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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밤이 Oct 24. 2023

지폐 오리는 아이


엄마가 스물셋에 은 나는 사 개월이 지나도 뒤집질 못했다. 무슨 병이 있는 건 아닐까 심란했지만 동네 아줌마들은 살 올라 팔다리 통통 나를 보며 '애가 좀 늦되네.' 할 뿐이었다. 동생 넷 중 셋을 업어 키웠지만 이렇게 늦 애는 없는데, 엄마 걱정은 사그라들지 않았다. 엄마는 누워서 제 손 빨며 노는 아기를 바라보다  깨고 나오려는 새끼를 위해 밖에서 살짝 금 내 어미 새처럼 뒤집기를 조금만 도와주 싶었다. 손가락 끝을 방바닥과 아기 등 사이에 찔러 넣어 한쪽 몸을 살짝 들추는 순간 엄마 맘도 모르고 아기는 꼬집히기라도 한 듯 자지러지게 울다.

그러다 어느 날 뒤집지도 않고 앉았다. 과정을 생략니 앉는 건 또래보다 빨랐다. 늦던 애가 빠른 애로 등극한 순간 엄마는 어제까지 하던 염려를 잊고 앉기 월반한 딸이 기특했다. 아직 돌 안된 아기 계획이라도 있었던 듯 이럴려고 뒤집지 않았나 보다 자랑했다. 앉았을 때 들은 칭찬이 신났던지 애기가 이번엔 기질 않았다.  개월이 지나도록 앉아서만 를 보며 동네 사람들은  '애가 늦되네.' 엄마는 그 말이 싫었다. 기는 연습을 시켜야겠다 작정하고 아기 앞을 지날 때면 네 발로 엎드려 기어 다녔다. 속도 모르고 아기는 짝짜꿍 하며 천 기저귀 찬 뚱뚱한 엉덩이를 들썩이고 까르르 웃기만 했다.

그러다 애기는 그러니까 나는 어느 날 슬며시 잡고 일어나 바로 걸었다. 한 번 더 월반한 나를 동네 사람들은 '거 참 신기하네.' 고 말하고 엄마는 돌 전에 걷는 날 보며 자신이 낳은 딸이 어딘가 특이하다 생각했다. 그래서 조기교육을 결심했다. 젖을 빨리 떼고 기저귀를 일찍 벗 한글을 읽어주고 숫자를 보여줬다. 엄마는 내게 가위질도 가르쳤다. 어디선가 가위질을 잘하면 머리가 좋진단 말을 들은 것이다. 엄마에게 조기교육이란 혼자 먹고 싸고 사는데 필요한 도구를 사용할 수 있는 능력이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엄마는 내가 가위질에 소질이 있다는 걸 알게 됐다. 밖에 나가 노는 것보다 에서 가위질하는 걸 더 좋아한다는 사실도 알았다. 인형이 그려진 종이 한 장과 가위를 주면 오래도록 엄마를 찾지 않고 혼자 놀았다. 날도 살림하 같 사글세 사는 옆집 아줌마 수다 떨 한참만방에 들어왔을 것이다. 구석에 얌전히 앉아 심각한 표정으로 무언갈 하고 있는 나를 발견했다. 종이인형을 오리고 있는 줄 알았는데 내 손을 보고 깜짝 놀랐다. 오백 원짜리 지폐를 들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때 내가 한 말은 "여기 할아비 있어."였다 한다. 맞다. 원에는 이순신 장군이 계셨다.


"야물딱지게도 오려 놨드라. 너무 잘 오려서 할 말이 없더라."


엄마가 준 종이인형을 다 오린 나는 서랍을 열어 오백 원 지폐 한 장을 찾았다. 거기에는 할아버지 한 분 계셨다. 종이인형이라 생각하고 심혈을 기울여 이순신 장군을 오다. 가 오린 이순신 장군은 원래 계시던 자리로 돌아가셨다. 엄마가 조심조심 테이프를 잘라 붙였다. 나의 현란한 가위질과 엄마의 꼼꼼한 땜빵질이 세상에 하나뿐인 오백 원짜리 지폐를 탄생시켰다. 이길이 보전했다면 좋았을텐데 엄마는 그 길로 나를 데리고 가게에 갔다. 주인아저씨에게 보이며 내 행적을 고발하고 여차저차하여 모양이  꼴이 됐는데 '래도 쓸 수 있죠?'라고 물었다.

그 일이 내 인생 최초의 돈 사고였다. 모두 가난해서 가난한 줄 모르던 시절을 지나 중학생 때 친구 집에 있던 이층침대를 보고 눈이 휘둥그레지던 그날 이래 나는 오랫동안 가난을 자각하며 살았다.  스스로 돈을 벌 수 있게 되면 나아질 줄 알았는데 돈은 늘 얼마만큼 부족하고  낯가렸다. 벌기 시작하며 오히려 돈 사고는 더 많이 일어났다. 지폐오렸던 일만큼 기발하지도 재밌지도 아름답지도 않았다.


 오리기 종이 한 장은 이십 원이고 오백 원이면 같은 것을 스물다섯 장이나 살 수 있다는 셈 따위는 하지 못해야 가능했던 일. 뭘 모르던 시절의 이야기가 그리운 왠지 거기 어디쯤 반짝거리 느낌 때문이다. 어쩌면 엄마가 있어서인지도 모르겠다. 지난 시간은 오래되어 떠올리면 꿈 같을 때도 있는데 내가 어 사람이었고 어떤 사람이고 었는떠올언제나 먼 시간의 나로 돌아간다. 잊힌 게 무엇인지 확하게 모르겠지만 기억해내는 위만으로 발견했다는 착각이 든다. 그 시절에만 존재하는 순수함 때문일까. 아마도 그렇지 않을까 짐작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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