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사를 했다. 지금은 글을 쓴다.

헛소리 모으기 1. 작가가 되기로 하다.

by 모두다

목요일 오후 2시.

다른 사람들은 점심을 먹고 쏟아지는 졸음과 한참 싸우고 있을 시간이다. 그게 자신의 일터이든 학교이든 학원이든. 아무튼 간에 통상적으로는 '한가로운 시간'이러고 하기엔 조금 어폐가 있을만한 때이다.

그럼 그런 시간에 나는 무엇을 하고 있는가? 카페에 앉아있다. 14인치의 노트북으로 글을 쓰면서. 퇴사를 한 덕분이다.

남에게 없을 이 '한가로운 시간'에 난 글을 쓰게 되었다. 딱히 누가 시킨 건 아니다. 그냥 내가 하고 싶어서 하게 된 것이다. 나는 얼마 전에 회사를 그만두었다.



올해로 내 나이는 28살이 됐다.

많은 나이는 아니겠지만 그렇다고 분명히 적은 나이라고 할 수도 없는, 그런 애매한 나이이다. 물론 나보다 나이가 많은 인생의 선배가 보기엔 어린 놈이 별 꼴값을 떤다고 느끼실 수도 있겠다. 하지만 나는 내 나이 때면 적당한 직장이 있든 무언가를 배우든 혹은 사업을 하든, 어딘가에 소속되어 무언가를 할만한 나이라고 생각된다. 괜한 오만을 부린다고 느껴진다면 부디 양해해 주시길. 나는 쓸데없는 자기 연민이 풍부한 사람이다.

아무튼 나는 그런 적당한 직장에 다니고 있었지만, 그런 직장을 그만두게 되었다. 딱히 어떠한 큰일이 있었던 건 아니다. 다른 사람들은 어떠한 불가피한 상황으로 인해 직장을 그만두는 경우가 많지만 나는 그러하지 않았으니까.

적성과 잘 맞지는 않았지만 계속 다니고자 하면 재직할 수 있는 상황이었다. 연봉이 높은 것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적당히 쓸 만큼은 받았다. 직장 내 인간관계도 썩 좋았다고 할 순 없지만 그렇다고 큰 갈등이 있었던 것도 아니다. 야근도 가끔 있었지만 딱히 내 일상에 차질을 줄 정도도 아니었다. 커리어적 측면에서 엄청난 비전이 보이는 건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미래가 없는 직종도 아니었다. 타인에게 불평이라도 했다간 '배부른 소리'라는 핀잔을 듣기 딱 좋은 그런 직장이었다.


그럼 나는 왜 이 직장을 그만두게 되었는가? 어느 날 스스로 느끼게 되었다. 나는 직장인으로 살아갈 인간은 아니라는 것을. 주 5일에 하루 9시간. 출퇴근 시간까지 고려하면 11시간. 어느 순간 내가 하고 싶지 않은 무언가를 하면서 그만큼의 시간을 보내야 한다는 사실을 인지해버렸다. 흠, 내게 주어진 하루의 시간 중 약 46%를 직장에 써야 한다라. 하루에 7시간은 자니까 이 시간까지 빼버리면 내가 온전히 사용할 수 있는 시간은 하루에 6시간이다. 이 6시간을 위해 11시간을 사용해야만 한다고?

계산 끝에 이러한 결론이 나자 뭔가 기분이 이상해졌다. 생각해보면 딱히 이상한 것도 아니었다. 한창 학교를 다닐 때는 하루에 2시간 정도나 여유나 났으니까. 게다가 학교는 내가 돈을 받는 것도 아닌, 오히려 돈을 내야 하는 시스템이었다. 그런데도 그때는 이러한 이상한 기분은 느끼지 못했다. 뭐가 문제인 거지?

'이상함'이라는 건 그 자체로도 상당히 이상하다. 이상하다는 것을 한번 인지해버린 순간, 그때부턴 모든 것에서 이상함을 느끼게 된다. 무엇이 이상하다는 거냐고 물어도 그것을 설명할 방도가 없다. 이상하다는 감정은 다른 단어로 표현할 수 없다는 것도 그 이상함을 증폭시키는 요소이다. 그나마 ‘이상함’이란 감정을 어느 정도 설명할 수 있는 함몰(陷沒)이라는 단어가 존재해서 다행이다. 그렇다. 나는 이상하다는 감정에 함몰되었다. 그 감정을 느끼고 나니 직장인의 신분을 유지하기가 버거워졌다.

그렇다면 어떡해야 하지? 다시 학교에 다녀야 하나? 음... 그렇다기엔 딱히 새로 전공하고자 하는 분야가 없었다. 어쩌다 보니 얻게 된 학사 학위를 석박사 학위로 끌어올릴 수도 있겠지만, 딱히 그럴 동기가 존재하진 않았다. 그렇다면 이직을 하는 것은? 글쎄... 솔직히 다니고 있던 직장도 별 생각 없이 다닌 직장이기에 어디로 이직을 해야 할지 감이 오지 않았다. 사업을 할까? 사업하기엔 아이디어도 없으며 난 그럴 깜냥조차 없는 인간이라는 것이 문제였다.

그때부터 고민하기 시작했다. 직장을 다니지 않을 것이라면 무얼 할 것인지.


Copyright 2014. Christopher Sardegna

자아에 대한 반추의 시간과 과정도 겪었지만, 그것을 여기에 일일이 적진 않겠다. 지루한 이 글을 더 지루하게 만들 것이란 건 확실하니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난 그나마 내가 잘하는 것을 발견해냈다. 잘한다는 표현도 자만에 가까울지 모른다. 그냥 내가 좋아하는 것이라고 정정하겠다. 나는 글을 쓰는 걸 좋아한다.

사실 이것을 깨닫게 된 것이 퇴사 후 일어난 일은 아니다. 최근 몇 년간 MBTI라는 성격검사가 유행한 적이 있다. MBTI가 무엇인지도 여기엔 적지 않겠다. 모른다고 이 글을 읽는 데 지장이 있는 것은 아니니. 중요한 것은 MBTI라는 것이 유행했다는 사실이다. 이 유행의 일환으로 사람들 사이에선 서로의 성격을 묻는 것이 하나의 대화 주제로 자리 잡게 되었다. 나같이 줏대없는 인간들은 그런 유행에도 쉽게 휘말리기 마련이다.

그러한 주제로 다양한 사람들과 대화를 나누다가 발견한 것은, 다른 이들은 나와 달리 공상을 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조금 놀라웠다. 공상을 하지 않는다고? 그렇다면 심심해서 어떻게 살지? 나는 길을 걸을 때나 잠들기 전이거나, 육체적으로 아무런 행동이 수반되지 않는 상황이면 머릿속이 복잡해진다. 나만의 상상의 나래를 펼치고 어떠한 한 주제에 대해 골똘히 생각하고... 그러다 얻는 생각이라는 것을 따로 어딘가에 물리적 실체로써 남겨둔다.

그럴 때마다 난 또 다른 공상의 세계에 빠지곤 했다. '이걸로 소설이나 책을 쓰면 재밌겠다.'라고. 어떨 땐 시도해보기도 했다. 하지만 다 오래가진 못했다. 기껏해야 2만 자를 조금 넘겼던가? 그 정도로 정말 막연한 생각일 뿐이었다.

하지만 그런 막연한 활동에 몰입이 되기도 했다. Word 프로그램을 종료하고 나서도 다음엔 어떻게 써야 할지를 생각하게 되었다. 다른 일처럼 의무감도 없었고 한다고 해서 내가 얻는 무언가가 있는 것도 아니었다. 그럼에도 나는 글쓰는 것이 썩 재미있었다.

거기서부터 다시 생각하게 되었다. 직장인이라는 신분을 박탈하면 밥벌이를 못하게 된다. 그렇다면 작가가 된다면? 출판업계를 모르긴 몰라도 서점을 가면 여러 에세이집이 있는 것을 종종 보았다. 들리는 소문으론 어디의 웹소설 작가가 몇억씩 벌었다고도 들었다. 길을 걷다 보면 잘 꾸며진 개인 책방들도 지나칠 수 있었다. 잠깐, 글을 쓰는 걸로 밥벌이를 할 수 있지 않을까? 그런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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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뒤로는 일사천리였다. 인생에 있어 어려운 일은 참으로 많지만, 포기하기란 정말 쉬운 일이다. 직장을 관두는 것 역시 그 쉬운 일에 속한다는 건 다행이었다. 그리하여 나는 지금 카페 한구석에 앉아 이 글을 쓰게 되었다. 작가가 정확히 어떤 방법으로 돈을 벌고 무슨 활동을 해야 하는지는 모르지마는. 나도 내가 작가로서 성공할 거란 확신은 없다. 일단 써보고 안되면 그때 그만둬도 상관없겠지, 라는 안일한 생각으로 시작한 거니까. 참으로 대책 없고 생각 없는 인간이라고 느껴질 수 있을 것이다. 나는 실제로도 그러한 인간이다. 지금까지의 28년도 그렇게 살아왔기에 이제 와서 쉽게 변할 리가.

그래도 막연하게나마 작가가 되는 방법에 대해 생각해둔 건 두 가지가 있다.

첫째는 에세이를 쓰는 것. 이건 지금 이 글자를 새기는 순간 행해지고 있다. 옛날 같았으면 직접 원고를 들고 다니며 이 출판사 저 출판사를 드나들어야겠지만, 내가 살고 있는 2024년에는 웹서비스가 존재한다. 이건 참 행운이다.

두 번째는 소설을 쓰는 것이다. 21세기에는 웹소설이라는 새로운 매체가 존재한다. 집에서 노트북으로 글을 써서 소설을 연재할 수 있다니, 이 얼마나 좋은 시대인가? 현대사회가 개인에게도 미디어 권력을 쥐여 준다는 점은 기술의 폐해이자 혜택이기도 하다는 생각이 든다. 나같이 특별한 재능이 없는 이들에겐 이러한 혜택이 존재한다는 건 축복일지도 모른다.

이 활동으로 얻는 수익이 나름 한 사람의 밥벌이 값을 할지는 모르겠다. 그렇지만 퇴사는 이미 벌어진 일이다. 되돌리고 싶어도 되돌릴 순 없고, 내가 선택한 일이니 감당하는 수밖에.


글을 쓰다 보니 너무 길어진 건 아닌지 모르겠다. 솔직히 처음으로 쓰는 글을 이런 식으로 중구난방으로 쓰는 것에 대해 조금의 수치심은 느낀다. 내 단점 중 하나가 말이 참 많다는 것이다. 일목요연하고 간결하며 논리적인 글. 나와는 너무나도 거리가 먼 문장이다. 하지만 좋은 글 쓰겠다고 몇 날 며칠이고 글쓰기 스킬에만 매달리고 싶진 않다. 어디서 봤는지는 몰라도 글은 일단 쓰라는 조언이 있다. 누가 말했는지도 기억나진 않지만, 지금은 그 조언에 충실해 보고자 한다.

아마 내가 앞으로 쓰게 될 것들은 오늘의 글과 크게 다르진 않을 것이다. 내가 평소에 느끼는 생각이 주가 될 것이다. 그 글들이 하나의 카테고리 안에서 묶일 일도 없다. 어떤 건 정말 잡설에 가까울 수도 있고, 어떤 건 사회이슈와 연관될 수도 있고, 어떤 건 시리즈로 쓰일 수도 있다. 주제는 그때마다 다르다. 그럼에도 모든 것에는 전적으로 나의 생각이 들어갈 것이다.

하지만 내 생각이라는 것이 워낙 논리성이 없다 보니 직접적으로 에세이라는 거창한 표현은 쓰지 않겠다. 나는 이를 헛소리라고 부르고 싶다. 나는 헛소리도 그 자체로 큰 가치가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다. 나 자체도 헛소리를 듣는 걸 좋아한다. 내 헛소리도 좋아해 주는 누군가가 한 명이라도 존재한다면, 난 얼마든지 헛소리를 늘어놓을 자신이 있다.



목요일 오후 3시 52분. 이 문장을 쓰면서 노트북 하단을 보자 벌써 이런 시간이 되었다. 이 몇천 자를 쓰겠다는 데 나는 약 1시간 52분의 시간이 소요했다. 퇴고와 교정의 과정을 거치면 더 길어지겠지. 하지만 하루 11시간의 직장 생활에 비하면 이 시간은 참으로 짧은 시간이다. 무엇보다도 직장에서 하던 작업과는 비교가 안될 정도로 너무나도 재미있는 일이다!


나는 앞으로 이 재미있는 일을 반복하기만 하면 될 뿐이다.



[커버 이미지 정보]

Copyright 2014. Florian Klaue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