헛소리 모으기 23. 예술이라는 미스터리에 대하여
나는 이 세계에서 가장 미스터리한 것을 꼽으라면 예술을 꼽고 싶다.
예술은 불명확하고 비실재적이다. 하지만 동시에 강렬하며 생동적이다. 이 모순되는 양면성을 지녔지만 오랜 세월 존재해온 것이 예술이다.
예술을 명확하게 정의할 수 있을까? 통상적으로 예술이라고 하는 것은 아름다움을 나타내는 어떠한 작품, 혹은 그 활동을 일컫는다.
그렇다면 아름다움이란 대체 무엇인가? 아름다움이 무엇인지를 정의하는 것은 또 다른 난제이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미학이라는 학문 분야만 따로 발전시켰을 정도로, 우리는 아름다움이란 무엇인가에 대해서도 아직 명확히 정의하지 못했다.
그만큼 예술은 불명확한 존재이다. 예술이 무엇이냐고 물으면 모든 사람이 다르게 대답할 수 있을 정도다. 그리고 예술은 비실재적이다. 무엇이 예술인지 규정할 수 없는 만큼, 그 실재가 무엇이냐는 질문에도 대답하기 어렵다.
우리는 흔히 예술이라는 단어를 접하면 미술관에서 보는 그림이나 라디오에서 듣는 음악 등을 떠올리게 된다. 우라는 그 작품들을 접하며 아름다움을 느끼고 특별한 감정에 휩싸이곤 한다.
그렇다면 우리가 예술이라고 생각하는 대상은 무엇인가? 그림을 구성한 원자들? 그림을 그린 작가? 그림의 가격? 아니면 그림을 보고 느낀 나의 감정? 우리가 예술을 접하고 예술활동을 하는 과정의 모든 것을 통틀어, 단 하나를 콕 집어 “예술이란 이것이다.”라고 말하기는 어렵다. 이 질문 역시 예술의 정의처럼 모든 사람의 대답이 다를 것이다.
그렇다면 예술은 마냥 이해하기 어려운 존재인가? 그것은 아니다. 이처럼 예술은 불명확하고 비실재적이지만, 그것을 접한 이들 모두에게 강렬한 인상을 남기며 그 생명력은 무한하다.
우리는 마음에 드는 예술작품을 접하면 강렬한 충격을 받는다. 그 자리에서 얼어붙고 갑자기 감정의 동요를 느끼며 절로 탄식을 내뱉게 된다. 다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순간의 강렬한 아름다움, 예술은 그것을 통해 우리에게 일종의 쐐기를 박아 넣는다.
우리는 예술이 무엇인지 정의하지 못하지만, 예술을 접하는 순간 예술이 무엇인지를 이해할 수 있게 된다. 심지어 언어를 배우지 못한 미취학 아동조차도 아름다움과 예술에 대해 깨닫고 느끼게 될 정도다. 그와 동시에 반대로 우리는 예술을 통해 느낀 감정을 언어로 표현하는 작업에 대해선 어려움을 겪게 된다. 마치 예술에 비해 우리의 언어가 부족하고 미달하기라도 한 것 같기도 하다.
불명확하고 언어로 표현할 수 없지만, 우리는 예술이라는 존재에 대해서는 충분히 이해하고 받아들이며 강렬하게 그 존재를 확인할 수 있다. 참으로 이상하다.
그리고 그 비실재적인 특성과 달리, 예술은 우리 안에서 항상 생생하게 존재한다. 예술에 깊은 감명을 받은 인간은 예술에 대한 갈망과 생각을 떨쳐버릴 수 없게 된다. 인상깊은 예술 작품을 접하고 난 뒤의 우리는 그 충격과 감정으로부터 완전히 벗어나기까지 기나긴 시간을 소모하고 만다. 다른 무언가에 집중하고 싶어도 한동안 그 작품에 생각이 사로잡히고 만다.
우리가 예술의 장소에서 벗어나 일상으로 돌아오더라도 예술이 남긴 낙인은 계속해서 인간의 뇌를 자극하고 자신을 떠올리게 만든다. 그런 이유로 우리는 감상했던 예술 작품을 또다시 감상하거나, 그만큼의 충격을 선사해줄 수 있는 또 다른 예술을 찾아 나서거나, 비싼 돈을 지불하면서까지 그것을 소유하려 든다.
이를 통해 예술은 자신을 감상한 사람들 안에서 영원한 생명력을 얻고 매 순간마다 생동한다. 그 물리적 실재는 명확하지 못하면서 형이상적 세계에서는 언제나 살아있는 존재가 예술이라는 녀석이다. 하나의 액자에 갇힌 그림조차도 100명이 감상한다면 100개의 생명을 얻게 되는, 아마도 이 세상에서 유일무이하게 열역학 법칙을 벗어난 존재가 바로 예술이지 않을까 생각된다.
반대로 제아무리 아름답고 뛰어난 작품이라 할지라도, 그것을 감상하는 사람이 없다면 예술은 생명력을 잃어버리고 만다. 결국 예술이라는 존재는 그것을 향유하는 존재를 필요로 하는 존재이다.
이런 한계점을 지녔지만 매우 다행스럽게도 우리 인간은 예술의 생명을 유지하는 데 자발적으로 나서는 존재다. 이전 글에서도 말했다시피, 인류는 예술작품을 보존하고 후대까지 남기고자 하는 어떠한 본능을 지니기라도 한 것 같다. 덕분에 몇천 년 전에 만들어진 예술작품도 오늘날까지도 우리에게 그 생명력을 뽐내고 있다.
상반되면서도 모순된 특성을 지녔음에도 우리는 예술의 존재를 너무나도 당연하게 받아들이고 있다. 그 미스터리함에 끌려 예술이라는 대상 자체를 연구하는 이들도 있긴 하지만, 대다수의 사람들은 깊은 생각 없이 그저 예술을 즐길 뿐이다.
'아름다움이란 무엇인가? 우리는 왜 아름다움을 선호하는가? 이 예술은 왜 아름다운가?'
미학이라는 이름하에 예술에 대한 고찰을 해온 역사가 있지만, 이런 고찰을 하는 이들조차도 예술을 즐길 때만큼은 그 깊은 사고에서 해방될 수 있도록 만드는 것이 예술이라는 존재다.
예술을 대하는 태도가 어떠하다느니 따위를 말하고 싶은 것이 아니다. 예술이란 그만큼 인간의 이성으로는 설명할 수 없을 정도의 신비롭고 미스터리한 존재라는 것이다.
그러기에 오늘 내가 예술에 대해 주절주절 글을 써내리는 행위조차도 예술과는 거리가 먼 행위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 역시 예술의 미스터리함에 매료된 인간이기에, 예술이라는 존재에 대해 나름의 글을 남겨 그 미스터리함을 파고들어 가고 싶다.
예술의 미스터리에 매료된 인간은 아마 나뿐만은 아닐 것이다. 이 미스터리에 끌려, 스스로가 예술을 만들어내기로 결심한 예술가라는 사람들이 있으니까.
2023년 4월 기준, 대한민국에서 예술, 스포츠, 여가업으로 분류되는 산업에 종사하는 인구는 450,233명으로 추산된다. 물론 여기서 예술가만을 분류해내면 약 10~20만 명, 혹은 그 미만의 종사자 수에 불과할 것이다.¹
총 산업 종사자 수가 2,500만명에 해당하는 것을 생각해보면, 예술 산업 종사자는 약 0.4~1% 정도에 불과하다는 계산 결과가 나온다. 이조차도 전체 산업 종사자 수이니, 정말로 ‘예술가’라고 부를만한 창작자의 인구수만 산출해낸다면 이보다도 적을 것이다.
그리고 이들은 다른 산업군에 비해 상대적으로 적은 수입으로 살아가고 있는 실정이다. 2023년 기준 대중문화예술인의 예술 관련 월평균 소득은 232만 원이다. 같은 기간 최저임금에 따른 통상월급이 201만 580원이었다는 것을 생각해보면, 넉넉한 소득이라고 보기엔 힘든 수치이다. ²
즉 예술가라는 집단은 소수에 불과하고 그 수입도 불안정한 셈이다. 물론 그렇지 않은 사람도 있겠다만, 그런 이들은 그 소수의 집단에서도 극소수라는 점을 생각해보면 마냥 예술가가 편한 직종이라고 보기는 힘들 것이다.
평균소득, 집값, 순자산, 통장잔고 등의 수치가 한 사람을 대표하는 지표가 된 오늘날의 사회를 생각해보면 더욱 그러하다. 예술가란 집단이 불쌍하다거나 무능력하다거나 하는 이야기를 하고 싶은 건 아니지만, 현대 사회상을 생각해보면 이 예술가라는 존재가 조금은 이상하게 보이기도 한다.
예술가들은 왜 그렇게 스스로 소수에 속하는 길을 택한 것일까? 매번 창작의 고통을 운운해가며 무언가를 만들어내도, 그것이 좋은 평가를 받는다거나 정해진 대가를 받는다는 보장도 없는데 말이다. 그들도 그저 남들처럼 주 5일 정해진 시간만 일하고 매달 월급을 받으며 안정적으로 생활하는 인생도 가능했을 텐데, 왜 하필 굳이 예술을 한단 말인가?
어쩌면 이 질문에 대해서는 예술가 본인도 대답하지 못할 수 있다. 내가 물었던 것처럼 “왜 예술가가 되셨어요?”라고 진지하게 물어오면 주저하거나 멋쩍어하며 명확히 무어라 대답하지 못할 사람이 더 많을지도 모를 일이다.
그렇다면 과연 이들은 자신이 왜 예술가의 길을 걷게 되었는지를 모른다고 해서 예술을 포기할게 될까? 나는 그렇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에 대한 대답은 영영 내리지 못할 수도 있지만, 그럼에도 그들은 손을 멈추지 않을 것이다.
예술이라는 존재 자체가 미스터리이듯이, 나는 예술가라는 존재 역시도 미스터리한 존재라고 생각한다. 인간의 언어와 이성으로는 이해하지 못하는 것이 예술이라는 영역이다. 예술가란 그 불가해의 영역에 발을 담그는 정도를 넘어, 아예 뛰어들어간 인간들이니 우리의 이해를 벗어나는 것 역시 당연한 일이다.
그리고 이런 예술가의 존재는 우리 인류가 문자를 만들어내기 이전부터도 존재해왔다. 가족이나 지인 등이 예술을 한다고 하면 전력으로 말리고 ‘돈도 안 되는데...’라며 혀를 쯧쯧 차고 마는 우리조차도, 예술을 사랑하고 예술가의 작품에 감동을 받곤 한다. 결국 우리 인간은 예술 없이는 살아갈 수 없는 존재인 셈이다.
사실 예술이라는 것을 우리는 이상하리만큼 격리시키는 풍조도 있기는 하다. 왜 그런지 모르지만 미술관이나 공연장에 가는 것이 매우 특별하고 비일상적인 행위인 것처럼 여겨지고는 하니 말이다.
물론 예술은 특별한 것이기는 하다. 애초에 예술만을 위한 공간이 별도로 마련되어 있다는 것 자체가 그 특별함을 증명하는 것이지 않을까? 매일같이 그런 공간을 가는 것도 아니고 어쩌다 한 번씩 방문하는 것도 그런 특별함을 돋보이는 사실이다. 그리고 그 공간을 향유하는 동안 우리는 일상에서 벗어나 예술의 세계에 몰입할 수 있으니, 특별하다면 특별하다고 말할 수도 있다.
그러나 유독 이런 예술 공간에 갈 때는 특별히 몸가짐을 꾸미거나, 일부러 시간내어 정보를 찾아보는 등 마음가짐도 새로 하고 가는 것은 조금 유별나 보이는 것도 사실이다. 그처럼 우린 의식적으로, 그리고 무의식적으로 예술을 자신의 일상과 평소라는 기본 상태로부터 격리시켜 특별취급하고는 한다.
나는 이러한 풍조도 예술을 대하는 인간의 태도를 나타낸다고 생각한다. 길바닥에 너부러진 돌멩이는 그냥 맨손으로 줍고 던져버리지만, 보석이라는 이름이 붙여진 암석에 대해선 장갑을 끼고 조심스럽게 다루듯이 말이다. 우리는 예술을 매우 귀중하고 특별하고 어려운 존재로 생각한다.
그리고 이 때문인지 예술가라는 집단도 약간은 특별취급하는 경향이 있다. 처음 만나 본 사람과 대화를 하는 상황을 상상해보자. “무슨 일을 하세요?”라는 질문에 그 사람이 “어느 회사의 사무직입니다.”나 “어디 현장에서 일합니다.”라고 대답하면 우린 그저 고개를 끄덕이며 그렇구나 하고 특별한 흥미를 보이진 않는다.
하지만 그가 “예술을 합니다.”라고 대답하면 눈이 번쩍 뜨이며 절로 그를 향해 몸을 기울이곤 한다. 그러면서 어느 것을 하고 얼마나 일했느냐는 식으로 조금 다른 흥미와 관심을 보인다.
평소 상대적으로 예술문화활동이라는 분류의 취미를 즐기지 않는 이들조차도 예술가를 보면 특별한 반응을 보이는 것만 생각해보아도 신기한 일이다. 우리는 예술을 매우 특별한 것으로 취급하고, 그런 예술을 만드는 창작자 역시 특별하게 취급한다. 그리고 나는 이런 특별함의 이유가 어느 정도는 선망하는 감정이 존재하기 때문인 것도 있다고 생각한다.
우리는 예술을 사랑하지만, 동시에 그것을 특별하고 범접하기 어려운 것으로 취급하기 때문에 자신은 예술과 멀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감히 자신이 어떻게 예술을 하겠냐고 생각하며 예술가가 되는 것은 더더욱 상상하기 어려워한다.
나 역시도 이런 선망을 지닌 인간 중 하나이다. 내가 예술가를 특별하다고 생각하는 이유는, 그들의 탁월한 창의성과 뛰어난 기술보다도, 예술이라는 미지의 영역을 걸어나가기로 결심한 그 용기에 있다.
생각해보라. 현대 사회는 예술문화라는 것이 대부분 정형화되어있고, 자신의 작품이 평점과 가격, 시청자 수 등의 숫자로 평가되는 것이 당연시되는 사회이지 않은가? 그리고 매일같이 전 세계에서 무수한 작품들이 쏟아지고 있는 오늘날이다. 소비자의 입장에서 많고 다양한 작품을 즐기는 것이 쉬워진 만큼, 한 신인 예술가의 작품이 어떤 가치를 지니게 될지는 한 치 앞도 알 수 없는 요즘이다.
그런 산더미같이 쌓여 있는 작품들 중에서, 자신 작품은 특별히 돋보일만한 특색과 매력이 있다고 그 누가 자신할 수 있을까? 열심히 노력하고 정성을 들인다고 해서 성공이 보장되지도 않는 예술 사회에서, 어떻게 예술가들은 자신에 대한 의심을 이겨내고 예술활동에 매진할 수 있는 것인지 나는 참으로 모르겠다.
성공이 영원하지 않다는 것을 생각해보면 더더욱 그러하다. 어쩌다 한번 자신의 작품이 좋은 평가를 받는다고 해도 그 향후의 활동까지 그러하리라는 보장은 없다. 소위 원히트원더(One-hit wonder)라고 불리는 예술가들만 하더라도 무수히 많은 이들이 있다는 것을 떠올려보자. 그리고 이들을 부러워하는, 아예 그 대표 작품조차도 내세울 수 없는 무명의 예술가들은 몇 배나 더 많다는 것도.
즉 예술가는 그의 일생동안 매번 새롭고 훌륭한 작품을 만들어내야만 하는 운명을 짊어진 인간이라 할 수 있다. 심지어 그 길은 수입도 불안정하고 자신이 몸담은 업계가 어떻게 바뀔지도 모르며 노력이 보상받지도 못하는 가시밭길과도 같다. 그리고 누구보다도 이러한 사실을 가장 잘 이해하고 불안해하는 것은 예술가 자신이다.
이러한 이유에서 나는 예술가는 참으로 대단한 인간이라고 생각한다. 그 모든 불안과 고난을 알고 이해하면서도 굳이 그 길을 택하는 것은 고귀하다고 말할 수 있을 정도이다.
그리고 이런 용기있는 결정을 한 사람들 없이는 우리가 예술을 즐기는 것도 매우 어려웠으리란 사실을 떠올려보면, 나로선 예술가들에게 박수를 보내지 않을 수 없다. 물론 모든 예술가들이 이런 고귀한 목적을 갖고 예술의 길을 걸어간 것은 아니겠지만, 그들의 작품이 나 같은 일개 소비자의 삶에도 지대한 영향을 끼치는 것을 생각해보면 찬사를 보내 마땅하지 않을까?
그리고 이들이 그런 용기를 갖도록 북돋아 준 존재는 다른 누구도 아닌 예술 그 자체이다. 어떠한 논리와 근거를 들이밀려 예술가의 삶을 사는 것은 어렵다고 설득하더라고, 예술 작품 하나로 그 모든 설득력은 잊혀버리고 만다. 그러기에 그들은 구태여 예술을 선택한 것이다.
예술은 논리를 초월하는 존재인 동시에, 한 사람의 인생을 바꾸는 존재이다.
답이라는 것이 존재하지 않는 예술의 영역에서, 예술가들은 오늘도 답을 찾아내고자 하염없이 떠돌고 있다. 이 미스터리한 예술이라는 존재가 앞으로 어떻게 될지는 그들조차도 알지 못할 것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우리는 여전히 예술을 사랑한다. 지금껏 사랑해왔고 앞으로도 사랑할 것이다. 우리는 그 사실만을 믿으며 오늘도 미지의 영역에서 길을 찾아 나선다.
[각주]
¹. 통계청, '2023년 전국사업체 조사 결과', 2024. 9
². 한국콘텐츠진흥원, '2023 대중문화예술산업 실태조사', 2024. 3
[커버이미지 정보]
Copyright 2018. Steve Johns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