엽기적인 살인 사건의 진행 상황
5세 여자 아이가 산 등성이 돌 위에서 사망한 채로 발견돼요. 실종된 지 사흘 만에요. 5살 아이가 혼자 그곳에 올라가서 죽었다고? 이건 명백히 살인이다. 아이의 이모부가 강력한 용의자로 지목돼요. 실종된 아이의 이모, 그러니까 엄마의 친언니 남편이 아이를 죽였다는 거죠. 아이와 이모부 사이가 각별했다는 것. 아들만 둘이어서 딸처럼 여겼다는 것, 매일 이모네 집에서 살다시피 했다는 것 등이 이유였죠. 사망한 아이의 엄마도, 마을 사람들도 이모부를 살인자로 강력히 의심해요. 사망 당시 알리바이도 제대로 대지 못했죠. 매일 용의자는 뉴스 인터뷰에 응해요. 우리나라라면 변호사를 대동하고, 불필요한 말을 삼갈 테죠. 혹 나중에 법정에서 불리하게 작용할 수도 있으니까요. 매일 성실하게 결백을 주장하고, 아이의 죽음을 슬퍼해요. 태국 사람들은 이 남자에게 빠져들어요. 이모부 편이 돼요. 이모부는 절대로 살인자일 리가 없다. 말하는 걸 보면 인성을 알 수 있다. 차분하고, 조리 있는 저 말투는 그가 정직하기 때문에 가능하다. 게다가 잘 생겼다(이게 더 중요한 것 같지만). 왜 더 젊었을 때 배우를 하지 않았나? 이모부를 지지한다며 사람들이 마을을 방문해요. 방콕에서도 차로 6시간 이상 걸리는 시골 깡촌으로요. 왜 이렇게 가난하지? 세간살이가 없어도 너무 없네. 가구, 가전제품 등이 속속 답지해요. 텅 비었던 방은 가구로 가득 차요. 가전제품은 거절해요. 전기도 안 들어오는 깡촌이라 쓸 수가 없거든요. 대신 집을 지어 줘요. 리포터가 등장해요. 노래 좀 한 번 해볼래요? 노래를 합니다. 세상에, 세상에 이 이모부란 남자. 못 하는 게 뭐야? 음반사에서 정식으로 녹음을 요청합니다. 당신은 가수로 데뷔해야 합니다. 이야기는 여기서 끝이 아니에요. 혹시 연기를 해주실 수 있겠습니까? 이번 사건을 영화로 만들겠습니다. 이모부 역할은 진짜 이모부가 맡아 달라는 거죠. 연기 조금만 배우면 외모는 검증받았으니, 흥행에 도움이 되겠다 싶은 거죠. 오늘은 대형 관광 버스에서 승객들이 우르르 내려서 기념 촬영까지 하더군요. 네, 팬클럽인 셈이죠.
제가 태국을 좋아합니다만, 웃음이 안 나오더군요. 아이가 죽었잖아요. 아이 부모는 여전히 살인자로 이모부를 의심하는 상황이고요. 용의자가 잘 생겼다는 이유로 이미 무죄가 돼요. 아이의 죽음은 희미해지고, 이젠 이모부만 남았어요. 만약 그가 전형적인 범죄형 얼굴이었다면, 지금의 분위기는 불가능했겠죠. 무슨 말을 해도 거짓말처럼 들렸겠죠. 하긴 우리나라도 병역 비리로 구설수에 오른 연예인 중에 소변에 약물을 섞어서 사구체 신염 판정을 받은 청춘스타가 셋이 있죠. 이상할 정도로 다른 연예인들에 비해 구설수에 안 오르더군요. 주인공급 외모가 이유일까요? 지질한 느낌의 연예인은 끝까지 물고 늘어지지만, 주인공급 청춘스타에겐 상대적으로 관대해요. 이제 와서 그들의 죄를 묻자는 게 아니라요. 우리의 마음이 그렇게 허술하다고요. 강자에게 약하고, 약자에게 강한 시선이 남의 나라 이야기가 아니라는 거죠. 이번 사건으로 진짜 범인은 속으로 웃고 있을 거예요. 범인이 누구인지가 중요하지 않게 되었으니까요.
PS 매일 글을 씁니다. 반갑습니다. 오늘은 어떤 하루였나요? 호우로 무거워진 마음, 제 글이 1그람의 기쁨이 되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