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폐의 역사 #11. 기축 통화에서 얻는 교훈
서유럽 끝에 있던 스페인이 아메리카에서 오로지 금만 캐며, 대항해시대의 기회를 못 살리던 와중!
[전편 내용]
당시 유럽의 다른 나라에서는 금보다 은이 화폐로서의 가치가 커지기 시작했다. 왜냐하면, 당시 최고 경제 대국이던 중국(명·청나라)이 은을 화폐로 이용했기 때문이다. 명나라 중반 때, 은자 1냥이면 쌀 100kg을 살 수 있던 시절이 있었을 정도로, 은의 영향력이 강해지던 시점이다. 당시 최강대국이던 중국의 은 화폐 사용은, 세계 경제를 금 중심에서 은 중심으로 옮겨가는 데 큰 역할을 했다. (현 최강대국 미국의 달러 위상을 생각하면 된다)
당시 중국의 도자기와 비단은 서양 귀족들에게 소비되는 최고의 사치품이었다. 당시만 해도, 도자기와 비단을 만드는 기술은 서구가 동양을 따라잡을 수 없었다. 도자기를 구우려면 1,200~1,300도씨의 온도를 유지해야 하는데, 서구에는 이런 기술이 없었기 때문이다. 마치 오늘날 우리나라가 반도체 기술을 석권하고 있는 것과 같다. 서구인들이 도자기를 비롯한 동양의 돈이 되는 물건을 갖기 위해서는, 은이 필요했던 것이다.
역사상 세계 최고의 부자라 불리는 야콥 푸커는, 당시에도 세계 부의 흐름을 잘 파악했다.
최고의 사업가였던 그는, 스페인 왕(카를 5세)을 비롯한 유럽 대제후들에게 은광을 사서 이를 열심히 파냈다. 그렇게 파낸 은으로, 동양의 사치품 유통을 독점했다. 이를 통해 은을 유럽과 아시아를 아우르는 전 세계 기축통화로까지 만든 게 바로 야콥 푸커다.
그는 이렇게 대륙으로는 은을 유통시키고, 유럽 내부에서는 교황과 딜을 해 면죄부 독점 판매권을 가지기도 했다. 이로 인해 유럽의 기독교는 위상을 잃었고, 유럽에서는 수백 년간 종교 전쟁이 일어났다.
이처럼 종교와 대자본과 정부가 손을 잡고 백성을 수탈한 역사는 온전했던 적이 없다. 고려말의 불교가 그랬고, 조선말의 성리학이 그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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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야콥푸커가 매입한, 체코에 있는 ‘요하힘' 지방의 계곡엔 많은 양의 은이 매장되어 있었다.
'요하힘 계곡'에서 나온 은화폐 이름이 ‘Joachimsthaler Grosen’이었는데, 저걸 줄여 'Tollar'라 칭했다. 이 지역에서 나온 은으로 세계의 화폐가 주조되었기 때문에, 오늘날까지도 세계 기축 통화가 Dollar가 된 것이다. Tollar 은광에서 나온 은은 동서양을 경제적으로 연결하는 화폐의 역할을 했다. 오늘날 미국 Dollar와 같은 역할이다.
그리고 결국, 오늘날까지 세계로 통하는 '미국' 화폐의 이름은 ‘Dollar’로 굳어지게 되었다.
(다음화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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