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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현민 Oct 22. 2023

어느 날 나에게 작가병이 찾아왔다

나는 작가인가, 글 파는 상인인가

웹소설은 철저한 상업성을 띠었다. 그것은 내가 웹소설에 뛰어들기도 한 이유였지만, 문제가 되기도 했다. 잘 팔리는 작품을 모두가 우르르 따라가는 경향이 그것이었다. 웹소설에서는 트렌드 하나가 형성되면 그와 비슷한 작품들이 뒤따라 쏟아진다. 어느 날, 유독 조회수가 탄탄하고 독자들이 열광하는 작품이 나온다? 


저런 게 먹히는구나! 와아아, 벤치마킹하자! (우르르...)


웃긴 건, 그것이 효과가 있다는 것이다. 비슷한 설정, 비슷한 내용, 심지어 제목까지 비슷한 느낌들. 물론 표절은 아니었고 일종의 클리셰를 답습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것은, 독자들이 익숙한 맛을 좋아한다는 것에 입각한, 철저한 비즈니스적인 작가들의 행동이었다. 그걸 뒤따르면 어느 정도의 조회수가 보장됐으니까.  


처음엔 나도 저런 현상이 당최 이해가 가질 않았다. '작가란 사람들이 자존심도 없나? 남의 걸 따라하게.'라는 생각이었다. 그런데 가만 보면 참 어려운 문제였다. 당연히 표절은 문제가 되지만, 같은 장르의 클리셰를 따르다 보면 나오는 '장르적 유사성'까지 문제 삼을 순 없었다. 클리셰란 말 그대로 여러 시간을 거쳐 사람들이 좋아했다는 사실이 입증된 하나의 성공적인 '상업 코드'였으니까. 그래서 나는 닮은 꼴이 넘치는 작금의 웹소설 계를 보며 '그럴 수 있겠다'라는 생각으로 바뀌게 되었다.


그런 나에게도 고민이 찾아왔다. 새로운 작품을 기획하던 중 근심이 생기기 시작한 것이다. 내 작품 속 세계에 너무 빠져든 게 아닌가 싶었다. 이 설정이 나만 사랑하는 요소인 거면 어떡하지? 와 같은 걱정들. 작품은 결국 읽히기 위해 만들어지는 것이라, 작가가 또 자기만의 세계에 갇혀서는 안 되는 일이었다. 


그런데 지금 나에게 찾아온 것이다. 세상에서 가장 무섭다는 '작가병'이 말이다. 약도 없다는 작가병은 다음과 같았다. 


'내가 만든 세계관은 유일하고 존귀하며 천재적이고 위대해!' 


이런 사람이 있긴 할까? 사실 이 정도까진 아니고 '오, 못 봤던 건데?'라고 스스로 생각이 들면서 그게 점점 굳어지고, 절대 바꿀 수 없다는 아집이 생기기 시작하면 그게 작가병 초기인 것 같다. 점점 귀가 닫히는 것이다.


나는 두 가지 선택지 중 하나를 택해야 했다.


독창적인 나만의 힙한 작품 VS 욕심을 약간 버리고 잘 팔리는 요소 넣기


무릎을 꿇을 것이냐, 작가로서의 자존심을 지킬 것이냐. 얼핏 보면 돈을 위해 뛰어들었으니 후자를 택하는 것이 맞다. 그런데 꼴에 작가라고, 선뜻 그 선택에 손이 쉽게 가질 않는 것이었다. 작가라면 세상에서 '유일한 것'을 만들고 싶은 욕심이 다들 있지 않을까. 작가인데 남들과 비슷해지려는 사람이 어디 있으랴.


2주라는 꽤 긴 고민 끝에, 나는 작가병을 자가치유하기로 마음먹었다.


잘 팔리는 요소를 넣기로 결정한 것이었다. 그렇다고 흔해 빠진 작품이 된 것은 아니었다. 최소한의, 아니 어느 정도의 내 개성이 들어간 요소들은 유지했으니까. 정반합의 원리로 적절하게 타협본 것이었다. 나는 이 결과가 꽤 마음에 든다. 왜냐하면 가장 중요한 작품의 '재미'는 한층 끌어올렸기 때문이었다. 대중적으로 재미있으면서 약간의 개성까지 있다는 것. 그것이 상업작품에서 추구할 수 있는 최고의 경지가 아닐까. 


결국 나는 작가로서 무릎을 꿇은 것이 아니라 한층 성장한 것이다. 나는 그렇게 믿고 싶다. 웹소설 작가로, 즉 상업 작가로서 자리 잡기 위해. 독자들에게 읽히는 글을 쓰기 위해.


달리 말하면...


나는 이 첫 작품으로 1억 원 이상을 벌 것이다. 


그렇다. 그래서 작가병을 자가 치유할 수 있었다. 치료제는 '금융치료'였다. 돈만 벌 수 있다면야, 엄청 독특한 세계관? 그런 건 다음에 하면 된다. 기회는 앞으로 많다. 단, 돈 좀 벌고 자리 잡고 난 뒤에 말이다. 


그런데 어째, 벌써 나는 상업작가가 아니라 '돈에 미친 작가'가 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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