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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모두는 Sep 03. 2023

#14 성안동 365세차장 사는 나무님의 서사

“죽음 앞에서 빛을 봤어요.”



#퇴직, 새로운 시작 

  무선통신사로 30년간 일했어요. 퇴직 후 3년째 자동세차장을 운영하고 있어요. 퇴직하고 집에만 있는 게 너무 지겨워 등산을 했어요. 3달 정도 매일 다니다가 살 빠지고 피부도 타고 해서 와이프가 말리더라고요. 그만 가라고. 그래서 등산 다닌다고 안 씻던 차를 씻으러 왔어요. 원래도 오던 곳인데 마침 임대가 나왔더라고. 완전 죽은 세차장이었는데 시설 정비 싹하고 했더니 매출이 10배 정도 늘었어요.     



#예상 밖의 막막함

  너무 힘들어서 그만두려고도 했어요. 기계는 그냥 돌아가는 줄 알았지. 수건 좀 빨고 앉아있으면 되는 줄 알았는데, 기계가 계속 고장이 나. 휴일에 많이 쓰니까 그때 고장이 잘 나요. 손님들 몰려와서 줄 서 있는데 어디서 “사장님 물 안 나와요.” 하면 맨붕이죠. 어떻게 해결해야 할지 모르니 앞이 캄캄하고. 기술자 한 번 부르면 출장 오는 데만 하루 이틀 걸리고, 한 번에 60만 원씩 나가니까, 내가 직접 고치기 시작했어요.



#2년의 기술, 노하우 집

  처음에는 한 시간을 해도 안 되더라고요. 모터가 안 돌아가고 물이 안 나오는 이유가 있을 텐데, 아무리 해도 안 돼. 헤매고 헤매다 요 분야 저 분야 다 전화해서 물어가며 배웠어요. 그 고생을 2년 하고 나니까 나름 기술자가 됐어요. 싹 수리하고 앞으로 일어날 것까지 문서로 정리했어요. 이것만 갖고 있으면 앞으로 누구나 다 할 수 있도록요.     



#7살, 시골 노역

  7살 때 엄마 돌아가시고부터 일했어요. 소 매러 다니고. 소 도망가면 끌려가고. 우는 것 밖에 더 있나. 그땐 그냥 울었죠. 11살에 아버지 돌아가시곤 큰 형님 집에서 강제 노역하며 살았어요. 친구들이 놀러 가자 하면 “나는 지금 안 된다. 일한다” 하고. 학교 갔다 오면 농사짓고, 소 키우고, 집안일 다 하고. 남들 다 하는 일이지만 혼자 다 해야 하니까 너무 힘들었어요. 저만한 조카가 있었는데, 걔는 일하러 가자 하면 “싫어요. 안 가요.” 하면 끝이죠. 부모니까. 근데 나는 어쩔 수 없이 가야 했죠.     



#살아갈 운명

  죽으려고 농약이랑 수면제도 먹었어요. 형수랑 트러블이 심했어요. 큰 딸이랑도 싸우고 하니 형수가 싫어하고. 억울한 일이 많았죠. 그래서 ‘이렇게 살 바에 죽는 게 안 낫겠나’싶어 수면제 30알 먹으려다 걸렸어요. 죽을 운명이 아니었나 봐요.                       


        

#죽음 앞에서 피어난 잎

  기술 공부를 했어요. 사촌 형이 안 되겠다고 내려오라고. 무선통신사라는 게 있는데 그걸 하면 대우받을 수 있다고 해서 같이 학원에 다녔어요. ‘내가 살 길은 이거다’생각해서 새벽에 잠깐 자고 또 연습하고 학원에 살다시피 했어요. 학원에서 유일하게 합격했죠. 그렇게 배 타고 바다서 3년 일하다가 멀미가 너무 심해 그만뒀는데, 그때 마침 현대중공업에서 무선통신사 모집 공고가 났더라고. 그래서 지원했는데 또 운 좋게 합격해서 정년까지 30년 일했어요.



#정년 후에도 일하는 이유                                                                      

  가족이죠. 클 때부터 가정의 소중함을 알았고 사랑 못 받고 살아도 봤고. 그래서 가족이 소중해요. 최근에 와이프가 심장판막 수술을 했어요. 감기도 안 걸리고 건강했는데 밤에 숨을 못 쉬더라고. 급히 응급실 갔는데, 코로난줄 알고 격리실 가서 이거저거 검사하고 한 달 정도 병원에 있어도 원인을 못 찾았어요. 그러다 마지막에 심장이 문제라 하더라고요. 다행히 수술은 잘 됐는데 10년에 한 번 재수술 받아야 해요. 와이프도 그동안 미용실 한다고 고생했는데, 이제 놀러 다니고 좀 쉬라고 했어요. 내가 좀 고생해서 가족이 행복하면 좋잖아요. 가정이 있어야 내가 있으니까. 









죽은 나무가 숨이 트여 잎이 달리고 살아나는 삶     








(인스타그램 @moduneu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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