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차 아내의 평범한 하소연
냉장고에서 꺼낸 사과를 우적우적 씹어 먹는다.
이 세상에 이렇게 맛없는 사과는 처음이다. 아침까지만 해도 부탄에서 건너온 사과라 그런지 아주 아삭아삭하고 맛있다며 너스레를 떨던 나였다. 요즘 예민해진 남편 덕분에 내가 아주 눈칫밥을 제대로 먹고 있다.
이래서 직장에 연인이(부부 포함) 함께 있으면 안 된다고 하였던가.
NGO 일을 처리하다 보니 자꾸 정리에, 계산에 약한 내가 밀린다. 고등학교 시절에도 수학이 어려웠지만 곧장 선생님께 달려가 열심히 배우며 나름 수학의 깨달음의 기쁨을 누리던 나였다.
하지만 전신마취 한 번에 부분마취 한 번까지 두 번의 제왕절개로 떡두꺼비 같은 아들 둘을 낳고 부터는 영 머리가 회전이 안 되는 것이 사실이다.
오늘도 제대로 정리되지 않는 부분을 가지고 남편에게 혼났다. 당신은 생각을 너무 하지 않는다는 돌 직구를 맞으면서.
그래서 그런지 이 사과 정말 맛이 없다.
내가 왜? 나도 잘하는 것 있다고. 비록 숫자들을 보면 머리가 하얗게 변해 버리지만 아이들과 그림을 그리며, 혼자 피아노를 치며, 책을 읽으며 글을 쓰는 것 정도는 아주 하루 종일이라도 집중해서 할 수 있다며 하소연 해 보지만 그에게는 들리지도 않나 보다.
대학시절 두근거림으로 만나 설렘으로 데이트를 하던 시절. 그런 시절은 꼭 다른 사람들 이야기만 같다.
아 우리에게도 그런 설레던 시절이 있었던가!
대학교 3학년 때 동아리에서 그를 만나 선교사라는 꿈을 가지고 가난한 사람들을 돕자는 하나의 비전을 가지면서 우리는 다른 사람들보다도 더 가까운 사이가 되었다. 유난히 까맣던 나를 보고도 귀여운 여동생이라며 아껴 주던 그 사람.
우리는 그렇게 함께 꿈꾸며 서로를 사랑하기 시작했다.
그리 부요하지 않았던 그의 가정과 그 비슷한 나의 가정. 우리는 아주 소박한 커플이었다.
주말이면 데이트보다도 이삿짐 아르바이트가 먼저였던 그 사람.
고급 레스토랑도, 멋진 커피숍도 가격이 부담스러워 가까이 떡볶이 집과 김밥천국을 우리의 아지트로 삼으며 데이트 하던 그 시절. 그래도 행복했었다.
아버님이 시간 날 때 마다 아르바이트하라고 주신 하얀색 녹슨 트럭 포터. 겉은 누가 봐도 똥차처럼 보였지만 차 안에 나름 내비게이션과 미니 티비를 설치 해놓고 시간이 날 때는 데이트를 하곤 했다.
그와 함께 녹슨 하얀색 포터를 타고 학교 후문으로 들어설 때면 나는 자연스레 가지고 있던 연필을 떨어트리거나 핸드폰을 떨어뜨려서 떨어진 것을 찾는 마냥 얼굴을 숙였다. 혹시 지나가던 친구들이 그의 낡은 트럭 속에 앉아 있는 나를 발견할까봐.
그의 낡은 트럭을 타고 데이트 다니는 것이 창피할 때도 그가 속상해 할까봐 한마디 불평도 하지 않고 나름 내 방법으로 얼굴을 숨기던 풋풋했던 연애 시절.
우아하고 럭셔리한 연애는 아니었지만 그와 함께 있는 것만으로도 행복했던 그런 시절이 내게 있었다.
이제는 일 잘 못한다고 구박받고, 아이들 교육을 제대로 못 시킨다는 소리를 들으며 때론 원수처럼 싸우게 되는 부부 10년 차.
속이 부글부글 끓을 정도로 미워하다가도 이곳 사람들을 위해 날아 다니며 일하는 그를 보면 짠한 마음이 든다.
그래. 폼 나는 남편은 아니어도 진국이니까, 내가 참는다.
나와 아이들에게는 바쁜 남편이요 아빠여도 이곳 사람들에게는 꼭 필요한 사람이니까. 내가 참는다.
두근두근 그 시절이 되돌아오지는 않겠지만 이제는 든든한 내 버팀목이니까. 내가 참는다.
손으로 인도 커리 먹으면서도 그저 맛있다고 이야기하는 당신이니까. 내가 참는다.
내 속이야기 다 들어주는 평생 소중한 친구가 되어버렸으니. 내가 참는다.
이렇게 내가 참고 참고 참다 보니 다시 그에 대한 연민의 감정이 든다.
그리고 참고 참는 내가 어느 순간 그에게 가까이 가 있다.
남편이란 것이 이런 것일까? 아내란 것이 이런 것일까?
내가 손해 본 것 같고, 작은 행동에도 화가 나고, 때론 죽도록 밉다가도,
그가 없다고 생각만 해도 눈물이 나고 가슴 졸이게 되는 그런 사이.
애증이라고 해도 좋다. 우리는 그렇게 평생을 살아갈 것이다.
미워 죽겠다가도 보고 싶고, 혼자 있고 싶다가도 어느 순간 그에게 달려가는 그런 이상한 삶을.
화가 나 씩씩 거리다가도 그의 웃는 표정 하나에 마음 속상한 것들 다 씻겨내 버리는 그런 이상한 삶을.
그렇게 그와 나는 평생 소울메이트가 되어 갈 것이다. 이상한 소울 메이트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