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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민우 Aug 04. 2020

안물안궁, 요즘 저의 하루

흐르는 게 시간입니까? 나 자신입니까?


1. 양배추 주스를 열심히 마시고 있어요 


양배추 주스를 열심히 먹고 있어요. 역류성 식도염에 좋다고 해서요. 저처럼 몸이 차가운 사람은 호박, 당근, 생강을 같이 넣어서 먹으래요. 유튜버 한의사님께서 하라는 대로 해서 마시고 있어요. 효과요? 만들어 먹기까지 할 정도면 믿어야죠. 저는 귀가 얇아서요. 처음에 효과가 엄청나요. 플라세보 효과라고 하죠. 그러다가 차츰 내리막, 효과가 있는 건지, 없는 건지. 그 지경이 되면 알아서 시들해져요. 다른 방법을 시도하죠. 플라세보 효과가 진짜 효과거 아닐까요? 나을 수 있다는 믿음이 최고치에 이르렀을 때 분명 몸에 변화가 와요. 마음먹기에 달린 거죠. 진짜 도인은 아플 일이 없겠죠? 모든 병은 마음에서 오는 거니까요. 양배추를 끓여 먹을 게 아니라 도를 닦아야 하는 건가요? 야쿠르트를 섞었더니 겁나 맛있네요. 


2. 제가 사는 단지에 세븐 일레븐 자판기가 생겼어요 


한숨만 나와요. 단지 옆에 세븐 일레븐이 거의 붙어 있어요. 거기까지 가는 것도 귀찮아서 자판기를 이용하냐고요. 이렇게 첨단 문명이 마구 생기면 씁쓸해져요. 기계 문명이 이제 태국을 집어삼키려나 봐요. 말은 이렇게 하면서, 저는 물론 이용하죠. 단지 밖으로 안 나가니 얼마나 편한지 몰라요. 대용량 야쿠르트를 사요. 25밧(천 원). 어릴 때 그리던 꿈의 야쿠르트로군요. 코딱지 만한 야쿠르트를 먹으면서 다짐했죠. 열 개를 한꺼번에 먹을 수 있는 부자 어른이 돼야지. 지금 그 소원을 이루고 있어요. 평균적인 한국 사람보다 턱없이 가난하지만(총 재산 200만 원), 지금 저는 먹고 싶은 걸 언제든지 먹을 수 있어요. 햄버거, 돈가스, 비엔나소시지, 프라이드치킨. 어릴 때 양껏 먹고 싶은 것들이죠. 가끔 불행하다고 생각할 땐 일부러 이런 걸 사 먹어요. 어릴 때  내 소원을 손쉽게 이뤄주는 거죠. 제가 갑자기 전지전능해진 느낌이 좋아요. 오늘도 소원 하나를 들어줬네요. 대용량 야쿠르트. 


3. 사과 국수에 푹 빠졌어요 


이건 진짜 저만의 레시피. 사과 작은 거 한 개, 아몬드 다섯 알, 간장 밥 숟가락으로 두 개, 참 기름 한 숟가락, 마늘 한쪽을 갈아요. 비비면서 부족하면 간장을 더 넣고요. 설탕은 전혀 넣을 필요가 없어요. 사과가 열일 하면서 모든 맛을 책임져 줘요. 다 비빈 후에 연겨자를 살짝 첨가하면 특유의 느끼함은 사라진 세상 맛있는 간장 비빔 국수가 된답니다. 팔아도 대박 날 맛이죠. 한 번 드셔 보세요. 아몬드는 굳이 안 넣으셔도 돼요. 태국 참기름이 볶은 참기름이 아니라서 향이 약해요. 아몬드의 도움이 필요했죠. 마늘이 없어서 마늘 후레이크를 넣었어요. 태국에선 쉽게 구할 수 있거든요. 마늘 후레이크를 지퍼 백에 보관했거든요. 지퍼백 입구에 새끼 바퀴벌레가 말라비틀어져서 죽어 있는 거예요. 그래서, 뭐? 저는 전혀 영향받지 않습니다. 이렇게나 강해졌다니까요. 태국에 오래 살아서일까요? 나이를 먹어서일까요? 더러워져서일까요? 아니면 예전에 테마 기행 촬영하면서 먹은 왕거미, 귀뚜라미 튀김 덕일까요? 아니다. 생활력이겠군요. 그럼 버려? 이 생각을 하면서 악착같이 먹었답니다. 후추와 파도 잘 어울릴 거예요. 저만 믿으세요. 각 잡고 요리했으면, 스타 셰프가 아, 아닙니다. 비주얼은 좀 더러워요. 감안하세요. 


4. 운동해야 산다. 복창 - 나는 죽었습니다 


AB 휠 슬라이드? 이름은 좀 어렵지만, 다들 아실 거예요. 가장 고통스러운 운동 기구가 아닐까요? 꼴랑 열 개만 해도 뱃가죽, 등가죽이 동시에 비명을 질러대더군요. 어쩌겠어요. 그래도 해야지. 제가 운동하는 이유는 간단해요. 소화를 돕기 위해서죠. 식탐도 많은데, 위장에게만 소화를 맡겼어요. 그걸 분산시켜야 하지 않겠어요? 몸이 찢어질 듯 고통스러우면 근육이 생길 거 아닙니까? 먹은 것들이 그렇게 온몸으로 흡수되라고요. 위에만 멈춰있지 말라고요. 젊을 때는 패션 근육이 소원이었다면, 이젠 그딴 거 하나도 안 반갑고요. 멀쩡하게 살고 싶어서 해요. 하루 세 끼 잘 먹고, 잘 자고, 잘 싸는 게 얼마나 어려운지를 이젠 알죠. 그것만 잘하면 대단한 업적이 돼요. 운동하는 사람들 정말 독해요. 저도 독해지려고요. 혼자 운동할 때마다 살려달라고 하면서 해요. 살려 주세요. 살려 주세요. 누구한테 비는 걸까요? 당장 그만 두면 사라질 고통인데요. 이 고통을 참게 해주세요. 그래서 늙어 죽을 때까지 덜 아프게 해 주세요. 살려주세요. 살려주세요. 아주 그냥 애절합니다. 정해진 수명이 있어서 얼마나 다행인지 몰라요. 그래서 이리 애지중지합니다. 잘 쓰고, 본전 잘 뽑고 사라지고 싶어서요. 오늘도 죽었다 복창하고 AB 휠 슬라이드를 굴립니다. 살려 주세요. 살려주세요. 


PS 매일 글을 씁니다. 소소하게 살다가, 소소하게 죽고 싶어요. 그 소소함 속에 가장 위대한 일과는 글을 쓰는 시간이죠. 저는 위대해질 수 있어요. 제가 그렇게 생각하면 돼요. 다 제 마음입니다. 껄껄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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