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자란 사람이고 싶지 않았지만, 그렇게 됐습니다
군대에서 고문관이었어요. 자랑 아니에요. 수치에 가까운 감정이죠. 너 군대에서 고문관이었지? 남자들의 세계에선, 이런 농담이 '패배자'를 색출하는 대화법이니까요.
대학교 과 동기들이 행정병으로 주로 차출되더라고요. 행정병으로 썩겠구먼. 군생활을 위한 멘털을 따로 준비하지 않았어요. 회사원 같은 군생활을 하게 되면 어쩌지? 김칫국부터 마셨죠. 멘털이 처음 나간 건 훈련소였어요. 사실이냐고 묻는 사람들이 있더군요. 거짓말을 왜 쓰겠어요? 공포심을 조장할 마음도 없어요. 옛날 군대였고요. 지금은 그런 분위기가 아니겠죠. 딴생각 안 나게 종일 얼차려와 체력 훈련이었어요. 저녁 점호 시간에 다른 내무실 동기가 앞으로 꼬꾸라져요. 상대편 침상에 그대로 얼굴을 박아 버려요. 안면부가 박살이 나서 후송을 가죠. 언덕까지 선착순이었는데, 찍고 내려오다가 또 다른 동기가 한쪽 음낭이 터져 버려요. 네, 불알이요. 그렇게 또 후송을 가요. 남자다움을 키우는 병영 체험 정도로 생각했던 저는 그때 멘털이 나가요. 살아 돌아가야 한다. 무사히 돌아가야 한다. 그 목표가 결코 쉽지 않아 보였어요.
자대 배치를 받고 아침 점호가 끝나자마자 모두 우르르 어딘가로 뛰어가더군요. 일렬로 서있고, 상병 계급이 고래고래 소리를 질러요. 세면대를 손가락으로 긁었더니 밀리더래요. 얼마나 청소를 대충 했으면, 세면대가 밀릴 수 있냐며 엎드리라더군요. 그리고 군홧발로 한 명씩 배를 뻥뻥 차요. 저도 덜덜 떨면서 차례를 기다렸죠. 이등병은 열외라더군요. 맞지는 않았지만, 멘털은 나가더군요. 세면대를 때가 안 나오게 박박 밀면 안 맞을 수 있을까? 머리카락이 나와도, 거울에 얼룩이 보여도 집합을 시킬 테니까요. 그깟 청소로 매일 머리 박고, 군화로 차이겠구나. 이걸 26개월간 해야 자유가 온다. 26개월 후는 결코 오지 않을 거야. 그때부터 저는 멍청이가 돼요. 군생활을 잘할 자신이 없는 거예요. 싹싹하고, 우수하게 지옥을 견뎌나갈 희망 자체가 안 보이더라고요. 가방끈만 길었지, 비리비리 쓸모없게 생겼다면서 환영받지도 못했어요. 움츠러들 수밖에 없었죠. 하루는 탄약고에서 경비를 서는데, 간부가 순찰을 나왔어요.
-탄약고 경비 구역이 어디서부터 어디야?
-저기서부터 저기까지입니다.
분명 교육을 받았을 텐데, 하나도 기억이 안 나는 거예요. 늘 멍해 있었으니까요. 그래서 손가락을 들고, 저기서부터 저기까지라고 했어요. 제가 생각해도 참 어이가 없더군요. 그 간부는 얼마나 더 어이가 없었을까요? 그 손가락으로 가리킨 지점은 정답 근처나 갔을까요? 보초를 서다 깨지면 그냥 넘어가지 않아요. 커다란 페타이어를 끌고 연병장을 돌아야 해요. 그걸 자주 하면, 고문관이 돼요. 쓸모없는 존재가 되어, 유령처럼 내무반을 떠돌죠. 매일 밤마다 얼차려였어요. 관물대에 다리를 올리고, 치약 뚜껑에 머리를 박는 묘기에 가까운 얼차려도 받았죠. 땀이 프라이팬 크기로 번질 때까지, 그 꼴로 버터야 했어요. 나무 울타리만 넘으면 탈병병이 되는데, 울타리는 낮기만 했어요. 그걸 넘으면 잠깐이라도 자유인이 되는데, 죽고만 싶은 거예요. 실제로 동기 중 한 명은 손목을 긋고, 다른 부대로 전출됐죠. 객관적으론 탈영병이 되는 게 죽는 것보다 낫잖아요. 하지만 죽는 쪽이 깔끔해요. 가족까지 울고 불고 하지 않아도 되니까요.
하루는 외부 작업을 나갔는데 공사장 아저씨가 저를 불러요. 불발탄을 저에게 주더군요. 이걸로 포상 휴가 가라고요. 행정반에 가져갔다가 부대가 발칵 뒤집혔어요. 불발탄은 언제고 터질 수도 있는 거잖아요. 그걸 굴비처럼 손에 들고 거리를 활보하고, 부대 내로 가지고 온 거죠. 최소한의 상식도 없었던 거죠. 저는 전설의 고문관으로, 타 부대까지 이름을 떨쳐요. 전설까지는 아니었을 수도 있어요. 별별 일이 다 있었으니까요. 태권도가 하기 싫어서 탈영한 이등병, 가혹행위에 실어증에 걸려 말 한마디 안 했던 선임병, 대구 고속버스 터미널에서 구타를 했던 선임병 이름을 하나씩 부르고 투신자살했던 본부 포대 후임병까지. 공중분해되지 않았던 게 이상할 만큼, 사고가 빈발했던 포대였죠.
자신이 잘할 수 있다는 확신이 사라지면, 하루하루가 지옥이에요. 살고 싶지가 않아요. 자신의 의지가 살려두려고 하지 않아요. 죽어라, 죽어라. 계속해서 다그쳐요. 창고 어딘가에 목을 맬 곳이 없나? 저 역시 두리번거렸던 날이 있었으니까요. 이런 어두운 이야기를 굳이 하는 이유요? 궁지에 몰린 경험은 누구에게나 있다는 걸 알려드리고 싶어서요. 삶이 죽음보다 따뜻하지 않다는 것, 힘을 내라는 말이 얼마나 무책임하게 들리는지 알았다는 것, 죽음을 결행하는 건 엄청난 용기가 필요하다는 것도 그때 배웠어요. 궁지에 몰리면 바닥을 드러내죠. 저의 바닥은 아름답지 않았어요. 그래도 없었던 것처럼, 이제는 괜찮은 것처럼 연기하고 싶지 않아요. 그래도 아파보지 않은 사람이기보다는, 바닥을 들킨 사람이고 싶어요. 글을 쓰는 사람이, 급류에 한 번도 휩쓸리지 않고, 거친 파도를 묘사해선 안 되니까요.
PS 매일 글을 씁니다. 오늘은 밝은 면을, 내일은 어두운 면을. 내 안의 수백 가지 모습 중에 하나씩 뽑아서 글로 옮겨요. 재밌어요. 수백 개의 저를 만나는 시간이라서, 이 시간이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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