웹소설 제목은 왜 이리 설명충인 걸까?
대망의 웹소설 아카데미 첫 출석 날. 나는 1시간 거리의 대중교통을 타고 마침내 면접을 봤던 그 건물에 입성했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해당 층수에 도착했는데 웬걸, 주변이 마치 전시회 같았다. 지난번 면접 때도 살짝 봤지만 벽면 곳곳에 성공한 웹소설 작품들의 표지가 큼지막한 액자로 걸려있는 것이다. 때깔 좋은 웹소설 표지 그림은 마치 영화 포스터와도 같아 내 작품도 저기 걸렸으면 하는 마음이 절로 들었다.
표지 가운데에는 웹소설의 제목 타이틀이 휘황찬란하게 자리 잡고 있었다. 그런데 모두가 문장형 제목이었다. 벽면에 걸려있는 작품들의 모든 제목이 약속이라도 한 듯 10글자는 기본으로 넘었다. 마치 표어 문구 같기도 했다. 제목만 봐도 내용을 유추할 수 있으니 어떻게 보면 친절한 것 같기도, 어떻게 보면 구구절절 설명충인 것 같기도 했다. 나도 처음엔 웹소설 특유의 문장형 제목을 보고 거부감이 들었다. 하지만 성공한 작품들이 저런 식의 제목을 짓는다는 건 그만한 이유가 있을 것이다. 상업적인 성공에는 다 이유가 있는 법이니까.
천재재벌 OO가 힘을 숨김
나 혼자 OO를 너무 잘함
내 재산 OOOOOOOOO원.
최근까지도 나는 일말의 자존심 같은 것이 남아 있어 저런 식의 문장형 제목을 꺼려했었다. '데미안' 같은 묵직한 한 단어로 만들어진 제목이 멋있어 보이는 것은 작가들의 공통점이 아닐까. 하지만 웹소설에서 몇 번의 쓴 실패를 맛본 나는 생각을 고쳐먹었다. 자세를 아예 고쳐먹은 것이다. 100원짜리 웹소설을 팔아 입에 풀칠이라도 하려면 나도 설명충이 되어야겠다고. 그렇게 돈 앞에서 내 작가적 자존심은 100원짜리 동전만 해졌다. 그런데 뭐, 돈만 벌 수 있다면야. 나는 돈이 좋다 = I don't like (=사실은 문장형 제목이 싫어요).
나는 웹소설 아카데미에 다니며 새 작품을 구상하면서 제목 또한 틈틈이 고민했다. 사실, 제목 짓기가 가장 어려웠다. 그래서 소위 잘나가는 작품들을 분석하며 나름대로 공부를 틈틈이 해봤다.
웹소설 제목은 왜 이리 설명충일까?
웹소설 작가들이라고 멋드러진 제목들, 가령 '앵무새 죽이기'나 '1984' 같은 제목을 하기 싫은 것은 아닐 것이다. 하지만 웹소설은 철저히 상업주의다. 무조건 팔려야 한다. 그러기엔 이목을 끌어야 하는데 그런 점에서는 문장형 제목만큼 강력한 것도 없는 것이다. 이 작품 이만큼 재미있어요! 라고 제목에서부터 독자들에게 호소해야 하는 것이다. 간단히 비유하자면 웹소설 제목은 다음과 같았다.
웹소설 제목은 소개팅 사진이다.
주선자로부터 소개팅 상대의 가치관이나 인품 따위를 들어봐야 기별이 안 간다. 오히려 강력한 사진 한 장이 효과적이다. 나는 '비즈니스 미팅'을 하는 것이 아니라 '소개팅'을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사진 한 장은 '이성적인 매력'의 큰 정보를 알려주니까. 웹소설 또한 마찬가지다. 아무리 작품의 세계관이나 주제가 방대하고 깊더라도 '재미'가 없어 보이면 읽고 싶지가 않다. 그 재미를 가늠할 수 있으면서 독자들에게 가장 먼저 보이는 것이 바로 제목인 것이다. 즉, 문장형 제목은 '저는 이렇게 생겨먹었습니다!'라고 마치 사진첩에서 가장 잘 나온(보정도 조금 들어간) 사진을 소개팅 상대에게 보내는 것과 같다고 볼 수 있다.
한국 문학 작품도 웹소설 식으로 한 번 지어보았다.
운수 좋은 날 -> FFF급 인력거꾼이 오늘따라 운수대통
흥부전 -> 형수님이 주걱을 숨김
구운몽 -> 여덟 선녀가 양씨 승려에게 집착함
둘 중에 하나를 클릭할 수 있다면 오른쪽에 더 흥미가 가지 않겠는가?
일단 독자들이 클릭을 해야 먹고 살 수 있다. 아무리 멋진 내용을 품고 있어도 제목이 별로면 다른 작품들 속에 묻혀버리는 것이다. 4등신 비율로 나온 (등신 같은) 소개팅 사진을 보내놓고 불평하지 말자. 잘 나온 사진은 재밌어 보이는(기대되는) 웹소설 제목과도 같다. 일단 상대와 만나기라도 해야, 그다음에 배꼽 빠지는 꿀잼썰을 풀건, 군대에서 축구한 얘기를 늘어뜨리건 할 것 아닌가. 내면의 아름다움을 보여주기도 전에 외면 때문에 까인다면 너무도 슬픈 일이다. 그래서 더러워서라도 꾸민다. 참 더러운 세상이지만 뭐 어쩌겠는가. 이처럼 웹소설 작가들도 이를 꽉 물고 문장형 제목을 짓는 것이 아닐까. 독자에게 선택받기 위해서 말이다.
나도 더러운 세상에 적응하기 위해 웹소설 제목에 대해 공부한다. 가끔은 이렇게까지 해야 하나 싶기도 하지만, 가끔은 작가도 시류를 따라야 마음이 편한 것도 같다. 그렇게 예술가의 혼을 한 수 접고 오늘도 상업작가로서 꿋꿋이 먹고살고자 발버둥 친다. 본업(방송작가)을 잠시 접고 웹소설을 쓰려니 슬슬 마음 한 켠이 불안해지는 건 사실이다. 언제 웹소설로 벌어먹을 수 있을까, 언제쯤 유료 연재를 할 수 있을까. 다음 달 월급이 없다는 것은 참 무서우면서 글을 쓰게 하는 원동력이 되는 것 같다.
마지막으로 내 인생을 웹소설 식으로 지어보고자 했다. 그런데.
열심히 살았는데 남은 건 없음
나 혼자 하루에 10000보 걸음
이런 울적하거나 보잘것없는 제목만 나올 뿐, 도저히 재밌는 것이 떠오르지 않아 여기서 이만 마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