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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모두미 Aug 17. 2017

엄마 토끼의 하얀 털

내게도 엄마가 준 하얀 털들이 많이 있다.

“엄마. 빨리 와 봐요. 빨리. 토끼 몸에서 털이 많이 빠지고 있어요.”

또 이 녀석들이다. 키우는 동물들에게 조그만 변화라도 생기면 호들갑을 떨면서 나에게 보여준다. 할 일이 많다고 핑계를 대도 안 된다. 이 녀석들의 집념은 나의 귀찮음 보다 더 강하다.     

정말 엄마 토끼의 하얀 털이 빠지고 있었다. 토끼집안 곳곳에서 토끼털 뭉치가 보였다.

“엄마. 아난또 삼촌이 그러는데요. 토끼는 아기를 낳을 때 이렇게 털이 나온 데요. 새끼를 따뜻하게 만들어 주려고요.”

정말이었다. 며칠 뒤 엄마 토끼는 손가락만한 새끼 몇 마리를 낳았다. 아직 털도 나지 않은 꿈틀거리는 새끼들은 엄마토끼가 며칠간 모아 놓은 털 속에서 포근하게 잠을 자고 있었다.

자기의 털을 뽑을 줄 아는 엄마 토끼.      


엄마도 그랬다.

오랜만에 집을 방문할 때면 엄마는 꼭 나를 안방으로 불렀다.

“해옥아. 이거 어떻노? 이쁘지 않나? 이거 엄마가 시장에서 2만원 주고 산건데 조금 작아서 너 주려고 놔뒀다.”

“해옥아. 인도도 춥다 매? 이거 이름 있는 브랜드 잠바인데 입어봐라. 아빠랑 시장 갔다가 아주 싸게 팔길래 사놨지.”

“얼. 엄마 이런 것도 사요? 안 비쌌어요?”  

“어. 이거 만원 밖에 안하던데. 구제들만 모아서 파는 집사님 댁에서 산건데 거의 새것 같제?”

역시 엄마다. 비싼 브랜드를 그 돈 주고 샀을 리가 없었다.

엄마의 보물 상자 속에서는 멈추지 않고 물건들이 나왔다. 입던 옷부터 가방, 작은 머리핀에 속옷 까지 엄마는 딸을 위해 아낌없이 내놓았다.

외국에서 오는 딸을 위해 시장에 들를 때 마다 하나씩 모아 놓았을 것이다.

딸이 받고 기뻐할 모습만을 생각하면서 시장 구제 옷가게에서 이것저것을 고르며 미소 지었는지 모른다.

“아이. 엄마는 나를 자꾸 엄마 세대로 만드는 것 같아. 이거 너무 아줌마 같지 않나?”

“야야. 니도 인제 아 둘 딸린 아줌만데 뭘 그러노. 잘 입어봐라 이쁘기만 하구만.”

역시 엄마는 지지 않는다.

물론 이제 환갑이 얼마 남지 않은 엄마의 스타일이 내게 안 맞을 때도 있다.

하지만 나는 엄마가 주는 것은 뭐든 기쁘게 받는다. 엄마의 마음이 너무 따뜻해서.     

토끼를 보면서 나는 내 뒷머리를 묶고 있는 반짝 거리는 머리끈을 만지작거렸다.

내게 있는 많은 엄마의 하얀 털 중에 하나인 머리끈이 햇빛에 반사 되 더 빛나게 반짝이고 있었다.

‘엄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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