쓰지 않고 밀린 일기숙제

방학 숙제를 미룬 자에게 나타나는 흔한 결과

by 모두미

어렸을 적 아빠는 매우 엄하셨다. 다른 아이들을 볼 때면 꼭 안아주고 귀여워 해 주셨지만 동생과 나에게는 항상 엄한 아빠였다. 특히나 거짓말을 하거나 싸울 때면 아빠는 그 무시무시한 파리채를 들곤 하셨다. 동생은 어렸을 적 고집을 많이 부려서 아빠에게 자주 혼났지만 난 나름 모범적인 첫째 딸 이였다. 공부를 그렇게 잘한 것은 아니었지만 부모님 말씀에 순종하는 순종파 였다. 그 날이 오기 전까지 말이다.

초등학교 1학년 여름 방학이었다. 처음 학교에서 맞이하는 방학이라 숙제도 여러 가지가 있었다. 하지만 난 숙제 보다 친구들과 아침부터 저녁까지 노는 것에 더 관심이 있었다. 물론 누구나 그랬을 테지만.

아빠는 매일 나에게 물어보셨다. “해옥아! 숙제 잘 하고 있니?” “네. 아빠 열심히 하고 있어요.” “매일 일기 쓰는 숙제가 있다며? 그것도 잘 하고 있지?” “그럼요. 아빠 걱정하지 마세요. 잘 쓰고 있어요.”

매일 놀기만 하던 난 대답 하나 기똥차게 했다. 아빠는 그런 나를 보며 아주 뿌듯해 하셨다.

그리고 방학이 거의 다 끝날 때 쯤, 개학 바로 전날, 바로 그 일이 있었다.

아빠는 나에게 개학 바로 전날 숙제 검사를 하신다고 이야기 하셨다. 난 마음이 급해졌다. 다른 숙제들은 할 수 있었지만 한 달 내내 미뤄 둔 일기를 하루 만에 쓰기란 불가능 했다. “첫째 날은 친구들이랑 숨바꼭질, 둘째 날은 동생이랑 문구점 간 것, 그리고... 그리고... 셋째 날은....” 도대체 생각이 나지 않았다. 한 달 동안 내가 지냈던 것들을 어떻게 다 기억할 수 있으랴? 아무리 어린 나였어도 말이다. 마음이 불안해 졌다. 학교에서 선생님께 혼날 것은 걱정하지도 않았다. 따뜻한 눈으로 바라보시며 숙제 잘하는 기특한 딸이라 생각하시던 아빠의 그 눈빛이 무서운 호랑이 눈빛으로 바뀔 것을 생각하니 눈물 밖에 나지 않았다. 아! 차라리 그 날 그 날 숙제를 좀 할걸. 미루지 말걸. 아님 아빠에게 솔직하게 이야기 할 걸...

그날 저녁 우리 집은 말 그대로 초상집이었다. 한 달 내내 웃으며 거짓말을 해 온 딸에게 받은 배신감과 거짓말이라는 나쁜 나무를 딸의 마음에서 뽑아내야 한다는 아빠의 굳은 결심이 합쳐지면서 아빠는 이제껏 보지 못했던 무서운 호랑이처럼 변했다. 바지를 올리고 서있는 나에게 아빠는 가장 아픈 파리채로 종아리를 때리기 시작하셨다.

몇 번 파리채가 움직이자 내 종아리에는 검은 줄들이 나기 시작했다. 엄마는 여자애 치마도 못 입게 한다고 속상해 하며 종아리를 때리는 아빠에게서 나를 데려 와서는 엉덩이를 때리기 시작하셨다. 화가 난 아빠와 속이 상한 엄마 그리고 후회하며 우는 나 까지. 우리 집은 정말 울음 바다였다. 그렇게 다음날 긴 바지를 입고 학교로 향했다. 학교에서 어떻게 혼이 났었는지 숙제는 다시 다 해갔는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


하지만 한 가지 기억나는 것은 바로 아빠의 편지였다.

아빠와 엄마는 평소처럼 양복 공장에서 일을 하고 계셨고 집은 텅 비어있었다. 그런데 거기에 작은 쪽지가 남겨져 있었다. “아빠가 해옥이를 때려서 미안하다. 여기 용돈 있으니까 맛있는 거라도 사먹어.”

짧은 아빠의 편지였다. 그리고 그 종이 편지 안에 천 원짜리가 들어 있었다. 그 시절 천원이면 우리에게 꽤나 큰돈이었기 때문에 나와 동생은 아주 신이 났다. 그 전날 그렇게 혼났던 것은 하나도 기억하지 못하는 것처럼 말이다.

난 그렇게 천 원에 아빠를 용서해 드렸다.

아빠가 나를 혼내면서 얼마만큼 마음이 아프셨을지 그 때는 몰랐다.

내가 아이들을 키우며 잘못한 것을 혼낼 때면 꼭 아빠가 생각난다. 엄하게 더 엄하게 교육시켜서 예절 바르고 착한 아이로 자라게 하고 싶다는 아빠의 그 마음을 그 때는 몰랐었다. 나처럼 교육받지 못하고 힘들게 살아가면 안 된다고 항상 이야기 하시던 아빠의 마음에 어떤 아픔이 있었는지 그 때는 몰랐었다.

아마 내가 아이들을 다 키울 때 까지 아빠의 그 마음을 다 이해하지 못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아이들을 키우며 느끼는 매 순간마다 아빠를 기억할 것이다.

아빠의 걱정과 고민들이 모두 내 걱정과 고민들이 되어갈 때 아빠를 기억할 것이다.

밤새 혼났던 그날, 아빠의 무서웠던 얼굴이 아닌 아빠의 숨어 있던 눈물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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