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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모두미 Sep 28. 2019

분홍빛 원피스는 사랑을 싣고

우리 다이아몬드 너무 예쁘다

그해 우리 가족은 여름에 한국을 방문했다.
거의 매년 한국을 방문하지만 엄마는 우리 가족을 볼 때마다 더 탄 것 같다고 하셨다. 그리 속상한 말투도 아니셨지만 그렇다고 행복한 말투도 아니었다.
며칠 엄마 댁에 머물면서 엄마 아빠가 다니시는(내가 어렸을 적 다녔던) 교회에 다녀왔다.


교회 가는 날 아침. 나는 나름대로 인도에서 제일 아껴 입던 검은색 정장치마를 입고 사촌언니에게 받은 초록색 블라우스를 입었다. 아빠는 집을 나서는 나를 보면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야. 해옥아. 좀 다른 옷 없나? 칙칙해 보이는데.”
“아빠. 칙칙하다니요. 제일 좋은 옷으로 가져왔는데. 단정하고 좋죠.”
“해옥아. 요즘에 한국 아가씨들은 아주 화사한 걸 입더라.”
“아이고 아빠. 괜찮아요. 예쁘기만 하고만.”
그렇게 난 검은색과 초록색이 어우러지는 단정한 옷을 입고(아빠는 칙칙하다고 하셨지만) 예배를 드리고 왔다.
인도에 살다 보니 옷을 사는 경우가 거의 없었다. 흙먼지 날리고 소똥 너부러져 있는 길을 걸으며 한국의 샬랄라 한 원피스를 입고 다닌다는 것이 영 어울리지 않아 보였다. 그리고 인도에서는 인도 옷을 입어야 한다 싶어 나는 인도 전통의상을 자주 입곤 했다.
그래서 나의 패션 감각이 떨어졌던 것인가. 엄마 아빠는 나의 패션이 영 마음에 들지 않는 듯했다.


그날 저녁 우리 가족은 쇼핑을 갔다. 아이들과 인도에 가서 쓸 것들을 사기 위해서였다. 남편은 일 때문에 서울에 있었고 아빠도 바쁜 일 때문에 같이 가지 못했다.
뛰어다니는 아이들을 데리고 필요한 것들을 거의 다 샀을 때쯤 엄마가 말했다.
“니 보니까 옷이 많이 없는 것 같던데. 원피스 하나 사지?”
“아니 엄마. 무슨. 됐니더. 돈 아끼소.”
“한번 봐라. 아빠도 니 옷 하나 꼭 사주라 그러더라.”
“괜찮은데. 아니 인도에서는 짧은 치마는 못 입어. 입을 만한 게 있으려나.”
그렇게 엄마와 같이 여성복 가게를 들렀다. 정말 아빠 말대로 한국의 원피스들은 파스텔 톤의 세련되고 화사한 색깔들이었다. 나는 그 옷들 중에서 분홍색 원피스를 골랐다. 하늘하늘한 분홍색 원피스는 다행히 내 사이즈와 꼭 맞았다.
“근데 니 살찌면 입을 수 있을라? 괜찮겠나?”
“아. 엄마. 괜찮니더. 완전 너무 예쁜데. 근데 이거 비싸서 괜찮아요?”
엄마는 가격 신경 쓰지 말라며 내가 고른 옷을 계산해 주셨다.
다음 교회 가는 날 나는 그 옷을 입었고 엄마 아빠는 아주 만족해하셨다. 그렇게 한국에서 있는 동안 몇 번 옷을 입었나 보다.

인도로 돌아와서 나는 그 옷을 옷장에 고이 걸어 두었다. 그러는 사이 난 살이 쪘고 딱 맞았던 그 하늘하늘한 분홍 빛 원피스는 입을 수 없게 되었다.
나는 옷장 맨 앞자리에 그 원피스를 꼽아 놓았다. 그 작아진 원피스를 누군가에게 줄까 하고 몇 번을 고민도 했다. 하지만 난 그 옷을 주지 못했다.  
그 옷을 볼 때마다 엄마 아빠가 생각나서 좋았다.
인도에 살아서 까맣게 탄 큰 딸이 칙칙한 옷을 입을까 봐, 남들 보기에 못나 보일까 걱정하시던 엄마 아빠 마음이 생각났다.
그리고 다 커서 부모님께 받은 선물이어서 좋았다. 내가 선물을 드려야 하는 나이인데 받았다는 것이 행복했다. 나는 어린아이처럼 그 원피스를 보고 또 봤다.

작년 여름 다이아몬드가 우리 집에 놀러 왔다. 우리 집에서 살면서 늦은 나이에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이제는 대학에 다니고 있는 다이아몬드가 방학이라고 집에 놀러 온 것이었다.
많은 사연이 있어서 우리 집에 살았던 다이아몬드는 우리를 자기 가족처럼 여겼고 나도 다이아몬드를 딸처럼 생각했다. 그래서인지 다이아몬드가 있는 며칠 동안 그 분홍색 원피스가 계속 눈에 들어왔다.
‘이 원피스를 계속 가지고 있는 것보다 다이아몬드에게 주는 것이 더 좋지 않을까?’
나는 몇 번이고 원피스를 꺼냈다 넣었다를 반복했다.
그리고 다이아몬드가 학교로 돌아가기 전날 나는 다이아몬드에게 분홍색 원피스를 선물했다.
“다이아몬드야. 이 옷은 우리 부모님께서 선물해 주신 거여서 내가 정말 소중하게 생각하던 거야. 근데 내가 가지고 있는 것보다는 네가 입으면 훨씬 좋을 것 같아.”
“와. 너무 감사해요.”
분홍색 원피스는 다이아몬드를 위해 준비된 옷처럼 꼭 맞았다.

원피스를 통해 엄마 아빠의 사랑이 내게 전해졌다.
그리고 그 사랑이 이제 내 딸 다이아몬드에게 전해졌다.
난 다이아몬드를 보며 이야기했다.

“우리 다이아몬드 너무 예쁘다.”

우리 다이아몬드 이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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