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어릴 때 과일을 잘 안 좋아했어요. 사과를 먹으면 속이 메슥거리더군요. 복숭아만 보면 긁기 바빴죠. 사과, 복숭아, 자두는 일단 보면 기겁부터 하게 되더군요. 콩나물, 김치, 파래처럼 밥상에 너무 자주 올라오는 음식들도 손이 안 갔어요. 그렇게 자주 먹는 라면은 한 번도 질린 적이 없는데 말이죠. 고기에 환장을 했는데, 고기가 귀했으니까요. 성장기여서 더 그랬는지도 모르겠네요. 우리 때는 그렇게 소시지에 환장했죠. 특히 비엔나소시지. 좀 사는 집 아이가 비엔나소시지를 싸오면 교실이 쑥대밭이 됐어요. 반찬 주인은 한두 개 겨우 입에 넣을 수 있었죠. 중학교 때 교실은 아프리카 초원과 다를 게 없었어요. 사자는 없고, 모두가 다 하이에나였죠. 그깟 반찬이 뭐라고 뺏고, 빼앗기고, 주먹이 오가고. 가장 충격적이었던 광경은 두 놈이 소시지 반찬으로 주먹까지 오가는데, 그러다가 소시지가 바닥에 떨어졌어요. 그걸 또 주워 먹는 놈이 있더군요. 그놈들이 지금은 아이들 소시지 반찬 사 먹이려고 고군분투하는 가장이 되어 있겠네요.
어릴 적에 아버지가 우유배달을 하셨어요. 처음엔 서울우유를, 나중에는 빙그레 우유를 배달하셨어요. 빙그레에서 떠먹는 요구르트 요플레를 최초로 출시했는데, 반품이 엄청났어요. 상한 걸 팔면 어쩌냐는 거죠. 덕분에 매일 반품된 요플레를 먹고, 어머니는 얼굴에 마사지까지 하셨죠. 그때 어렴풋이 깨달은 게 있어요. 익숙해지기까지 시간이 걸린다. 저라고 처음부터 요플레가 입에 맞았던 게 아니었어요. 원래부터 시큼한 맛이란 걸 알고, 먹으면서 정을 붙인 거죠. 치즈도 마찬가지였죠. 처음에는 이 꼬랑내를 어찌 입에 넣나 싶었어요. 자주 먹다 보니 그리운 맛이 되더군요.
가장 싫어하는 요리가 가지 요리였어요. 밥상에 가지가 올라오면, 못 볼 걸 본 것처럼 거부감이 들더군요. 뽀득뽀득 식감도 섬뜩했어요. 왜 있잖아요. 수수깡을 유리에 긁을 때 나는 소름 돋는 소리. 그 소리가 연상되면서, 씹을 때마다 너무너무 싫은 거예요. 중국에서 가지 요리에 눈을 떴어요. 요리 방식이 전혀 다르더군요. 일단 굽거나, 튀겨서 가지의 숨을 죽여요. 제가 우리나라에서 먹던 가지 요리는 돌고래 등짝 같았거든요. 중국에서 먹은 가지 요리들은 입에서 녹더라고요. 가장 대표적인 요리가 어향가지죠. 한 번 튀긴 가지를 양념과 함께 졸인 요리요. 가지는 이제 가장 맛있는 채소가 됐어요.
고수에 어떻게 적응했는지는 기억에 없어요. 처음에 너무너무 싫어했던 것만큼은 확실해요. 절대로 이 맛과는 친해질 수 없겠다. 되던데요? 어느 순간, 거부감이 전혀 안 느껴지고, 결국엔 더 넣어서 먹는 풀떼기가 되더군요. 고수는 참치 김밥의 깻잎처럼 없어서는 안 되는 채소가 됐어요. 아무리 싫은 음식도 자주 먹으면, 최소한 싫어지지는 않겠구나. 어디까지나 저라는 사람의 개인적인 경험 얘기예요. 사람마다 맛을 다르게 느낀대요. 내가 느낀 맛 그대로, 상대방도 느낄 거라고 착각하잖아요. 아예 맛을 못 느끼는 사람도 많다네요. 그러니 거부감의 강도 역시 사람에 따라 천차만별이지 않겠어요?
이렇게 몇 번의 거부감을 넘고 나니까, 어떤 음식도 먹을 용기가 생겨요. 언젠가는 맛있어지는 날이 오겠지. 그래서 결국 쓰레기와 똥냄새의 콜라보 두리안을 즐겨 먹게 됐다는 거 아닙니까? 왕거미와 귀뚜라미까지 밥과 함께 먹을 수 있는 '거의 초인'이 됐죠.
익숙한 것만 먹으면서 살 것인가? 새로운 걸 도전해 보면서 살 것인가? 정답은 당연히 없죠. 평균적으로 여자가 새로운 맛에 훨씬 유연해요. 즐기기까지 해요. 남자들은 낯설다는 이유로 마음의 문을 닫는 경우가 더 많더군요. 저도 여행이 일이 되면서 남보다 조금 더 먹어봤다 뿐이에요. 여행이 없었다면, 낯선 음식 멀리하며 살았겠죠. 재밌는 건 적응하고 나서, 거부감 들던 음식이 가장 애정 하는 음식이 됐다는 거죠. 똠양꿍은 반도 못 먹었는데, 지금은 없어서 못 먹는 음식이 됐죠. 두리안은 그 고약한 냄새가 이해가 다 되더라니까요. 냄새까지 좋았다면 한 통에 십만 원은 했을 거예요. 지금도 동남아시아에서 가장 비싼 과일이거든요. 억지로 노력까지는 하지 마시고요. 재밌는 도전을 몇 번 해보세요. 의외로 자기에게 꼭 맞는 음식은 못 먹어본 음식 중에 있을 수도 있는 거니까요. 아, 지금은 사과 잘 먹어요. 아침 사과가 몸에 좋다면서요? 몸에 좋은 게 최고죠. 그깟 맛이 뭐라고요.
PS 매일 글을 씁니다. 세상에 친구를 가장 많이 사귀는 법은 글을 쓰는 게 아닐까 해요. 서로의 안부가 야트막하게 궁금한, 기분 좋은 거리감의 친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