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여행을 왔을까? 자괴감 들 때 다들 있으시죠?

집 나가면 고생이지만, 이런 고생은 싫더라고요

by 박민우

1. 이건 인종 차별이 분명해! 푸대접받을 때


인종 차별이라고 해야 할까요? 아니면 저만 차별하는 거라고 해야 할까요? 아르헨티나 와인으로 유명한 도시 멘도사가 있어요. 음식 주문하고, 음식이 나에게 오기까지, 계산을 하고, 거스름 돈을 받을 때까지 총 열 번은 애걸복걸했네요. 주문 좀 확인해 달라. 잔돈을 아직 못 받았다. 그럴 때마다 서빙 보는 사람들 표정이 얼마나 괘씸했는지 몰라요. 그냥 닥치고 좀 앉아 있어. 딱 이 표정이었죠. 인종 차별을 의심하는 이유는 저보다 늦게 온 사람들이 먼저 음식을 먹었기 때문이죠. 동양 사람은 저 하나뿐인데도, 어쩌면 제 주문만 콕 집어서 무시하는 걸까요? 바빴다. 정신이 없었다. 네, 일부러 그러지는 않았겠죠. 메뉴가 나왔다는 것만으로도 감지덕지해야 하냐고요? 그래 밥을 준 게 어디야? 우리는 너를 쫓아내고 싶은데, 왜 못 알아듣는 거니? 뭐, 거의 그런 느낌적 느낌이 들었으니까요.


2. 기차가 안 오고, 비행기가 연착하고. 꽁꽁 발이 묶였을 때


여덟 시간이었나? 아홉 시간이었나? 인도 바라나시에서 다르질링까지 가는 기차를 기다렸던 시간이 가물가물하네요. 너무 큰 충격으로 기억력에 손상을 입었나 봐요. 철로에서는 팔뚝 만한 쥐들이 수십 마리 뛰어다니고, 기차역 바닥에는 바퀴벌레 가족이 당당히 걸어 다녀도, 누구 하나 신경도 안 써요. 그래요. 생명은 소중한 거니까요. 기차가 결국은 오는 게 신기하더군요. 역 주변 숙소에서 자는 게 무서워서 버텼더니, 그 마귀 같은 기차가 천천히 오지 뭡니까? 볼리비아였을 거예요. 표 사고 시간 맞춰 갔더니, 버스가 가고 없는 거예요. 제시간에 출발이 아니라, 미리 출발하는 버스도 있더군요. 내일 당장 버스를 타고 국경을 넘어야 하는데, 파업으로 발이 묶인 적도 있었죠. 비행기 연착으로 공항에서 칼잠 잘 때는 피가 마르죠. 나만 내버려 두고, 비행기가 뜰까 봐요. 남미 여행을 끝내고 한국으로 돌아올 때도 비행기가 연착됐어요. 아내가 교통사고로 급사해서, 화장터라도 지키고 싶은 한국인 남편의 피울음이 아직도 잊히지를 않네요.


3. 내가 호구로 보이냐? 이 사기꾼들아아아아아


사람을 들들 볶는 카펫 장수나 사기꾼은 터키 이스탄불에 많아요. 카펫 구경하라고 차까지 내주더니, 안 산다고 돌아서니까 칼을 들이밀기도 하고(일본 친구 카즈마 이야기), 같이 맥주나 한 잔 하자면서 이상한 곳으로 끌고 가서 술 한 잔에 몇 십만 원을 덤터기 씌우기도 하죠(이건 제 이야기). 이스탄불은 세상 둘도 없는 아름다운 도시지만, 세상 둘도 없는 사기꾼들의 집결지죠. 라이벌 도시로는 인도 델리가 있어요. 삐끼들 때문에 걷는 것 자체가 스트레스예요. 가장 흔한 수법은 기차표 파는 곳이 바뀌었다면서 기념품 가게나, 바가지 여행사로 끌고 가는 거죠. 저한테 달려드는 사기꾼이 의심스러워서 경찰에게 물었죠. 표 파는 곳이 이사를 한 게 맞냐고요. 경찰 놈이 맞대요. 경찰도 사기꾼이랑 한 패였던 거죠. 에휴. 여행을 온 게 맞나요? 인도 여행이 이렇게 스펙터클합니다.


4. 몸 아프면 그깟 볼거리가 뭐가 중하겠어요?


제가 제일 싫어하는 곳 중 한 곳이 '아타카마 사막'이에요. 지구에서 가장 건조한 곳이기도 하죠. 그때 저는 목이 갈라지고, 기침하면 피가 나왔어요. 그 무시무시한 건조함이 저를 말리고, 갈기갈기 찢어 놓더군요. 감기 몸살이 겹치니까 사막이 지긋지긋하더라고요. 아르헨티나로 넘어가고 싶었는데, 버스는 며칠을 더 기다려야 한대요. 매일 피기침을 하면서, 쑤시는 몸을 이리저리 뒤집어가며 선잠을 잤죠. 뭐가 신비롭다는 거죠? 말린 찰흙이 덕지덕지 펼쳐진 걸 보고 감동하라는 건가요? 아프면 다 소용없어요. 아름다움이 절대 눈에 들어오지 않아요. 지금도 아타카마 사막은 다시 가고 싶지 않은 곳이에요. 멕시코시티, 칭다오, 조지아 트빌리시(나중에 좋아졌지만) 등이 대표적인 예죠. 어떤 장소가 굉장히 실망스러웠나요? 혹시 배탈이 나거나, 몸살로 시름시름할 때 아니었나요? 몸 아프면 장사 없어요.


5. 숙소가 기대 이하일 때


자신이 얼마 짜리 숙소에 묵느냐에 따라 기대치가 달라지죠. 무조건 아끼고 보자. 4천 원, 5천 원, 만 원 방에서 잘 때는 기대가 크지 않았어요. 그래도 베드 벅스가 출현하는 곳은 지긋지긋하더군요. 온몸에 붉은 반점이 가득해져서 기상해 보세요. 괴기 영화가 따로 없다니까요. 요즘엔 도미토리에서 잘 안 자요. 돈이 많아서라기보다는, 그만큼 숙면이 소중한 거죠. 오늘 숙소가 대표적인 예인데요. 지금 저는 태국 난(Nan)이라는 곳에 와 있어요. 6만 원에 3성급 방을 예약했어요. 뷰가 없는 거예요. 1층 방인데, 반지하 느낌 나는 1층이네요? 창밖으로 주차장 겸 뒷마당만 보여요. 창문이 없다고는 할 수 없는데 폐소 공포증이 절로 걸리는 방이에요. 저만 이렇게 싫어하면 뭐하냐고요? 후기를 보면 다들 이렇게 좋은 방 없다. 칭찬 일색이에요. 하긴 특급 호텔 스위트 룸처럼 에어컨도 두 대, TV도 두 대나 돼요. 욕조도 있고요. 누군가는 이런 게 큰 장점일 수도 있겠네요. 빨리 방에서 탈출하고 싶은데 폭우까지 쏟아져요. 아오, 진짜 열 뻗쳐서. 여행 정말 괜히 왔다니까요.


PS 매일 글을 씁니다. 공감의 힘을 믿으니까요. 나의 하루가 누군가에게는 과거를, 누군가에게는 미래를 선물해 준다고 믿으니까요. 좋은 하루는, 좋은 글 하나로도 가능하니까요. 저의 글이 그런 글이 되도록 노력하겠습니다. 꾸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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