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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민우 Aug 27. 2020

방콕엔 4만 원 오믈렛을 판다 - 비싼 가격의 상품성

욕하면서 나오는 사람이 절반, 그런데도 바글바글 

한국에 연돈이 있다면, 방콕에는 란제파이(Raan Jay Fai)가 있죠. 연돈은 텐트 치고 전날부터 대기 타야 겨우 먹는다면서요? 란제파이는 네 시간 정도 기다리면 돼요. 요즘은 모르겠네요. 코로나로 손님이 줄었을 테니까요. 그 정도면 기다릴 만하다고요? 저도 그랬어요. 절대 강조하지만, 짧은 일정으로 오셨다면 극구 말립니다. 그 귀한 시간 이거 먹겠다고 허비하시면 아니 되옵니다. 방명록에 순번 적어 놓고 식당 앞에서 죽치고 있어야 해요. 옆 호텔 가서 기다리다가 전 못 먹을 뻔했어요. 순번 담당 직원이 어디 갔다 이제 왔냐며 저를 째려 보더라니까요. 눈 앞에서 기다려야 해요. 여럿이 왔으면 한 명만 고생하면 되자만요. 


대표 메뉴는 게살 오믈렛이에요. 게살이 듬뿍 들어간 오믈렛요. 가격이 얼마일까요? 천 밧이에요. 요즘 환율로 거의 4만 원이네요. 오믈렛 하나에 4만 원요. 세계에서 제일 비싼 오믈렛이 아닐까요? 이 돈이면 해산물 뷔페를 최고급으로 먹을 수 있어요. 랍스터, 왕새우 끝없이 먹을 수 있는 큰돈이죠. 연돈 치즈 가스가 만 원이죠? 기다리는 건 연돈이 더 괴롭지만, 가격은 란제파이가 훨씬 더 사악하죠. 게다가 카드도 안 돼요. 현금만 받아요. 오믈렛 하나로 양이 찰 리 없죠. 세 명이 가면 최소 세 개 메뉴는 시켜야 배가 차죠. 맥주라도 한 잔씩 마시면 십만 원 우습게 깨져요. 맛집에서 십만 원 쓸 수도 있죠. 에어컨 없어요. 에어컨 없는 곳에서 이 가격은 방콕에서도 여기 하나예요. 세계적인 맛집 가이드북 미슐렝에서 1 스타를 받았어요. 미슐렝이 식당을 버려놨다는 말도 나왔죠. 너무 비싸고, 비싼 값에 비해 시설은 열악하기만 하니까요.  


이 식당을 불평하려고 이 글을 쓰는 게 아니라요. 영감을 드리고 싶어서예요. 마케팅적으로 봤을 때 꽤나 흥미롭지 않나요? 우리나라보다도 소득이 낮은 나라에서 4만 원 달걀부침을 사 먹어요. 이유가 뭘까요? 비싸지만 비슷한 음식을 찾을 수가 없으니까요. 그날 시장에서 사 온 신선한 게살이 가득 들어 있어요. 가격 생각하면 당연한 거지만요. 그걸 펄펄 끓는 기름에 돌돌 말아가면서 튀겨요. 달걀 맛과 게살 맛이지만, 뜨거운 상태에서 바로 먹는다고 생각해 보세요. 굉장히 화려한 요리죠. 일흔여섯 할머니가 혼자 요리를 해요. 고글을 쓰고, 숯불에 기름을 달궈가면서요. 차례가 돼서 착석을 해요. 아, 이젠 먹겠구나. 아뇨. 먼저 앉은 사람들 주문을 일일이 소화하면 또 한 시간이에요. 사람들 먹는 거 보면서, 군침 도로 삼켜 가면서 한 시간이 얼마나 가혹한지 모르시죠? 이때가 진짜 고비예요. 오래 기다린다는 걸 알고 갔는데도 담배가 간절하더군요(네, 저 담배 10년 전에 끊었어요). 할머니는 전국구 스타입니다. 1980년대부터 홀로 주방을 책임지고 있죠. 기름 튀는 걸 막기 위해 고글을 쓰고 요리를 해요. 절대로 다른 사람은 조리를 할 수 없어요. 


가격이 비싸도 사람들은 세상 딱 하나뿐인 메뉴에는 지갑을 열어요. 실망했다는 사람도 엄청 많아요. 그래도 손님들은 그 명성과 그 비쌈을 궁금해해요. 일단은 먹어 봐야 직성이 풀리는 거죠.  만 원 핫도그, 2만 원 짬뽕(이건 이미 있을 것 같기는 하네요), 3만 원 햄버거도 충분히 승산이 있다는 얘기죠. 다른 곳에 없는 가치는 대단한 상품성이니까요. 솔깃하시나요? 2만 원 떡볶이 한 번 출시해 보시게요? 란제파이는 40년 이상 투자한 역사도 있다는 건 감안하셔야 해요. 개인적으로는 더럽게 맛있더군요. 기다리다 열 뻗쳐서 식탁 한 번 쿵 내려치고 나가고 싶었는데도 말이죠. 오믈렛 배를 가르고 한 점 먹는 순간 살짝 경련이 일더라니까요. 다시는 안 가야지 했는데요. 한 번 정도는 가보려고요. 코로나로 여행자들이 많이 줄었으니까요. 줄 덜 서고 먹을 수 있는 절호의 기회니까요. 


PS 매일 글을 씁니다. 제가 행복한 사람이어야 글도 행복이 묻어나겠죠? 제 마음을 끊임없이 갈고닦는데 글을 활용합니다. 더 행복한 글을 쓸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꾸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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