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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현민 Oct 21. 2023

매일 5,000자를 쓰라고요?

생존하려면 루틴이 필요해

웹소설 업계에서 맛본 쓰라린 패배감을 잊고 이제 슬슬 새로운 작품을 기획해야 했다. 시간은 많지 않았다. 기획 기간이 늘어날수록 내가 돈을 버는 시간은 줄어들었으니까. 웹소설을 전업으로 해보기로 마음 먹었지만 다음 달 들어오는 월급이 없다는 것은 크나큰 압박감이자 강제적인 동기부여가 되었다. 


아무튼 장르를 정해야 했다. 웹소설에서는 현대 판타지, 로맨스 판타지, 무협 등으로 장르라 나뉘는데 이것들의 하위 장르가 또 엄청나게 많다. 나는 현대적인 배경에 판타지가 가미된 현대 판타지를 선택했다. 주인공 또한 고민 끝에 내가 그나마 잘 아는 방송국 이야기, 그중에서도 작가나 피디의 이야기를 해보기로 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수요층이 꾸준히 있는 소재였다는 것이다. 흔히 '작가물'이나 '피디물'이라고도 불렸다. 


아카데미를 다니면서 내가 기획한 것을 발전('디벨롭'한다고 말한다)시키고 점차 윤곽이 잡히게 되었다. 내가 만든 세계관을 확장시키고 확정하는 특유의 재미는 작가가 아니라면 모를 것이다. 더군다나 그걸로 돈까지 벌 수 있다니(정확하게는 그럴 가능성이 있다니), 가끔은 내가 어느 정도 복을 받은 사람 같기도 하다. 


그런데 항상 부딪히는 문제점이 있다. 기획할 때는 재밌는데, 막상 쓸 때가 되면 고역이 된다는 것이다. 참 간사한 마음이다. 무한한 상상의 나래를 펼칠 때와, 그중 쓸만한 것을 골라내고, 쓰고, 퇴고하고, 다시 수정하는 지옥의 단계는 차원이 다르다. 역시나 이 또한 작가들의 공통점일 것이다. 컴퓨터 앞에 앉아 흰 종이를 마주할 때는 도망치고 싶어 미칠 지경이니까. 만약 글 쓰는 과정 또한 즐거운 작가가 있다면, 타고난 천재이거나 타고난 변태일 것이다.


더군다나 웹소설을 그 양에 있어서 차원이 달랐다. 분량에 있어선 이쪽 시장에서의 불문율이 있었다.


매일 5,000자를 쓰라고요?


그렇다. 5,000자를, 그것도 매일 써내야 한다. 주 5일 근무제가 시행되는 요즘, 심지어 주 4일 이야기까지 거론되고 있는 마당에 '매일'이라는 시간 단위는 엄청난 압박감을 준다. 휴일이 없다는 것. 그것은 사람에게 있어 엄청난 부담감과 심지어는 핍박감까지 준다. 마음에 여유가 없어지는 것이다. 나 또한 두세 번의 웹소설 공모전에 참가하면서 매일 5,000자를 연재했던 적이 있었다. 사는 게 사는 게 아니었다. 허겁지겁 쫓기고, 이게 글인지 곤죽인지 자괴감이 들고, 또 '다른 사람은 어떻게 이걸 매일 하지?' 생각이 들었다. 


매일 5,000자라니.

이건 체벌이었다.


누군가에게 체벌을 당하는 기분. '글채찍'으로 매일 맞는 기분이었다. 내가 선택한 길인데 목구멍에서 기침할 때마다 활자가 튀어나올 것 같았다. 그런데 이 짓을 (살아남은) 웹소설 작가들은 전부 해내고 있다는 것이다. 존경스러운 사람들. 그들은 순례자이자 고행자 같았다. 부침 없이 꾸준히, 정해진 양만큼 매일매일 걷는 그들처럼 말이다. 가히 초인이 아닐까 싶다.


유일하게 희망으로 삼을 것은, 웹소설은 유료화가 되면 연재 주기도 변한다는 것이다. 유료화 작가들은 보통 주5일을 한다고 하는데, 그나마 사람처럼 살 수 있을 법하다. 


즉, 사람처럼 살고 싶으면 얼른 유료화를 해야 했다. 유료화를 하려면? 조회수가 잘 나와야 한다. 만약 조회수가 안 나오면? 사람들이 봐줄 때까지 계속해서 매일매일 걷거나(5,000자를 써재끼거나), 아니면 갈아엎고 새로운 작품을 기획해야 한다. 이 과정을 무한 반복해야 웹소설 작가로서 살아남을 수 있는 것이다. 세상 참 어떤 일이든 쉬운 일이 없다. 어느 분야를 막론하고 밖에선 부러워해도 막상 안으로 들어오면 또 다른 고충이 펼쳐진다. 


결론은 '루틴'을 만들어야 살아남을 수 있다는 것이다. 매일 5,000자를 쓰려면 인간이 아닌 반기계가 되어야 한다. 그러려면 정해진 시간이 구상하고, 글 쓰고, 휴식하는 루틴이 가히 필수적이라고 생각한다. 나이가 들수록 습관의 힘이 무섭다고 느껴진다. '의지'라는 한없이 약한 무기를 갖고 있는 인간이 강철과 같아지기 위해서는 루틴 말곤 답이 없었다. 아마 성공한 웹소설 작가들은 저마다의 루틴을 갖고 있을 것이다. 웹소설계 뿐만 아니라 루틴으로 유명한 무라카미 하루키도 매일 새벽 5시에 일어나고, 매일 10km 달리기를 한다고 하지 않는가.


참 다행이다. 무라카미 하루키가 웹소설을 안 써서.


(*참고로 이 글은 2,000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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