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다는 건 괜찮은 일일까

우울증 일기

by 모노
요즘엔 어떻게 지내세요.


의사와의 대화가 늘 이 질문으로 시작되기 때문에 병원으로 가는 길에 생각해봤다.

'나 요즘 어떻지?'


지난 2주간은 재택근무였다. 초등학생 딸을 7시 40분에 스쿨버스에 태워야 해서 재택 근무라도 6시 반에 일어난다. 딸을 준비시켜 태워 보내고 들어와서 한 시간 정도를 더 잔다. 꿀맛 같다. 8시 40분쯤 일어나 노트북을 켜고 하루를 시작한다. 양치질만 한 채로. 출근할 때보다 재택일 때 잠이 쏟아져 일을 못했고 결과적으로 우울했다.


이런 가벼운 일상을 의사를 바라보며 조근조근 말했다. 마스크로 가려져 잘 모르겠지만 나보다 어린 것 같다. 내 오랜 담당의는 아빠 또래였는데. 이 병원으로 옮긴 게 6개월 전이다.


의사와 환자의 의자가 멀리 떨어져 있어서 공간이 낯설었다. 그때 나는 우울증 삽화가 끝나가고 있었다. 3개월 정도 시간을 두고 서서히 약을 줄이자고 의논한 상태였는데, 무슨 마음이었는지 나는 약을 그냥 끊어버렸다. 그리고 처음 경험하는 지독한 불안 증상을 견디다 못해 다시 병원을 찾았었다. 내 상태의 최저점을 보인 뒤라 그런지 이 의사에게 마음이 간다. 조금 더 많이 털어놔도 될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나는 우울증 약을 조금 늘리면 어떨지 물어봤다. 의사는 괜찮을 것 같다고 하며, 내 상태가 아주 좋을 때와 비교해서 요즘이 어떤지 물었다. 더 우울한 것 같다고 대답했다. 약을 멋대로 끊고 돌아온 뒤로 우울한 상태가 길게 이어지고 있다. 다시 병원에 오는 3주 뒤에는 좀 나아져 있겠지.


일단 오늘은 메리한 크리스마스를 보내 보기로 한다.

아직까지 산타를 믿는 9살 딸에게 줄 선물을 숨겨두고, 폴짝폴짝 뛰면서 그 선물을 열어볼 아이의 모습만큼 메리한 크리스마스. 적고 보니 그 순간만큼은 매우 행복할 것 같다. 산다는 건 괜찮은 일일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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