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떻게든 해내본다.
적은 물건으로 살아보기를 애써서 해보기 시작한지 보름남짓. 필요한 물건은 그때그때 사고 밥솥없이 밥이 먹고싶을때에만 햇반으로 해결하고 베갯잎도 두장을 돌려쓰고 좁은 부엌에서도 어찌어찌 음식을 해내고 책상 없이 탁자 하나에서 밥과 글을 쓰면서 해나가다보니 딱히 불편한 점도 필요한것도 못느끼겠다.
오히려 부담이라면 아직 오지 않은 겨울옷들을 어떻게 처분하고 어디에 넣어두어야 하는지 수납공간이 걱정이다. 더이상 가구를 늘리거나 하고싶지는 않아서 이미 많은 양의 옷과 물건을 처분했음에도 아직 많다고 느끼는데 그냥 사고싶어 마구잡이로 샀던 겨울 겉옷들을 도저히 감당할 수가 없을거라는건 이미 알고 있다.
그렇다고 본가에 둘 수는 없고 어떻게든 가지고 와서 이곳에서 처분을 할 생각이다. 어차피 더이상 회사생활을 하지 않기로 결심한 이상 많은옷의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랄까.
수입이 없는 지금에 불안함을 느낄때면 서점으로 달려가 온갖 긍정적인 말이 쓰여있는 책을 한아름 쌓아놓고는 그 책들을 읽어제낀다. 그리고서는 리셋된 마음으로 좋은 생각과 좋은 말만 하자는 결심을 하면 그나마 몇일은 예쁜 마음으로 살아진다.
'참... 애쓴다...'
그런데 그 애쓰는 느낌이 싫지 않다. 아마도 원하고 선택한 애씀이라 그러리라고 생각된다.
누군가가 나에게 밥통도 옷도 물건도 없는 삶을 해봐!하고 시켰다면 아마 온갖 투덜거림과 함께 짜증섞인 날들을 보냈을테지만 내 선택이어서 그런지 '어떻게든 해내고 있다'라는 생각이 머릿속을 멤돌며 꽤나 즐겁고 있다.
이 말을 처음 들은건 우연히 본 다큐에서 임시거처에 머물던 부부를 보게 되면서이다. 세탁기도 부엌도 없는 그곳에서 부인은 '어떻게든 해내고 있어요, 함께 있는 것만으로 행복하거든요.'라며 정말 어떻게든 잘 해내고 있었다.
잘 정돈된 방과 어떻게든 차려내는 식사들과 빨래방에서 하는 빨래들까지도 기꺼이 행복함과 감사함으로 해내는걸 보고서는 다른 마음보다는 부러운 마음이 가장 컸다. 어쩌면 불만 가득할 수 있는 저런 환경에서 저렇게 아름답게 웃으며 행복해 할 수 있는걸까...
지금의 나의 생활도 그 어느날 내가 원했던 환경이었을 것이다. 내 손으로 가꾼 보금자리에서 책을 읽고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리며 삶을 꾸려나가고 싶었다. 분명 나는 그랬다. 혼자만의 공간이 생기면 실컷 내가 하고싶은대로 하루를 쓸 수 있을거라 생각했다.
아마도 지금보다 곱절은 더 애를 써야 할 것이다. 생각하는대로 된다더라라는 말을 되뇌이며 조금이라도 안된다는 생각이 들어올라치면 다시 서점으로 달려가 긍정에 관련된 서적을 뒤적거리며 어떻게든 해내보는 수 밖에는 달리 도리가 없다.
지금은 그렇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