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레지 않으면 버리라는 말이 왜 내겐
'설레면 사라'로 들리는가
세계적인 정리 컨설턴트 곤도 마리에는 <정리의 힘>에서 버릴 물건과 남길 물건의 기준을 '설렘'이라 정했다. 다소 감성적으로 느껴지는 이 기준은 그의 첫 책 <인생이 빛나는 정리의 마법>에서부터 버리기와 정리를 추구하는 미니멀라이프 열풍의 시작이 된다. 옷장, 서랍, 창고에 있는 물건을 모두 한 곳에 모은 후 하나씩 물건과 교감하며 버릴 것과 남길 것을 구분한다. '설레면 남기고 설레지 않으면 버린다.'
그렇구나! 내게 물건이 많은 건 '설렘'때문이었구나. 옷은 계절 바뀌면 골라내고 책은 일 년에 한 번 정리한다. 버려도 버릴 게 생기는 순환이 의아했는데 이유가 설렘이었나. 여보세요 버린 만큼 다시 사니까 그런 거잖아요. 안 그렇습니까.
그릇을 보면 설렌다. 38층 높은 곳에 살아 흙 기운이 부족해선지 백자 청자빛 그릇 보면 마음이 설렌다. 묵직하게 반짝거리는 유기그릇에도 설렌다. 나는 그릇과 음식의 조화만큼 그릇을 오브제로 쓰는 걸 즐긴다. 눈길 가는 곳에 놓아둔다. 나는 그것을 바라보는 것이 좋다.
내 강아지에게 어울릴 옷 보면 설레고 딸아이 신으면 이쁠 신발에도 설렌다. 봄바람 살랑 불 때 입으면 좋을 원피스, 갈 곳도 없는데 설렌다. 꽃 집 보이고 호떡집 지나면 코부터 설렌다. 어느새 한 손엔 작약 다섯 송이 다른 손엔 호떡 한 봉지 쥐어 있다. '설레지 않으면 버리라'는 말이 왜 내게는 '설레면 사라'로 들리는가.
넷플릭스 영화 <미니멀리즘:오늘도 비우는 사람들>에선 보다 실용성에 접근한다. 우선 모든 물건을 하나도 남김없이 박스에 넣는다. 찾기 쉽게 주방 거실 서재 혹은 옷 화장품 신발 등으로 분류하여 담는다. 그 후 필요한 물건이 생길 때마다 하나씩 상자에서 꺼낸다. 한 달이 지난 뒤 박스에 남은 물건은 필요 이상의 물건이다. 버린다.
부부 건축가로 유명한 임형남 건축가 역시 같은 말을 한다. 살던 집에서 나오는 시간과 들어갈 집이 비는 시간이 맞지 않아 살림의 70% 정도를 이삿짐센터 창고에 맡기고 방 한 칸을 빌려 석 달을 살았다 한다. 놀랍게도 일상에 아무 불편이 없었다고. 그때 문득 '그렇다면 맡긴 짐은 무엇인가'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한다.
내겐 몇 개의 물건이 상자에서 탈출할까 궁금하다. 그런데 봄 여름 가을 겨울 사계절 있는 우리나라는 한 달 안 썼다고 버릴 수 없는 물건이 많다. 명절 쇠고 제사 지내니 일 년에 두세 번밖에 사용하지 않지만 꼭 필요한 살림도 있다. 손님 오면 내어 드릴 이불 여분도 필요한데, 핑계일까? 어쨋든 이 방법은 내게 너무 과격하군.
여기서 한 차원 더 높게 접근하신 분은 단연 법정스님이시다. 스님은 난초를 선물 받아 애지중지 정성을 다해 기르셨다. 어느 날 난초 때문에 외출조차 자유롭지 못하게 되고 일상이 난초 중심으로 돌아가는 걸 깨달으셨다. “나는 이때 온몸으로 그리고 마음속으로 절절히 느끼게 되었다. 집착이 괴로움인 것을. 그렇다, 나는 난초에게 너무 집념한 것이다.”(법정, <무소유 >25쪽)
적게 소유하였어도 그것에 집착하면 무소유가 아니라는 말씀. 미니멀을 넘어 진정한 고수의 경지시다. 그러고 보니 내겐 매우 집념하는 강아지까지 있다. 이런, 총체적 난국이군.
아파트를 만든 건축의 대가 르 꼬르뷔지에는 말년에 4평 오두막을 짓고 살았다. 그가 어머니를 위해 직접 설계한 집은 단출하여 편안하고 소박하여 아름다웠다. 그래 나도 저리 살아야지. 저렇게 단정하게 살아야지 하다 피아노 악보를 비추는 조명이 맘에 들어 결국 그것과 비슷한 벽조명을 샀다. 도대체 전개가 왜 이 모양인가.
적게 소유하는 것은 지구와 환경과 타인에 대한 예의다. 간디는 소유가 범죄로 느껴진다고 했는데 진실로 우주적 세계관이 아닐 수 없다. 물건을 사기 위해 돈을 벌고 그것을 관리하기 위해 시간과 공간을 낭비하는 어리석은 일은 그만해야지 오백 열두 번째 다짐해 본다. 깨달아도 실천하지 않으면 헛 것이다 되뇐다.
분리수거도 해야 하고 큰 짐은 돈을 줘야 버릴 수 있는 시대. 공유의 개념이 확산되고 구독과 렌트가 일상인 사회가 다가왔다. 나눠 쓰고 고쳐 쓰고 물려 쓰고 빌려 쓰고 같이 쓰는 세상. 에어비앤비처럼 주택도 공유하는 시대가 아닌가.
내 주위 말끔하게 정리하고 싶다고 마구잡이 갖다 버리는 것도 이기적이다. 현명하게 나누고 다시 쓰고 같이 쓰는 방법을 생각해 보는 것도 좋겠다. 우선 장바구니에 넣어둔 원피스부터 삭제. 어이 거기 오른손 떨지 말고 삭제. 옷과 책 그리고 미련을 못 버리는 그릇도 나눠 쓸 곳을 찾아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