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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민우 Nov 28. 2020

친구에게 10억이 생겼다. 내 행복은 유리 멘탈

우리를 지킬 수 있는 마음 근력, 다들 가지고 계신가요?


저는 지금 방콕 힐튼 호텔에 와있어요. 촌놈이 출세했죠. 외국 관광객이 끊겼으니, 할인을 해서라도 손님을 받아야죠. 1박에 7만 5천 원이에요. 조식 포함해서요. 아침에 눈을 뜨니 짜오프라야 강이 보이고, 4층 헬스장에선 저를 보자마자 보송한 타월부터 챙겨줘요. 출입 카드가 잘 안 되다고 하니까, 아예 한 장을 더 줘요. 세 장이나 있어요. 쓸데없이요. 잠깐 수영장에서 바람 좀 쐬고 들어왔더니, 청소가 다 되어 있더군요. 아예 외출을 한 것도 아닌데, 왜 이리 서둘러서 청소를 해놨을까요? 방콕은 세계 호텔의 전쟁터죠. 살아남으려면, 부지런해야죠. 반포 자이 아파트에서 살면, 이런 기분일까요? 십 분만 걸으면 신세계 백화점이고, 한강이고, 고속버스 터미널이죠. 매일 좋기야 하겠어요? 며칠 지나면 무뎌지기 마련이죠. 학군도 좋고, 끼리끼리 살고도 싶고요. 강남불패는 평생 계속될까요? 세상일 또 모르죠. 드론 자동차가 상용화되면서 서울 부산을 삼십 분만에 날아갈 수 있다면, 지리적인 가치가 많이 떨어지겠죠. 부산에서도 서울에 있는 학교로 통학이 가능해지는 거니까요. 하지만 최고에 대한 열망은 사라지지 않을 거예요. 나 어디에 살아. 이것만으로도 자랑이 되죠. 드론이 개발되고, 거리의 의미가 퇴색해도 부자 동네는 쉽게 사라지지 않을 거예요. 조금이라도 남보다 나은 곳에서 살고 싶은 법이니까요. 그냥 잘 난 것보다는, 딱 꼬집어서 너희들보다 잘 나야 재미나니까요. 


저는 행복에 관심이 많아요. 행복은 어디에서 오는 걸까요? 행복의 조건으로 의식주, 건강은 누구나 동의할 거예요. 건강하고, 의식주가 해결된 사람들은 다 행복한가요? 연예인들은 공황장애가 없는 사람이 없더군요. 갑자기 숨이 안 쉬어지고, 몸이 떨리고, 진땀이 흐르고, 걸을 수가 없게 돼요. 다른 사람에겐 멀쩡한 세상이, 두려운 세상이 돼요. 잃을 게 많은 사람들이 많이 걸리는 병인가 봐요. 아이들 먹이고, 가르치려고 새벽부터 농사를 짓던 부모님 세대에선 참 보기 드문 병이었으니까요. 그렇다면 행복은 다분히 심리적인 걸까요? 


-어느 손에 동전이 있나, 없나를 맞춰 보세요. 맞추면 십억을 주겠소. 


뜬금없는 예지만, 누가 그런 제의를 해요. 나와 친구를 앞에 두고요. 친구는 왼 손, 나는 오른손. 네, 친구가 맞혔어요. 신사임당 5만 원 권 가득한 샘소나이트 가방을 친구가 받아요. 친구는 사라지고, 나는 집 앞 가게에서 라면 하나를 들고 가서 끓여 먹어요. 목에서 넘어가야 말이죠. 친구란 새끼가 어떻게 이럴 수가 있죠? 10억이 누구 때문에 생긴 건데요? 내가 왼 손이라고 말하려고 했어요. 그놈이 선수를 친 거죠. 어쩔 수 없이 오른손이라고 답했어요. 둘 다 왼손에 몰빵했다가 다 잃을 수도 있는 거니까요. 그러면 반은 줘야죠. 반의 반이라도 줘야죠. 그걸 몽땅 들고 사라져요? 세상에 믿을 놈 없다고, 이런 놈을 친구라고 뒀어요. 이런 큰돈을 세금도 안 내고 증여하는 거 불법이죠? 국세청에 신고부터 해야겠죠? 저 좋자고 그러는 건가요? 사회정의 몰라요? 눈먼 돈, 세금 도둑 때문에 나라가 거덜 나면 어떻게 해요? 해외로 도망갈 생각부터 할 거예요. 인천 공항으로 내빼기 전에 잡아야죠. 저라면 천만 원이라도 줬어요. 욕심이 화를 부른 거죠. 이놈은 그런 행운을 차지할 자격이 없어요. 감방에서 썩어야 해요. 서둘러야 해요. 발리 야자수 아래서 탱자탱자 모히또 마시는 꼴을 어찌 보나요? 저 잠 못 자요. 화병으로 제 명에 못 살아요. 아니아니, 말이 헛나왔어요. 사회 정의를 위해, 그놈은 행복해져서는 안 돼요.  


아무것도 달라진 게 없는데도, 꽤나 불행한 사람이 됐어요. 순식간에요. 가까운 친구가 잘 되면, 좋아요. 좋은데 자신이 잘 못 산 것처럼 느껴져요. 비참하고, 쓸쓸해요. 큰 불만 없던 세상이 산산조각이 나요. 갑자기 십억을 손에 쥔 친구는 행복할까요? 없던 공황장애가 생기지는 않았을까요? 누가 문만 두드려도 깜짝 놀라지 않을까요? 은행에 이 큰돈을 맡겼다가, 국세청에서, 검찰에서 연락이라도 오면 어쩌지? 돈을 어디에 숨겨야 하나? 밤이면 잠이  와야 말이죠. 수면제를 사려고 늦게까지 여는 약국을 찾아다녀요.  


프레임의 노예가 되지 않기 위해서는, 10억은 내 것이 아님을 재빨리 받아들여야 해요. 그게 사실인데도, 쉽지 않아요. 누군가의 아파트가, 주식이, 코인이 폭등한다고 왜 내 배가 아픈 걸까요? 왜 불안한 걸까요? 내 것일 수도 있었다. 여기서부터 지옥 시작이죠. 농락당하는 거죠. 내 것은 내 몸뚱이, 내 마음, 내 통장이에요. 국어 실력이 별로 안 좋아도, 그 정도는 아시죠? 인간의 순진한 질투로 웃는 사람은 누구일까요? 놀아나지만 않아도, 우리의 삶은 훨씬 튼튼해질 거예요. 마음의 근력을 키우면, 세상의 모든 가치가 조금은 더 우호적으로 보이지 않을까요? 배가 아픈 사람은, 공황장애는 훨씬 덜 걸릴 것 같기는 하네요. 나의 조건이  달라지지 않았다면, 마음도 달라져서는 안 된다. 그걸 분명히 인식하고, 헬스하듯이 마음 운동 하자고요. 내 마음은 내 것이다. 내 것임을 증명하라. 이런 주문이라도 외우면서요. 


PS 매일 글을 씁니다. 내가 이런 이야기를 하려고 했나? 시작의 마음은 사라지고, 엉뚱한 글이 나올 때도 많아요. 제가 모르는 의도가 있었다고 믿으려고요. 나와야 할 글이 나오는 거겠죠? 늘 가볍고, 깨끗한 눈으로 세상을 보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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