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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밤이 Jun 22. 2023

열 아홉의 증명



내 인생에는 몇 명의 오빠가 존재한다. 여기서 '오빠'란 나보다 '나이 많은 남자'라는 사전적 정의가 아니다. 잘 생기면 오빠, 멋있으면 오빠 할 때 그 오빠. 내 인생 최초의 오빠는 배우 박상원이다. 1988년 MBC 드라마 '인간시장'을 보고 첫눈에 반했다. 드라마 김홍신의 동명 소설을 원작으로 한 작품으로 인신매매, 창녀촌, 고아원 등 당시 사회를 비판하고 세태를 고발하는 내용이었다.


주인공 장총찬은 기득권의 비리를 폭로하고 약자를 위해 종횡무진 뛰어다니며 사건을 해결한다. 장총찬은 무모하고 건방지만 따뜻 거칠고 반항적이지만 정의로웠다. 어쩜 저렇게 멋있을수가. 나 장총찬이 그리는 서사에 바로 마음을 뺏겼다. 그렇다면 소설 '인간시장' 으로 들어 마땅한데 그때 내겐 장종찬이 박상원이고 박상원이 장총찬이었다.


고등학생 시절 2년 간 기숙사 생활을 했다. 이렇게 말하면 '재밌었겠다'라는 반응이 흔하지만 그렇지 않았다. 주변 읍과 면을 통틀어 유일했던 인문계 고등학교에 남학생은 다섯 반 여학생은 두 반 이었다. 그 중 대학을 갈 수 있는 시골 살림형편과 성적이 들어맞는 경우는 많지 않았다. 학교에서는 2학년부터 3학년까지 대학에 갈만한 애들을 추려 의무적으로 기숙사에 살게 했다.


남학생 기숙사는 동문회 지어준 5층 건물이었다. 붉은 벽돌외벽을 둘러싼 세탁기도 있고 식당도 있다고 했다.

 "그럼 걔들은 밥 해주는 사람이 있어?"

 "남자 애들은 밥  줄 모르니까 그렇겠지."

친구의 말을 들으며 나도 기숙사 들어오기 전엔 밥 해먹을 줄 몰랐단 사실이 떠올랐다.


자 기숙사는 교에서 5분 거리에 있는 디귿자 모양 기와집이었다. 방 열개가 다닥다닥 붙어 있었다. 기숙사라기보다는 월세없는 자취에 가까웠다. 시설이라곤 공용 냉장고 1대와 바깥 화장실 3개, 수도가 있는 커다란 광 하나가 다였다. 밥은 곤로에 직접 해 먹었다. 반찬은 일주일에 한 번 집에서 가져 같이 쓰는 냉장고에 넣었다.


기숙사에선 6시 기상 부저로 잠을 다. 사감 선생님 기분에 따라 어느 날은 길게 두 번, 다른 날엔 짧게 열  울지만 갑작스럽고  건 매일 같았다. 일어나면 밥부터 해야 했다. 두 명이 같이 방을 쓰고 번갈아 밥을 했. 부엌이 따로 없어 세수하고 머리 감는 옆에서 쌀을 씻었다. 밥 당번 아이 한 명씩 모두 열 명 아침 자기 방 쪽마루 아래 쭈그리고 앉아 곤로에 불을 붙였다. 


3이라 하여 어디 힘들기만 하고 수용소같이 열악한 숙사에 산다하여 재밌는 일이 하나도 없기야 하겠냐만은 졸려 눈도 못 뜬 채 성냥불을 그어 곤로를 켜다 보면 그러다 얼굴에 까만 그을음을 코 끝에 묻히다 보도시락 두 개 싸서 오전 7시부터 밤 10시 30분까지 학교에서 다 보면 름이면 장비에 발이 미끄러지고 겨울이면 발자국 모양 그대로 얼어붙은 논두 걷다 보면 열아홉에도 런 생각을 하야 마는 것이다. 왜 사나. 이게 사는 건가. 이렇게 살아야 하나. 내 나이엔 낙엽만 떨어져도 까르르 웃는다던데 낙엽이 우습나. 뭐가 우습나. 왜 우습나.


장총찬을 향한 마음은 이런 사막 같은 삶에 꽃처럼 피어난 팬심이었다. 중학생 때 친구들이 조용필 오빠 전영록 오빠를 외칠 때 누군가의 팬이 된다는  이렇게 행복한 일인 줄 몰랐다. 웃을 일 하나 없는 세상에 오빠만이 웃을 이유가 되 무감해진 마음을 설레게 만들었다. 오빠라면 이렇게 사는 건 사는 게 아니라고 진실을 말 것 같았다. 드라마처럼 홀연히 나타나 교장 선생님께 따져 묻고 남자 기숙사와 여자 기숙사를 바꿔줄지도 모른다 상상했다. 오빠라면 반드시 그라 생각하고나면 왠지 뒷배라도 생긴 듯 든든했다.


드라마가 끝나고 밤 12시 '박상원의 음악편지' 디제이를 시작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무 기뻐 그 자리에서 뛰며 소리 질렀다. 새벽에 라디오 방송을 하는 건 고3 인  위한 것만 같았다. 오빠는 하늘의 별같은 존재 매일 소리를 들을 수 있고 편지를 쓸 수 있다는 사실이 믿어지지 않았다. 내가 쓴 편지가 오빠 손에 닿을 걸 생각하 내가 편지인듯 편지가 나인듯 가슴이 콩닥거렸다.


야간 자율학습 끝고 돌아와 밤 열두 시가 되면 같은 방 쓰는 친구는 잠이 들고 내 몫의 작은 고요와 어둠 속에서 라디오를 들었다. 오빠는 이번엔  라디오의 세계로 나를 이끌었다. 파는 마법을 부리는 암호같았다. 이어폰을 꽂 눈을 감으면 앉은뱅이 책상 두 개가 다인 작은 기숙사 방은 멀어졌다. 나는 종종 다른 우주에 머물렀다. 성냥팔이 소녀의 성냥불처럼 라디오를 듣는 동안만큼은 덜 외롭고 덜 가난했다. 손에 잡히지 않지만 눈에 보이지 않지만 같이 듣고 있 이들과 연결되 기분에 외로움 위로받다.


옆 방 선미는 가수 김범룡을 좋아했다. 기숙사 방문에 기대 '그대 이름은 바람바람바람~'을 부르는 선미 노랫소리를 들으며 수학 문제를 풀었다. 진숙이는 새로 온 국어 선생님을 좋아하 짝꿍 민주는 쉬는 시간마다 '담다디' 이상은의 춤을 따라 췄다. 미영이는 장국영 오빠를 만나기 위해 졸업하면 홍콩에 갈 계획을 세우고 영선이는 허재 오빠 농구경기 중계를 보 야간 자율학습 시간에 도망쳤다. 그것만이 우릴 웃게 한다는 듯 슴뛰게 한다는 듯 그때 우리에겐 각자의 오빠 또는 언니가 있었다.


참고서마다 오빠 사진을 꽂아 고 오빠를 위해 시험 잘 보겠다 맹세하던 일, 시험 잘 보는 게 왜 오빠를 위한 일인지 알 수 없었던 일, 배 깔고 누워 라디오에 편지를 쓰 일, 편지가 라디오에 나오지 않아 속상해 구에게 하소연하며 떡볶이를 먹던 일. 떠올리면 아련해지는 순간은 그런 것들이다. 하루에 열 다섯시간 넘게 머문 교실은 희미한데 배 깔고 엎드려 쓰던 편지지 아래 장판 무늬는 여태 기난다. 그것만이 내게 열 아홉이 있었다는 걸 증명하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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