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것은 청소기인가 상앗대인가
2022년을 시작하면서 내가 좋아하는 작가가 이끄는 책 읽는 그룹에 들어갔다.
매일 책을 읽고 가장 좋은 구절을 나누는 그룹이었다.
회비를 내고 독서 그룹에 가입하는 것이 처음이었지만 난 그저 작가에 대한 팬심으로 들어갔다.
'그래. 새해를 시작하는 나에게 선물을 주는 거야.' 이런 마음으로.
시작하는 날 온라인으로 열 명이 조금 넘는 멤버들과 작가와 만나 책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큰 변화를 기대한 것은 아니었다. 그저 사놓은 전자책이 많아서 그 책들을 좀 읽어 보자 50프로, 좋아하는 작가와의 만남에 건 기대 50프로 였다.
하지만 매일 읽은 책들을 인증하면서 내게 변화가 생겼다. 인증을 해야 했기에 김장을 위해 풀물을 쓰면서도 한쪽 손으로는 책을 들고 한쪽 손으로는 풀물이 완성되기까지 국자를 휘저었다.
화장실에 가거나 시간이 날 때면 유튜브를 켰었는데 어느 순간부터 전자책을 보기 시작했다. 아주 작은 변화였지만 나는 정말 책을 읽고 있었다.
그렇게 읽은 책들 중 두 권이 그림에 관한 것이었다.
'빈센트 나의 빈센트' 그리고 '모지스 할머니, 평범한 삶의 행복을 그리다.'
유명한 화가의 인생 이야기와 평범한 할머니가 그림을 그리기 시작하면서 화가라 불리게 된 이야기까지.
빈센트 고흐의 이야기를 읽는 내내 내 마음은 아팠고 모지스 할머니 이야기를 읽으면서는 마음이 설레었다.
고흐의 이야기와 그림들을 보고 읽으면서 예술에 대해서 그리고 그림에 대해 오래 생각했다면 모지스 할머니의 이야기와 그림들을 보고 읽으면서는 희망을 얻었다.
워낙 그림을 잘 그리지 못하는 똥 손이었지만 그림에 대한 사랑만은 가득했던 나였기에 할머니가 되어 그림을 그리기 시작한 모지스 할머니의 이야기를 보면서 나도 다시 그림을 그리자 다짐했다.
그리고 지난 일요일에 그림을 그렸다. 2년 전 인강으로 유화를 배울 때 그리다 완성을 못했던 그림에 눈 코를 그려 넣고 빈 곳에 색을 채웠다. 그렇게 2년 만에 그림 하나가 완성되었다.
그리고 남은 물감으로 나만의 그림을 시작했다. 지난달에 집 리모델링을 하면서 천장을 바꿨는데 그때 남은 천장 재료에다가 그림을 그렸다.
어두운 바다에 노 젓고 가는 여인을 그렸다. 나를 그렸다. 파도치는 바다 위로 나를 여전히 비춰주는 달빛을 그렸다. 나름대로 의미도 있는 그런 그림이었다.
하지만 완성된 그림을 본 우리 집 남자들의 반응은 시큰둥했다.
"엄마. 이거 완전 초등학생 그림 같은데요. 달빛이 왜 넓었다 좁아졌다 그래요?" 큰 아들 성민이었다.
"여보. 음.... 왜 배 위에서 청소기를 잡고 있어?" 남편이었다.
그리고 막내는 말없이 갸우뚱했다.
나는 대답했다. "아들아. 달빛이 구부러질 수도 있는 거야." "여보. 저게 청소기로 보여? 오메. 상앗대로 노 젓고 있는 거잖아. 아~ 이래서 예술인의 삶은 외롭고 힘든 거야. 이 그림이 내가 죽고 나면 엄청난 가치를 할 거야. 정말 너무들 모르네."
그날 저녁 우리 집 남자들은 내 그림을 볼 때마다 웃으면서 이런저런 평가들을 늘어놓았다. 덕분에 저녁 내내 우리 집은 웃음이 끊이질 않았다. 그림 하나로 우리 집 남자들을 이렇게 즐겁게 할 수 있다니. 뭐 나쁘지 않았다.
그림의 해석은 다양했다. 친한 언니는 할아버지 같다고 했고 누구는 낚시하는 사람으로 한 지인은 배를 탄 예수님이라 생각했다. 아무도 노를 젓고 있는 해옥씨라는 것을 알아채지 못했다.
하지만 서운하지 않았다. 멋진 명화는 아니었어도 내 그림으로 모두가 즐거워할 수 있으니 그것 만으로도 만족이었다. 어쩌면 책을 읽으면서 온 내 삶의 변화에 나는 기뻐하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책을 읽으며 내가 정말 하고 싶었지만 오랜 시간 하지 못했던 것을 시도한 내 모습이 자랑스러웠는지도 모른다. 그래서인지 누가 뭐라고 그림을 해석해도 나는 행복해서 그저 웃음만 나왔다.
모지스 할머니는 말했다.
"사람들은 늘 내게 늦었다고 말했어요. 하지만 사실 지금이야말로 가장 고마워해야 할 시간이에요. 진정으로 무언가를 추구하는 사람에겐 바로 지금이 인생에서 가장 젊은 때입니다. 무언가를 시작하기에 딱 좋은 때이죠." -모지스 할머니 평범한 삶의 행복을 그리다
나이 70에 그림을 시작한 모지스 할머니는 그림을 통해 내게 말하고 있었던 것이 분명하다.
'해옥 씨. 할 수 있어요. 지금이 바로 다시 시작할 수 있는 가장 좋은 시간이랍니다. 뭐든지 꿈꿨던 것을 시도해 보세요.'라고.
*** 밤 산책을 하는 동안에도 저를 놀리는 남편을 향해 말했습니다. "여보. 다음 그림은 당신 초상화로 할게. 하하. 복수해 버리겠어." 사실 사람 얼굴만 그리면 괴물이 되는 저의 이 똥 손을 가지고 남편에게 줄 수 있는 가장 큰 복수가 바로 그의 얼굴을 그리는 것이라는 걸 깨달은 거죠.
삼 주 정도 책을 읽으면서 다른 분들이 읽은 문구들을 보면서 그림을 그리게 된 것뿐만 아니라 글도 쓰게 되었네요.
오랜만에 쓴 저의 글을 끝까지 읽어주셔서 너무 감사합니다.
즐거운 일들만 넘치는 새해 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