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시간 굶어 보았습니다 - 공복 감성

배 고플 때는 먹어야 할까요?

by 박민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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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님 여기가 먹을 게 없어요."


통영 RCE 세자트라 숲. 지속 가능한 공존을 전파하는 곳이에요. UN 산하 교육기관인 UN대학에서 지정한 교육 도시로 통영이 선정된 거죠. 토론토에도 있고, 바르셀로나에도 있어요. 페낭에도 있고, 일본 센다이에도 있죠. 공존을 강조해요. 공존이란 단어를 좋아해서요. 세자트라 숲이 더 예뻐 보여요. 세자트라는 산 스크리트어로 공존, 균형을 의미해요. 이 아름다운 곳에서 2주간 머물게 됐어요.


먹을 게 없다?


세자트라 숲의 일과가 끝나면 모두 퇴근하고요. 저만 남아요. 저녁은 스스로 해결해야 하죠. 터미널 근처에서 떡만둣국을 2시에 먹고요. 파리 바게트 앞을 서성입니다. 빵을 사 갈까? 김밥이 낫지 않나?


굶기로 합니다.


공복은 평화일까요? 공포일까요?


공포죠. 허기로 새벽에 일어나 본 사람은 알죠. 새벽에 시리얼을 우유에 말아 식도까지 밀어 넣어 본 사람은 알아요. 그제야 잠이 오는, 포만감의 안도감을 알죠.


세계 테마 기행 촬영 때 마다요. 밥은 제때 먹여주세요. 미리 부탁을 드려요. 촬영 때문에 밥때를 놓치면요. 그렇게 초조할 수가 없어요. 먹고살자고 하는 일인데요. 서럽고, 억울해요. 마른 사람은요. 더 마를까 봐 굶는 게 더 싫어요. 먹고, 또 먹어요. 아침에 퉁퉁 부은 얼굴이 제일 마음에 들죠.


닥터U 몸식을 하라


유튜브에 이렇게 쳐보세요. 이 의사 유투버님 말씀으로는요 성인 평균 20kg 지방이 쌓여있대요. 필요할 때 얼마든지 식량이 되는 지방 20kg이죠. 270인분의 식사가 몸에 있다고 해요. 이런 어마어마한 양을 몸에 지고는요. 허기를 무서워한다는 거죠.


아무것도 안 사갑니다.


제가 2주간 묵게 될 방에는 카누 커피, 메밀 차, 현미 차 티백이 있어요. 밤새 이것만 마시겠습니다. 1인 1식, 간헐적 단식 많이들 하시잖아요.


나른해져요. 잠이 와요. 네 시간 버스 탔으니까요. 피곤할 만도 하죠. 일부러 팔 굽혀 펴기를 해요. 배가 고프고, 피곤한데요. 그냥 해요. 샤워를 해요.


몸의 1차적 요구에 반기를 드는 거죠. 공복도 마찬가지죠. 우린 원하면, 즉시 답해야 했죠. 그게 몸을 위한 일이라 믿었죠.


잠이 달아나네요. 재워달라, 쉬고 싶다. 보채는데 모른 척했더니, 잠이 달아나요. 그래도 기운은 없어요. 먹고 싶어요. 농심 조청 유과를 먹고 싶어요. 생크림이 삐져나오는 케이크가 간절해요. 떡볶이 양념이 듬뿍 올라간 김말이에, 팔도 비빔면 두 개면 되겠어요. 이거면 돼요. 제발 주세요.


메밀 차 티백을 꺼냅니다. 우려요.


메밀차의 향을 알게 됩니다. 처음 마셔본 것도 아닌데요. 이제야 알겠어요. 누룽지보다 더 구수했네요. 제가 원한 건 아니었어요. 부족합니다만, 향까지 다 빨아들이니까요. 죽을 것 같지는 않아요.


다시 몽롱해요.


짜증이 나요. 의욕이 사라지고, 여행도, 공간도 의미가 없어져요.


배가 고픈데 잠이 올까?


잠이 오더군요. 배가 고파서 잠이 안 올 때는요. 젊을 때죠. 잠 와요. 잘 오던데요. 오히려 숙면했어요.


개운한 아침입니다. 카누 커피를 타서요. 사력을 다해 마십니다. 메밀차가 더 맛있어요. 공복엔 메밀차. 공식이 생깁니다. 여전히 뭔가가 먹고 싶지만, 훨씬 덜 힘들어요. 점심을 기쁘게 먹을 수 있겠어요.


의미 있는 실험이에요. 잘 먹고 잘 살려고 돈을 벌어요. 그런데 세 끼가 한 끼로도 가능하다면, 우리의 모든 욕망도 3분의 1이면 되지 않을까요?


욕망은 충족이 우선일까?


아닐 것도 같아요. 욕망은 폭력이죠. 달래도 소용없죠. 일단은 무시하기. 그게 욕망을 잠재우는 방법일 수도 있겠어요.


시간이 유난히 안 가고, 그 시간을 알차게 쓰진 못했어요. 공복이 마냥 좋았던 건 아니죠. 무기력한 순간들도 조금씩 나아지지 않을까 해요. 익숙해지면, 공복의 시간, 빈칸 같은 시간도 쌩쌩해지리라 믿어요.


스무 시간 공복, 공복의 글이에요. 글에서 나른함과 평화가 느껴지시나요?


앞으로 이 공복을 자주 활용해 보겠습니다. 오늘도 한 번 더 시도해 볼까요? 점심만 든든히 먹고요. 통영의 풍경은 천천히 전할게요. 사무치게 아름다운 곳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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