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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밤이 Jun 01. 2023

수학여행

박준 <천마총 놀이터>




그때. 수학여행에 못 가고 벤치에서 몸을 김밥처럼 말아 넣는 놀이를 하고 있을 때 친구들은 첨성대를 돌아 천마총으로 향하고 있었을 겁니다 뒷산에서부터 저녁이 미끄러져 내려왔습니다 철봉에 거꾸로 매달리는 놀이, 혀가 마른 입술을 아리게 만나는 놀이, 시소가 떠난 무게를 기억하는 간단한 놀이, 누가 부르는 것 같아 자꾸 뒤돌아보는 놀이 들을 모래에 섞어 신발에 넣었습니다 네가 돌아오면 '경주는 많이 갔다 와봐서. 바다로 가족여을 다녀왔어'라고 신발을 털며 말하고 싶었지만



ㅡ박 준, <천마총놀이터> 중
시집 <당신의 이름을 지어다가 며칠은 먹었다>






전학어.

등학교 1학년 가을이었어. 

구미에서 버스를 타고 한 더 들어가시골이었어. 


달쯤 지났수학여행을 간대. 

경주에서 하루 설악산에서 하루, 도 들린어. 

88 올림픽 운동장 구경 .


안 간다고 .

담임 선생님르셨어.

왜 안 가는데 라고 물으셨어.


피부가 하얗고 볼이  영어 선생님

이유는 모르지만 전치사에 집착했어. 

for 뭐뭐를 위하여 in 뭐뭐 안에 on 뭐뭐 위에

전치사 나오면 빨간 분필로 동그라미를 그리고 파란 분필로 밑줄을 그었어. ​


교무실에 가니 뭔가 큰 잘못을 한 기분이 들.

부름 온 같은 반 들을까 봐 더듬거렸어.

올림픽 운동장은 구경했요. 설악산도 가족여행으로 다녀왔어요. 

하나는 사실이고 하나는 거짓말이었지.


진짜 이유를 말할 순 없었어.

누구나 속마음을 다 보이며 살진 않잖아. 

전학한 지 한 달도 안 됐는데 친구도 없는데 

아직 사투리도  


난 아직 내가 서울 애 같은데 서울로 수학여행을 간다는 어쩐지 문법 틀린 문장 같았어. 

전치사가 빠진 문장처럼 말이야.


리고 6만 원. 그래 학여행비.
서울에 뭐 볼 게 있냐 안 간다고 하니까 엄마가 왠지 안도하는 표정이었어.
그래도 가야지 했지만 진심이 아닌 거 같았어.


서운지 않았어.

엄마는 그럴 수 있어.
우리 엄만 수학여행에 대한 설렘 몰랐을 거야.


새 학년이 되면 학교에선 언제나 가정환경 조사를 했어.

궁금해하는지 모를 것들을 적라 했.

아빠 엄마 학력 어디까진지 직업 뭔지 

사는 집이 우리 집인지 남의 집인지 전센지 사글센지 쓰라고 했어.


엄마는 제나 고졸이라 적 고해성사하듯 말했어.

야간 고등학교를 다녔다고 

졸업장은 없지만 다닌 것은 하다고.


엄마가 다 야학엔 수학여행이 없었을 거야.

낮엔 방직 공장 아가씨 밤엔 학생이었던 우리 엄마는

지금은 구미 공장에서 밥솥 부품을 끼우는 엄마는

그래서 내 맘 알 수 없었을 거야.


선생님이 다시 르셨어.

우리 반에서 너만 빠 보기도 안 좋
나는 또다시 잘못한 아이가 되어 전치사를 생각했어.
for 뭐뭐를 위하여 from 뭐뭐로부터


집안형편이 안 좋은 거 같은데,
수학여행비 교장선생님께 말씀드렸어.

그러니까 가는 거야. 알았지?


정말 가고 싶지 않어.

날 좀 내버려 두면 좋겠는데

그는 왜 교장선생님께 내 얘길 했을까.
했던 말 중에 어떤 이 없다는 말로 들린 걸까.
설악산에 다녀왔단 거짓말이 들난 걸까


기 싫어 리치고 싶은 눈물이 자꾸 났어.

눈물 때문에 내 말은 오해됐어.

그때  깨달았어.

가난이 왜 나쁜지.


가난은 더듬으며 변명하게 하고

거절 권리를 빼앗.

원하지 않은 친절을 받게 만들.

눈물은 오해되고

내 말을 자꾸 거짓말이라고 해.


알아

는 착한 사람이야. 친절한 사람야. 

좋은 선생님이.


하지만 그는 내가 숨기고 싶은 비밀을 세상에 알어.

확인받고 싶지 않은 사실을 확인시켰어.

내 눈물을 오해했어.

나는 숨은 곳이 발각 잡힌 술어.

밑줄 친 전치사였어.



엄마한테 학교에서 수학여행비를 줬다고 했어.
시험을 잘 봐 장학금으로 받았다 .
엄마는 정말 기뻐했어.

내 말을 믿었어.


수학여행 가는 날 용돈으로 칠천 원을 어.
감색 나일론 두 칸 지갑이 헐거웠어.
오천 원을 천 원짜리로 바꾸면 좀 나을 텐데 하며

똑딱이 단추를 여러 번 떼었다 붙어.


설악산에 갔을 때 이천 원으로 감자떡을 샀어.
비닐에 둘둘 말아 가방에 넣었어.

자떡과 오 천 원을 꺼냈는데 엄마가 울었어.


기념품을 사고 싶었지만 맘에 드는 게 없더라.

아무렇지 않게 '신발을 털며 말하고 싶었지만'

눈물이 났어.

왠지 이번엔 엄마에게 거짓말이 들통난 거 같았어.



수학여행을 떠올리면 자떡이 떠올라.

88 올림픽 운동장도 설악산도 기억나 않는데

첨성대를 돌아 분명히 천마총에 갔을 텐데

이상하게 감자떡만 기억나.


어쩌면 나는 감자떡을 사러 수학여행을 간 건지 몰라.

그의 전치사를 감자떡과 바꿔 먹은 걸까.
무렇지 않게 '신발을 털며 말하고 싶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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