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풍이 한차례 나를 지나갔다

삶의 태풍을 맞이하는 나의 자세

by 모두미

갑자기 비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방에 불을 켜고 꽂혀 있던 충전기를 뺐다. 거실에 있는 냉장고도 밥솥의 전원도 껐다. 갑자기 내리칠지 모르는 번개의 피해를 줄이고 싶어서였다.


인도의 폭우는 아주 짧게 또는 밤새 지속되곤 했다.

창문 사이로 들어오는 나무 그림자들은 사정없이 흔들리고 있었다. 태풍 같았다. 사납고 거칠게 울어대는 정글의 호랑이 소리처럼 이곳의 비바람은 집을 삼킬 것처럼 집 주위를 휘감다가 새벽이 되면 돌아가곤 했다. 열려있던 창문을 닫고 불을 끈 후 자리에 누웠다.

아이들은 천둥소리도 사정없이 번쩍이는 번개도 모른 체 곤히 잠들어 있었다.

집 벽을 경계로 평온과 혼동이 자리 잡고 있었다.


삶을 살아가다 보면 만나는 태풍들이 있다.

사춘기가 되어서 만나는 태풍, 첫사랑을 실패 할 때 만나는 태풍, 누군가의 관계 속에서 만나는 태풍.......

태풍은 간간히 우리 곁을 찾아와 흔들어 대다가 사라지고는 한다.

얼마 전 짧은 태풍이 나를 지나갔다.

태풍은 내가 가꾸고 있던 마음 속 나무들과 꽃들을 마구 부러뜨려 버렸다. 제대로 서 있기조차 힘들 정도로 강하게 불어댔다. 나는 그 태풍이 지나가기만을 기다렸다.

이렇듯 가끔 찾아오는 태풍은 내 눈물샘을 터트리기도 하고 마음을 사정없이 흔들어 대기도 한다. 태풍은 세상이 다 끝날 것 같은 그 순간에 언제 그랬냐는 듯이 조용히 사그라지곤 했다.

힘든 순간이었다.

다른 사람에게 내게 지나가는 태풍을 설명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들에게 보이지 않는 나의 태풍을 완전히 이해시키기란 힘들 것이다.

아마 나도 누군가의 태풍을 완전히 동감해 줄 수는 없었는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바람이 멈추지 않고 불고 있었다. 조금만 더 불면 저 바람이 창문을 지나 평온한 이 방까지 침범할 것만 같았다.


아빠가 했던 말이 내 머리에 맴돌았다.

“해옥아. 너 그거 아니? 사람들은 태풍이 없었으면 좋겠다고 이야기 하지. 하지만 태풍도 세상에서 아주 중요한 역할을 한단다. 태풍은 지저분한 세상을 깨끗하게 해주는 역할을 해.

곳곳에 썩어가는 것들을 흘러 내려가게 해준단다. 그래서 태풍도 세상에서는 꼭 필요한 존재야.”

아빠는 세상에서 이유 없이 존재하는 것은 없다고 했다. 태풍도 마찬가지였다.

내가 만나는 태풍도 마찬가지일지도 모른다.

태풍이 지나간 자리는 모두 황폐하게 무너져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아빠 말 대로 더 단단한 나를 만들고 있는 건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나의 불필요했던 부분들이 쓸려나가고 잘려나가면서 그렇게 내가 자라고 있는지도.


어느새 빗소리가 줄어들기 시작했다. 그리고 여느 때처럼 날이 밝아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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