 않아요. 일부러라도 카페에서 한두 시간은 있다가 와요. 방콕은 이제 카페에 앉아 있을 수 있어요. 띄엄띄엄 앉아야 하지만.예전처럼은 아니지만 방구석에만 있는 건 아니죠. 그래도 자유로운 삶과는 거리가 멀죠. 청소를 열심히 하는 이유 중에 하나는 벌레 때문이에요. 찡쪽(손가락 길이 태국 도마뱀)이 있을 때는 안 보이더니, 바퀴벌레 요놈들이 기세가 등등합니다. 바퀴벌레 약 같은 걸 사기가 망설여지는 게, 여기저기 나뒹굴 거 아닙니까? 그게 또 보기 싫어서요. 최근에는 전자레인지 안에서 두 마리가 사이좋게 기어 다니고 있더군요. 이게 무슨 의미겠어요? 전자레인지 부품 쪽에 이미 대제국을 건설했다는 거잖아요. 진짜 돌아 버리겠습니다. 햇빛에 말리고, 알코올을 듬뿍 뿌렸지만, 안에 바퀴는 분명히 꼼지락대고 있습니다. 예전에는요. 구형 전기밥솥을 한참 안 쓰다가 꺼냈더니 구멍에서 여러 마리가 우수수 나오더라고요. 심장 마비로 즉사할 뻔했죠. 이놈들과 동거할 마음은 없습니다. 그래서 청소를 열심히 해요. 확실히 바퀴벌레가 덜 보여요. 사람이 있을 땐 절대 안 나오던 놈들이 비실비실 나 글 쓰는데도 기어 나와요. 보니까 투명해요. 윤기는 하나도 없고요. 얼마나 배가 고팠으면 기어 나왔을까요. 아오. 전 왜 감정 이입을 하고 있냐고요. 손 소독제로 사 온 알코올을 뿌려서 죽여요. 도망가기도 하죠. 그래도 타격이 컸는지 기어 나와서 죽기도 하고요. 그러면 또 새끼가 그 옆에서 옹알옹알. 어미를 쫓아 나온 건지, 어미 안에서 나온 건지 모르겠지만 어미 시체 옆에서 왔다 갔다. 휴지로 꾹 눌러 죽여요. 잠시의 연민일 뿐이죠. 에휴. 감옥 영화에서 보면 쥐새끼랑도 친구 먹더만요. 너무 오래 독방에 갇혀 있으니, 생명이면 다 반가운 거예요. 저요? 그 지경까지는 아니거든요. 단지 방이 하나의 우주가 되다 보니까요. 엄청 거대하게 느껴져요. 각각의 생명체에게 캐릭터가 부여되는 거죠.
바퀴벌레에 감정 이입하는 이유가 하나 더 있어요. 정말 보고도 믿기지가 않더군요. 얼어버렸다니까요. 바퀴벌레가 집주인의 사랑을 듬뿍 받는 장면이 아침 방송에 나와요. 뒤집어져서 배 긁어달라고 교태를 부리더라고요. 집주인이 손톱으로 배를 긁어줘요. 수많은 발을 동시에 부르르 떨면서 자지러지더군요. 화목의 극치를 태국 바퀴벌레와 인간이 사이좋게 보여주더군요. 외계인 봐도 이보다 더 놀랍지는 않을 거예요. 어떻게 구워삶았으면 바퀴벌레가 사람을 따를까요? 설마 여러 마리인 건 아니겠죠? 동시에 주인 앞에서 뒤집어져서 배긁어죠잉 이러고 있는 건 아니겠죠? 충분히 가능하다고 봐요. 시작이 어렵지. 꼬드기는 방법을 터득했으면 한 마리로 만족하겠어요? 집 안의 모든 바퀴벌레가 배고파, 심심해, 배 긁어줘. 주인만 보면 기어 나오는 거죠. 제가 너무 편향적이군요. 바퀴벌레 입장은 조금도 생각 안 하고 혐오만 하네요. 닥쳐라, 이것들아. 나는 자비 없다. 이 글을 쓰면서 전의를 불태웁니다. 매일 더 깨끗이 청소하겠습니다.
너희들은 다 죽었어.
PS 태국 방콕에 머물고 있어요. 매일 글을 씁니다. 처음 뵙는 분들은 특히 반갑습니다. 자주 오세요. 바퀴벌레 이야기만 하는 건 아닙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