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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모두의역사 Mar 10. 2020

십자군 전쟁이 오늘날까지 영향을 미친다고?

#8 십자군 원정은 '종교 타락 전쟁'이었다 下편





십자군 전쟁(11~13C)




기독교와 이슬람교의 한판 승부




십자군 전쟁도 결국, 중세 기독교 사회의 모든 구성원들의 이해관계가 들어맞았기에 가능했던 전쟁이다.












역사 속의 전쟁은 언제나 그랬듯이, 엄청난 군수산업 붐을 불러일으켰다.


오늘날, 남한과 북한과의 전쟁 위기가 고조되거나 대한민국 정부에서 신무기를 샀다는 뉴스가 나오면, 미국의 Rㅇㅇㅇㅇ 군수산업체의 주식이 상한가를 치는 현상이, 유럽 중세에서도 똑같이 일어났었다.


당시는 '템플기사단'이라는 기독교 기사 단체로, 유럽 기독교 사회 전역의 십자군 전쟁 후원금이 모였다. 템플기사단은 이를 통해 금융업과 군수 산업을 운영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새로운 영지를 차지하려던 하층 기사들의 탐욕을 적절히 이용했던 그들은 하층 기사들이 맡긴 재산과 가족을 담보 삼아 이자 장사를 시작했다.




템플기사단과 그들의 사용하던 문양




템플기사단이 지원한 군수품으로 전쟁을 치르는 유럽의 기사




이 전쟁의 군수품을 담당하던 템플기사단은 중세의 대규모 전쟁 산업을 좌지우지하는 '은행'이 되어버린 것이다. 이곳은 성지를 탈환하는 성스러운 전쟁을 담당하면서도, 기독교군에게 무기와 식·숙박권을 제공해주는 역할을 했다.




십자군 전쟁. 기독교군의 군수품에는 모두 템플기사단 문양이 들어있다.




그런데 세상에 공짜는 없고, 역사는 반복된다.     



템플기사단은 로마시대 예수님께서 신랄하게 비판하던 고리대금업을 도로 시작했던 것이다. 기독교 성지를 탈환하자는 전쟁의 군수산업을 담당하던 템플기사단... 그들은 이미 예수님의 뜻을 저버린 것이다. 중세 기독교 사회에서는 예수님의 뜻에 의해 고리대금업이 분명 금지됐었고, 이는 유럽의 중세 경제 역사가 암흑기를 띤 이유이기도 했다.



[성경 누가복음 6장 35절]

오직 너희는 원수를 사랑하고 선대하며 아무것도 바라지 말고 꾸어 주라. 그리하면 너희 상이 클 것이요...(이하 생략)



그래서 템플기사단은 성경의 교리를 피하기 위한 꼼수를 냈다.


성경에 이자는 안 된다고 나오니, '범칙금'에 대한 연체료 개념인 interest 제도를 신설한 것이다. interest는 ‘흥미’라는 뜻으로 가장 많이 쓰이지만, 현대에 들어선 ‘이자’란 뜻으로도 흔히 쓰인다.




출처 : 네이버 사전




기한 내에 상환하지 못하면 '범칙금'으로서 이자가 붙는다는 취지였지만, 템플기사단은 실질적으로 이 군수 상품을 기한 내에 상환 자체가 힘들도록 설계했다. 수많은 기사들은 전쟁이 길어질수록 늘어가는 범칙금에 대한 압박감이 커져갔고, 실제로 이는 눈덩이처럼 불어갔다. 따라서 그들은 원금은 고사하고, 불어나는 범칙금이라도 빨리 갚으려, 빠른 시간 내 무자비한 살육전을 전개했다.







그들은 1차 십자군 원정에서 예루살렘을 탈환했었지만, 원정 횟수가 늘어 갈수록 '성스러운' 전쟁이란 본뜻은 흐려졌다.




그런데, 4차 십자군 경로가 좀 이상하다?




4차 십자군 원정은 정말 '기막힌' 원정이었다.



당시 동로마 콘스탄티노플(현 터키 이스탄불)이 이슬람의 공격을 받았고, 동로마는 라이벌이지만 같은 기독교 계열인 서유럽에 SOS를 청했다. 서유럽은 이 요청을 받아들여 콘스탄티노플에 원군을 파견했다.


그런데 서유럽은 콘스탄티노플에 쳐들어 온 이슬람군을 치는 척하다가, 도리어 동로마를 약탈·살육하고 이슬람 땅은 아예 밟아보지도 않았다. 4차 십자군 원정은 '기독교 vs 이슬람'이 아닌, '기독교 vs 기독교'가 금은보화를 앞에 두고 숙명의 살육전을 펼치는 '기막힌' 전투였다.



4차 십자군 원정을 묘사한 그림. 조프루아의 "콘스탄트노플 함락전"




4차 십자군 전쟁의 실체 (출처 : 천재교육)

     



어쨌든 중세 유럽의 무력을 담당하던 기사들이, 눈덩이처럼 불어나는 이자를 갚기 위해 살육을 일삼고, 또 기사 대다수가 죽어가면서, 템플기사단은 사후 담보로 받은 땅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갔다. 종교를 앞세운 '전쟁 사업'이 대성공을 거둔 것이다.

    






예나 지금이나, 결국 돈이 권력이다.



템플기사단의 땅 사이즈는 각국 왕들보다 커졌고, 이를 견제한 왕들은 이들을 재판 없이 새벽에 몰래 '즉결처분'으로 화형에 처하기도 했다. 돈이 많아진 템플기사단이 재판에서 실력 있는 변호사를 대동하는 것을 막기 위해, 이 같은 야만적인 방식을 쓰던 것이다.



   

프랑스 왕 필립 4세와 밤에 조용히 화형 당하는 템플기사단




왕은 템플기사단이 기사들로부터 '합법적'으로 뜯어낸 범칙금을 도로 빼앗았다. 그리고 이 대규모 자산의 관리를 유대교도들에게 맡겼다. 유대교의 경전인 탈무드에서도 이를 부정하지 않았고, 당시 교황청으로부터 유대인의 대금업이 허락되었기 때문이다. 그로써 기독교 왕실이 유대인 금융업자의 보증을 서주고, 중세 기독교도로서 자신들이 할 수 없는 이자 놀음을 유대교도들에 맡긴 것이다.




셰익스피어 베니스의 상인, 유대인과 이자에 대한 관점을 심오하게 다룬 고전 소설



이때부터 1950년 이스라엘의 독립까지, 유럽의 떠돌이 민족이던 유대인과 유럽 토착민 간의 '불편한 동거'가 시작됐던 것이다. 셰익스피어의 작품이 꽃피고, 떠돌이 생활을 하던 유대인이 생존능력을 갖춰 전 세계 금융을 좌지우지하기 시작한 것이 이 시기다. 그리고 그들은 제2차 세계대전 이후(1945), 그동안 쌓아왔던 금융 시장 노하우를 통해 자본주의 시대인 오늘날에 가장 영향력 있는 민족으로 성장했다.


 



출처 : 아시아N




오늘날 유대인 파워 (출처 : 조선비즈)






그리고, 십자군 전쟁의 이면에 있던 유럽의 하급 기사 계층...

그렇게 살인적인 이자를 갚지 못하고 길거리에 나앉게 생긴 그들은 어떻게든 새로운 살 길을 찾아야만 했다.




콜럼버스와 대항해시대




(다음화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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