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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밤이 May 19. 2023

겨우 커피 한 잔 마시러 갑니다



10년 전 장 같이 유럽여행을 다녀왔습니다. 영국, 프랑스, 로마, 밀라노, 베네치아를 2주가량 여행했어요. 유럽은 처음이 하고 싶은 일이 몇 가지 있었는데 그중 베네치아에 고 싶은 곳이 있었니다. 나폴레옹이 '유럽에서 가장 아름다운 응접실'이라고 했던 산 마르코 광장, 그곳에 있는 오래된 카페 '플로리안' 고 싶었습니다.



플로리안은 1720년 개업한 세계 최초의 카페입니다. 당시 여성의 출입이 유일하게 가능했던 사교의 장이었다고 . 카사노바가 여자들을 유혹한 장소로 유명한데 그뿐 아니라 이곳은 바이런, 괴테, 바그너 등 당대의 예술가들이 즐겨 찾은 곳이었습니다. 부 장식이 굉장히 아름답다고 하죠. 피를 시키면 은쟁반에 올려 나온다네요. 른 시간 같은 공간선사하 예술적 동감그곳에서 느끼 싶었습니다.



산 마르코 광장에 도착가이드가 그래요. "저기가 그 유명한 플로리안 카페입니다. 커피는 한 잔에 2만 원 정도 합니다. 제가 먹어봤는데 맛은 뭐 별거 없습니다. 악단 연주는 거 보이죠. 카페에 앉으면 연주 감상비 내야 합니다. 일인당 만원쯤 합니다. 하지만 광장에서 구경하건 공짜예요." 가이드는 성악 공부하러 왔다 베네치아에 눌러앉았다고 합니다. 성량이 대단해서 마이크 넓은 광장에 목소리가 쩌렁쩌렁 울리더군요. 가이드의 말이 내 귀에 '엄청 비싸다. 굳이 왜 들어가'들렸습니다. 1인당 3만 원 정도 하는 곤돌라 옵션은 매우 적극적으로 권했는데 말이죠.



그래서일까. 같이 간 사람들 모두 '커피 한 잔에 이만 원 이래' '들어필요까지야'라는 분위기였습니다. 결국 일행 중 아무도 가지 않더라고요. 고 싶은 마음은 굴뚝인데 선뜻 용기가 지 않았습니다. 이태리 말은 물론이거니와 영어도 잘 못하는데 주문하기도 쑥스럽고요. 광장을 어슬렁거리며 카페 야외 테이블을 흘깃거리고 젤라를 하나 먹었던가, 그러는 사이 자유시간이 끝났습니다. 배를 타고 베네치아를 나오는데 얼마나 바보 같던지. 후회했습니다. 리고 깨달았죠. 난 이제껏 이렇게 살았던거구나.



어떤 사람에게 이 이야기는 이해가 안될 수 있습니다. 그게 용기까지  일인가. 구경 잘 하고 와서 커피 한 잔 못마셨다고 저러나. 배부른 소리하고 있네 할지도. 내게 베네치아는 금박 두른 산 마르코 성당도 아름다운 아카데미아 다리도 아니었습니다. 로리안 커피 한 잔이었습니다. 타인을 기준으로 삼을 때 나는 언제나 놓칩니다. 내가 베네치아에서만 랬을까요. 리 여행가서도 이 모양인데 평소엔 얼마나 더 많이 주저했겠습니까. 



물론 이 후회를 당장 되돌릴 있습니다. 마이너스 통장을 쓰든 무단결근을 하든 지금 바로 베네치아로 날아가는 거예요. 좀 더 계획적으로 접근해 볼까요. 여행적금을 들고 휴가 기간을 맞추는 일은 시간이 조금 더 걸리지만 다녀와 후폭풍이 덜한 방법죠. 하지만 어떤 후회는  둘 때 가치를 발휘합니다. 나 이 상황을 다른 에 대입 결정값을 니다. 망설여져? 고민돼? 눈치 보여? 떨려? 부끄러워? 생각해 봐. 이것도 플로리안 커피 아닐까?








그 이후로 아주 천천히 작은 용기를 내고 있습니다. 이 글 그렇습니다. 글을 쓴다는 것은 '아무에게도 하지 않은 이야기를 모두에게 하는 것'까요.

내게는 몇 개의 이물질 같은 기억이 있고 그것은 상처나 부끄러움 분노 같은 감정들을 뒤집어쓴 채 속살을 숨기고 있습니다. '내 삶에서 일어난 일을 끝까지 고개 돌리지 않고 있는 그대로 바라보며' 는 일은 렵습니다. 잘할 수 있다면 더 이상 기억이 적군이 되는 일은 없겠죠. 내게 글쓰기는 아군을 만드는 입니다. '상처로 숨 쉬는 법'을 배우고 추억의 영양제를 고 고통으로 연대할 친구들이요.



오늘은 또 런 생각이 들더. 쓰나 마나 한 글을 쓰겠다고 이렇게 시간을 잡아먹다니. 이 시간에 국을 끓이면 식구들이 맛있게 먹을 텐데. 강아지랑 놀아야 하는데. 침대에 뒹굴거리는 게 더 이득일 텐데. 그러다 밑줄 그 구절을 떠올립니다. '시간을 낭비할 용기'(82쪽) 비란 헛되게 쓰고 헤프게 쓴다는 뜻인데 시간 대비 결과물 보자면 지금 내 글과 시간의 관계가 그렇습니다. '읽을 만한 글을 쓰는 데 실패할 수도 있습니다.'(97쪽) 하지만 '최소한 나라는 최초의 독자에게는 읽히는 글'(98쪽)이다 생각하면 마음이 편해집니다.



 작은 규칙이 모여 루틴이 되고 소박한 성취가 쌓여 자신감이 되듯 자잘한 용기가 습관이 되면 저하고 어려웠던 일들이 언젠가는 당연하게 여겨질 때가 오겠죠. 러다 보면 나를 붙잡고 있는 거추장스러운 것들을 뒤로한 채 플로리안으로 날아가는 날 오지 않을까요. 어느 날 겨우 커피 한 잔 마시러 베네치아에 간다고 하면 그냥 고개 끄덕 주십시오. 이 사람 그동안 용기를 차곡차곡 잘 모았구나. 이제 용기 냈구나 하면서요.





*은유,<<은유의 글쓰기 상담소>>, 김영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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