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이의 집이 아닌 동전의 집
다들 그런 생각해 보지 않았는가? 전 세계 사람들이 나에게 100원만 준다면 얼마나 좋을까라고. 주머니 속에 굴러다니는 100원쯤이야 가벼운 마음으로 줄 수 있을 것이다. 그들도 큰 손해 안 보면서 나는 어마어마한 부가 생긴다. 100원X60억 명을 계산해 보면 자그마치 6,000억 원이다. 왜 당장 이런 일이 안 일어나는 건가. 이른바 전 세계 사람들의 계모임인 것이다. 물론 실제로 이런 제도가 생긴다 해도 나는 참여하지 않을 것이다. 딱 봐도 계주가 곗돈 가지고 튈 것 같다.
물론 위 얘기는 허황된 상상에 불과하지만, 웹소설 업계를 처음 내디딜 당시 나는 유료 연재 중인 작품을 보며 이와 비슷한 생각을 품었다. 잘 팔린 작품을 보며 얼마를 벌었나 대충 가늠해 보는 것이다. 예를 들면, 이 작품은 한 회당 5,000명이 결제해서 봤네? 그럼 어디보자, 100원X5,000명이면... 무려 50만 원이잖아? 그럼 매일 연재하면 한 달에 30편이니까...!
한 달에 1,500만 원?! 미친, 개부럽네.
아까 말한 지구촌 계모임 같은 허황된 상상을 현실로 이루어 낸 사람들 같았다. 100원짜리를 차곡차곡 모아 몇천만 원, 몇억을 버는 웹소설 작가들! 60억 인구가 아니라 우리나라 사람 만 명이 결제해서 본다면 하루에 100만 원을 벌 수 있는 것이었다. 이 얼마나 매력적인 직업인가!
불과 몇 년 전 나는 웹소설이 편당 100원이라길래 '이걸 누가 봐?'라고 생각했다. 그런 내가 지금은 '웹소설 광신도'가 되었다. '나는 이걸로 내 인생을 바꿀 것이다'하는 마음. 그러니까 달리 말하면 '100원에 목숨 건 사람'이 된 것이다. 쓰고 보니 어감이 썩 좋지는 않다.
100원을 벌 마음만 있는 것이 아니라 쓸 마음도 많아졌다. 다른 작품의 몇백 편을 한 번에 일괄 결제하는 것이다. 보통 나는 무료 대여권으로 '대여' 같은 건 하지 않고 편당 100원을 내고 모조리 '소유'해 버린다. 언제든 다시 볼 수 있게 온전히 내 걸로 소유하는 것이 좋으니까. 일괄 구매를 할 때면 드라마 속에서 나오는 명품관에서 회장님이 '이쪽부터 저쪽까지 다 주세요'를 하는 기분이 든다. 100원짜리 플렉스인 것이다. (몇백 편 구매하면 기껏해야 몇만 원 나온다)
그런데 사실, 독자들은 편당 100원을 내지만 작가에게 그 100원이 온전히 돌아가지는 않는다. 왜냐하면 '플랫폼'(카카오나 네이버 시리즈, 조아라 같은 곳)과 '매니지먼트'라는 것이 있기 때문이다. 나도 아직은 웹소설 신생아라 복잡한 정산 개념을 알지는 못하지만 대략 간단히 설명하면 다음과 같다. 웹소설 작가는 혼자 유료화를 할 수 없고, '매니지먼트'라 불리는, 즉 출판사와 계약을 맺어야 한다. 그러면 작가가 쓴 글을 출판사가 플랫폼에 넣는 형식으로 진행되는데, 이렇게 유료 연재가 시작되면 앞서 말한 '매니지먼트' 그리고 '플랫폼'과 수익을 나눠야 한다.
그래서 예를 들면 다음과 같다.
독자가 100원 구매.
= 플랫폼 수수료 30%를 뗌. (플랫폼마다 정산 비율이 다르다)
= 70원 남음.
= 매니지먼트와 계약한 정산 비율대로 또 나눔. (8:2, 7:3 등 또 제각기 다름)
= (7:3이면) 49원 작가에게 돌아감.
그렇다. 100원짜리 소설가가 아니라 49원짜리 소설가인 것이다! 나의 작고 소중한 100원을 여기저기 떼주고 나면 49원이 손에 들어온다. '결제수수료' 같은 개념도 있다지만 복잡해서 빼겠다. 사실 나도 잘 모른다. 어쨌든 어느새 100원에서 49원, 그러니까 절반으로 훅 깎여버렸다. 결국 만 명이 결제해서 본다면 100만 원이 아니라 49만 원이 작가에게 돌아가는 셈이었다.
Q) 49원짜리 소설로 집을 사려면?
문득 구체적으로 궁금해졌다. 내 몸 하나 간수할, 내 집 마련의 꿈을 이루려면 100원짜리, 아니 49원짜리 웹소설을 얼마나 팔아야 할까? 그래서 단순 계산을 해봤다. (플랫폼의 각종 이벤트 등의 변수는 제외했다. 재미로 보는 단순 사짜 계산법이니 참고하시길)
편당 49원, 총 250화의 웹소설로 생각해 보면.
49X250X20,000명
= 245,000,000원
거창한 수식도 아니고 초등학생 수준의 계산법인데 뭘 박스까지 쳤을까. 그러니까 총 2만 명의 독자가 내 소설의 모든 회차에 유료 결제를 해준다면 2억 4,500만 원의 돈이 수중에 들어온다. 이 정도면 파주의 아파트 정도는 매수할 수 있겠다(물론 대출 왕창 껴서). 2만 명에게 100원만 받아내면 된다. 2만 명에게...
불현듯 2만 명이라는 숫자 앞에 내가 한없이 작아졌다. 난 아직 고작 1명한테도 소설을 팔아본 적이 없는 웹소설 연습생이었으니까. 냉정한 현실로 돌아왔다. 집은 무슨, 웹소설로 탕후루 하나라도 사 먹어봤으면 좋겠다. 이제 가봐야겠다. 미루고 미룬 웹소설을 써야 하니까. 담당 피디가 3화까지 제출하라고 했는데, 기한을 못 맞췄다. 방학 숙제 검사 맡는 초등학생이 된 기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