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 뭐예요? 아 진짜. 밥 먹는데 너무 하잖아요.” 말로는 너무 하다면서 두 꼬마들은 웃고 난리가 났다. 남편은 자연적인 현상이라 어쩔 수 없었다며 웃는다.
결혼 13년 차. 이제 볼 것 못 볼 것 다 본 사이였다. 집에서까지 격식 차리고 있으면 숨 막혀서 어떻게 사냐는 남편의 말은 맞는 말이었다.
그렇지만 여전히 나는 환상을 바랐다. 맵시 있는 옷을 입고 내게 장미꽃을 가져다주며 깜짝 이벤트를 준비하는 남편을 기대하지는 않았다. 그저 평소에도 좀 흐트러지지 않는 모습을 보고 싶을 뿐이었다. 결혼하기 전의 남편을 조금이라도 찾고 싶었다고나 할까.
식사를 하고 아이들이 숙제를 하는 동안 우리는 산책을 했다. 요즘은 인도의 저녁도 꽤나 쌀쌀했다. 우리는 먼지 날리는 흙먼지 길을 걷다가 집 앞에 크게 펼쳐져 있는 들풀 길을 걸었다. 들풀이 잔디처럼 펼쳐져 있는 길에는 벌써 이슬이 내렸는지 신발이 촉촉하게 젖었다.
나는 남편에게 이야기했다.
“아니. 여보. 좀만 신경 쓰고 살면 안 되나? 부부가 편해야 하는 것은 맞는 말이지만 좀 설렘이 있으면 좋지 않을까? 아무리 13년 됐다고 하지만 내가 있을 때 좀 신경 써주면 안 되나?”
남편은 나를 보면서 막 웃는다.
“왜. 나는 달라진 게 하나도 없는 것 같은데.”
“아니. 난 조금이라도 예전 느낌을 찾고 싶어. 그냥 13년 차 부부가 아니라 가끔이라도 설레는 그런 부부?” 말하면서 나도 웃었다. 사실 현실 불가능한 이야기처럼 보였다. 서로 마음을 이해하며 평생 동반자처럼 살아간다는 것은 좋은 친구로 살아간다는 것일 수도 있었다. 설레는 마음을 기대하는 내가 잘못된 것일 수도 있었다.
남편은 나를 한참 쳐다보더니 내 손을 잡았다. 그리고는 손가락 하나하나씩 빼더니 새끼손가락만 남겨두었다. 우리는 촉촉이 이슬에 적셔진 들풀 길을 새끼손가락 하나 잡고 걸었다.
“여보. 어때? 이제는 신혼 느낌 좀 나나?”
“아~~ 뭐야. 여보.”
나는 웃음을 참지 못했다. 남편과 잡은 새끼손가락이 어색해서 웃었는지 너무 오랜만에 남편에게 설렘을 느꼈는지 나도 모른다. 나는 계속 웃고 있었다.
“아. 내가 너무 메말라 있었던 거야. 너무 메말랐어. 아니 이 새끼손가락이 뭐라고 이렇게 좋아서 웃고 있는 거야?” 그러자 남편은 나를 더 놀리며 이야기했다.
“아. 이 새끼손가락 정도는 내가 매일도 잡아줄 수 있지. 걱정 마. 여보.”
우리는 큰 들풀 운동장을 한 번 더 걸었고 나는 어디서 나오는지 알지 못하는 그 간질간질한 기분을 웃음으로 표현했다.
그날 인도의 밤하늘은 참 아름다웠다
그 후로도 우리는 가끔 새끼손가락을 잡고 산책을 했다.
그렇다고 남편이 동화에서 나오는 멋진 왕자님으로 변하지는 않았다.
그리고 내가 남편에게 드라마에 나오는 청순한 여주인공이 되어주지는 못했다.
하지만 그와 새끼손가락만 잡고 걷는 저녁 산책이 나쁘지 않았다.
우리는 새끼손가락을 잡고 함께 살아왔던 지난 추억들을 이야기하며 걸었다. 서로의 고민들을 나누며 흙길을 걸었다. 그리고 함께할 미래를 꿈꾸며 들풀 이슬 길을 걸었다.
남편과 걷는 밤 산책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수많은 별들이 반짝이는 인도의 밤하늘 아래서 설레지 않는 듯 설레게, 그리고 평범한 듯 평범하지 않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