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 시대 떠돌이의 비애
방심하고 있었어요. 코로나 사태로 모든 게 다 처음인 건 개인만은 아니죠. 태국 정부는 외국인에게 매달 야금야금 한 달씩 더 있으라고 비자 연장을 해줬어요. 넉 달 째인가? 다섯 달 째인가? 그래요. 이변이 없는 한 이번 달도 그렇겠지. 9월 26일이 연장 종료였지만 마음 놓고 있었어요. 그렇잖아요. 지금 태국에 있는 수많은 외국인을 갑자기 쫓아낼 이유가 새삼 있겠어요? 외국에서 오는 여행자들을 14일 격리하는 대신 9개월을 머물 수 있게 해주는 방안도 검토 중이라는데요. 그리고 그렇게 쫓아낼 마음이 있다면, 좀 더 구체적으로 이번 달까지만이다. 확실한 언급을 해줬겠죠. 오늘 주태국 한국 대사관 홈페이지에 들어갔더니 9월 26일 비자 종료가 맞고, 9월 27일부터는 불법 체류자를 법적 조치한다는 공지가 딱 있는 거예요. 제가 지금 불법 체류자가 된 거예요. 가슴이 철렁하지 않겠어요? 부랴부랴 대사관에 전화를 해요. 전화를 안 받네요. 저와 같은 비자 문의는 오후에만 가능하대요. 저는 다시 안절부절 여기저기 정보를 찾아봐요.
10월 31일까지 자동 연장
이 검토되고 있대요. 이 나라가 태국이란 사실을 깜빡했어요. 매번 비자 연장도 종료 며칠 전에 알려주는 식이었거든요. 체류하는 사람들은 사실 대처가 불가능해요. 종료 끝. 이렇게 알리면 당장 비행기를 찾아내야 해요. 코로나 시대에 비행기도 없잖아요. 태국 정부도 그 정도는 감안해 주겠지. 날벼락같은 종료 선언으로 간담을 서늘하게 하더니, 10월 31일까지 연장이란 말이 또 나오고 있어요. 남의 나라에 얹혀사는 주제에 구시렁 대지 않을게요. 다만 제 하루하루가 아슬아슬해졌어요. 10월 31일까지 다행히 연장이 된다면, 이젠 출국해야죠. 이런 불안함 속에서 머무는 건 어리석은 짓이죠. 이렇게 자유롭게 올 한 해는 태국에 머무를 수 있을 줄 알았어요. 매일매일 안락함에 감사했어요. 역시 삶은 이렇게 반전을 선물해 주네요. 강력한 충격파에 찌릿찌릿해요. 당장은 불안하고, 침도 잘 안 삼켜져요. 그런데 돌아보면 이런 시간들이 저에게 새로운 길을 만들어 주더라고요. 가장 우울한 건 태국으로 다시 돌아오는 게 쉽지 않다는 거죠. 그것도 먼 미래죠. 제가 할 수 있는 게 없다면, 고민은 사치고, 낭비죠. 저라는 주사위가 다시 공중에 훅 띄워졌어요. 당연히 두렵죠. 하지만 1부터 6중에 하나의 숫자는 분명히 나올 것이고, 그 숫자를 받아들일 능력이 저에게 있다는 거죠.
겨울, 한국, 자가 격리 14일
이제 이런 상황들을 구체적으로 떠올려 봐야겠어요.
예측불허의 삶이라서 감사합니다.
PS 매일 글을 씁니다. 불안한 삶도 누군가에게는 위로와 귀감이 될 수 있음을 믿습니다. 저처럼 살아도 돼요. 저처럼 살지 않아도 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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