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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밤이 Oct 20. 2023

나만의 표지를 따라서


올해 초 독서 모임을 하던 중 각자 드림 보드를 만들어 보자는 제안을 들었다. 생각해 보니 십 년 넘게 특별한 소망 없이 1월을 맞고 12월을 보냈단 사실이 떠올랐다. 한때는 매년 드림보드와 비슷한 형식의 소망노트를 만들고 한 해동안 이루고 싶은 목표를 적었다. 도전을 각오하고 결심을 다져도 대부분 작심삼일 작심 삼 개월에서 끝나거나 실망스러운 결과로 마무리됐지 연례행사처럼 다음 해가 되면 다시 기대하며 목록을 기록했다.


 아마 그랬던 평범한 해의 어느 날이었을 것이다. 당시 시크릿이란 책을 읽었는데 흥미로웠다. 시크릿은 2007년 출간되자마자 베스트셀러가 됐는데 위대한 비밀을 통해 인생이 바뀐다는 말에 사람들은 열렬히 반응했다. 위대한 비밀은 끌어당김의 법칙. 인생의 결과는 모두 자신이 우주에서 끌어당긴 결과라 했다. 책에는 비밀을 통해 원하는 배우자, 돈, 직업, 건강을 얻었다는 증언이 가득했다.


누구는 찬사하고 어떤 이는 신흥 사이비 종교니 조심하라 경고했지만 나는 호기심이 일었다. 이렇단 말이지? 그렇다면 실험해 봐야겠군. 방법은 간단했다. 구하고 믿고 받으. 우무엇을 구할까 고민했다. 책에 적힌 조언대로 구체적이어야 하고 수치로 표시할 수 있 아무리 많이 원해도 상관없다 했으니 '일주일 안에 천만 원' 그래, 그게 좋겠다 싶었다. 기간이 길면 지치고 일억양심 없어 보이고 너무 적은 액수는 성공 여부를 확인하기 어려울 거 같았다.


일주일 동안 책에 적힌 대로 실행했다. 틈나는 대로 확언하고 수중에 천만 원이 들어온 거 처럼 믿고 기뻐하고 감사했다. 누가 옆에서 보면 우스웠을 텐데 시각적으로 느껴야 한다기에 천만 원짜리 수표를 프린트하여 옆에 놓고 쳐다봤다. 놀라운 일8일째 벌어졌다. 사무실에 앉아 있는데 핸드폰에 입금 문자가 들어왔다. 적힌 금액은 1120만 원.


"뭐어? 1120만 원이라고?"

아니, 이게 진짜 이뤄졌단 말야.


당연히 입금명은 우주가 아니었다. 천만 원의 진실은 이체 실수였다. 112만 원을 입금해야는데 고객이 실수로 끝에 0을 하나 더 붙인 것이다. 천만 원은 5분가량 내 통장에 머물고 떠났다. 통장을 바라보며 애매했다. 하필 그날 이체 실수가 일어났는 사실 신기 이렇게 되면 소원은 이뤄진 것인가 이뤄지지 않은 것인가.


이런 생각을 해봤다. 20억을 소원했는데 배우자가 바람을 피워 이혼을 하고 위자료로 받은 집이 20억이었다면. 한 달에 3천만 원씩 벌면 좋겠다 했는데 너무 바빠 주말도 없이 일하 건강을 잃게 됐다면 날씬한 몸을 갖고 싶었는데 섭식장애가 생겼다면 소원은 이뤄진 것인가 이뤄지지 않은 것인가.


파울로 코엘료의 연금술사에 이런 구절이 나온다. '자네가 무언가를 간절히 원할 때 온 우주는 자네의 소망이 실현되도록 도와준다네.' 주인공 산티아고는 꿈에서 본 보물을 찾아 떠난다. 도둑을 만나 갖고 있는 것을 다 빼앗기고 전쟁을 겪고 어렵게 사막을 건넌다. 좋은 일도 있고 힘든 일도 있었지만 끝까지 포기하지 않는다. 우여곡절 끝에 보물이 있다고 믿은 곳에 도착했지만 보물은 없었다.


산티아고는 실망했을까? 산티아고는 길 위에서 자신이 이미 보물보다 귀한 지혜와 사랑을 얻었다는 걸 알았다. 이제 그에게 보물은 더 이상 중요하지 않았다. 고향에 돌아왔을 때 그는 떠날 때와 달라져 있었다. 그러자 보물이 그의 앞에 모습을 드러냈다. 보물은 그가 떠났던 곳에 숨겨져 있었다. 산티아고가 자격이 되었을 때 보물은 더 이상 지 않았다.


천만 원 사건 이후 나는 목표보다 과정이 중요하다는 오랜 관용구의 의미를 조금 더 깨닫게 됐다. 내가 억지로 끌어당기는 것이 아니라 나를 끌어당기는 표식에 눈 뜨길 바랐다. 세상의 소망과 나의 소망을 혼동하지 말고 나만의 표지를 따라가고 싶어졌. 과정에서 배우고 성장하며 나아지기를 갈구할 때 보물은 스스로 모습을 드러낼 것이다. 어쩌면 이것이 진정한 우주의 비밀일지 모른다.


"그대가 사랑하는 것이 그대를 끌어당길 것이다. 그것을 말없이 따라가라. 그대는 길을 잃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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