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아는 가장 흙과 연결된 사람

우리 이모

by 모노

이모는 내가 아는 가장 흙과 연결된 분이었다.

지난 추석 저녁에 엄마와 큰 이모 집에 갔다. 이모가 이사한 뒤로 가보지 못해서 벼르던 참이었다. 삼십 년 넘게 보던 넓은 단독 주택이 아닌 빌라 입구로 들어가는데 기분이 이상했다.




내게 시골의 추억을 준 곳은 친가도 외가도 아닌 이모네였다. 고양시의 많은 곳이 신도시화되었지만 서울과 지척에 이런 곳이 있나 싶을 만큼 여전히 시골인 곳도 있다.

우리 큰 이모네가 그렇다. 지금은 밭농사만 조금 짓지만 내가 어릴 때 이모 집 앞은 넓은 논이었다. 봄이 되면 그 넓은 논에서 모내기를 하고 가을이 되면 벼를 베었다. 집 마당엔 커다란 무쇠솥이 있었는데 이모는 그 어마어마한 비주얼의 솥에 어마어마한 양의 뭔가를 끓여 동네 사람들과 나누곤 했다. 이모 집엔 언제나 내가 모르는, 그러나 나를 아는, 동네 아줌마들이 와 계셨다. 그러니까 이모 집은 동네 사람들의 아지트 같은 곳이었다.


이모는 내가 아는 가장 흙과 연결된 분이었다. 때가 되면 배추, 파, 고구마, 상추같이 땅에서 나는 것들을 가져가라며 전화하곤 했다. 엄마와 이모들이 며칠에 걸쳐하는 김장에 한 번도 참석한 적 없지만 언제나 내 몫의 김치가 반듯한 네모 통에 담겨 전달됐다.




이모의 새 빌라에 이모는 없고 이모의 막내아들인 사촌오빠 부부와 애들이 치킨을 뜯고 있었다. 이모는 사촌언니들과 강원도 갔다고 했다.


사촌오빠는 얼마 전 이모가 이상했다는 말을 보탰다. 어제 이모가 하루 종일 연락이 안 돼서 식구들이 걱정했는데 혼자 핸드폰도 없이 동네를 돌아다니다가 동네 친구 손에 이끌려 집에 왔다는 거다. 나중에 정신을 차린 이모가 침울해하셔서 사촌언니들이 모시고 나간 란다. 이모에게 드리려던 용돈 봉투에서 돈을 꺼내 사촌오빠의 애들에게 나줘주고 그 집을 나섰다. 돌아오는 차 안에서 엄마와 나는 이모만큼은 아닐 테지만 침울해졌다.




엄마와 큰 이모는 스무 살 가까이 차이가 난다. 엄마가 어릴 때 이모가 결혼했기 때문에 둘은 한 집에서 산 기억이 거의 없다고 한다. 그런 엄마가 결혼해서 큰 이모네 동네에 살게 되면서 엄마와 이모의 인연이 깊어졌다. 엄마에게 이모는 친정엄마 같은 언니가 아닐까. 외할머니가 약간 도시 여자 같은 분이시라, 외할머니에게 주로 기대되는 것들, 반찬을 해주거나 애들을 봐준다거나.. 이런 것들을 큰 이모가 해주셨다.


추석 명절이 끝나고 사촌오빠는 이모를 검사받게 했다.
결과는 초기가 지난 알츠하이머였다.


이 소식을 듣고도 나는 잘 산다. 그래도 이모를 떠올리면 여지없이 침울해진다. 이모가 동네를 혼자 떠돌던 날을 설명하면서 사촌오빠가 사용한 '침울'이라는 단어가 마음을 찔러서 이 글에도 벌써 네 번째 쓰고 있다. 만나면 눈물이 날 것 같아서 찾아가지도 못하고 엄마를 통해 소식을 듣는다. 내가 너무 걱정할 필요는 없겠지. 이모에겐 다정한 네 명의 딸과 더 다정한 막내아들이 있으니.




이모가 나와 여동생을 쌍둥이처럼 입혀서 계곡에 데려가던 게 생각난다. 이모집 마당에 있던 강아지들, 마당 옆 개울... 이모는 내 좋은 추억에 지분이 많다. 우리 엄마에게 엄마 같은 언니, 내게 엄마 같은 이모, 내 딸 은수에게 외할머니 같은 이모할머니, 내게도 은수에게도 유일한 시골이었던 이모 집.


이모를 생각하면 마음에 작은 바람이 분다. 그 바람은 고작 내 마음과 강아지풀을 흔들 수 있는 것이지만, 혹시 내가 따뜻한 사람이라면 그 바람이 나를 그렇게 만들었다.

이모가 건강하고 온전하게, 받아 마땅한 것들을 다 받으면서 사셨으면 좋겠다. 그리고 그 받아 마땅한 것에 내가 이모를 생각하며 쓰는 글도 꼭, 있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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