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 나에게 데드라인병이 찾아왔다
글을 쓰고 싶어 작가가 되었다. 그런데 지금, 죽어도 글을 쓰기가 싫다. 직업을 잘못 택한 걸까? 아니다. 작가라면 대부분 미룰 때까지 미룬다. 좀 이따 하면 돼, 아직 해가 안 졌어, 저녁은 아직 낮이지, 밤에 하면 돼, 새벽이 있잖아, 밤샌다고 생각하면 시간이 많이 남았어. 생존의 위협이 느껴질 때까지 미루고 또 미룬다.
바로, 데드라인까지.
작가에게 데드라인은 필수적인 존재다. 저 죽음의 선이 없다면 글 하나를 완성이나 할 수 있을까? 더군다나 매일 5,000자를 찍어내야 하는 웹소설은 더욱 고역이다. 오늘로 끝나는 것이 아니다. 오늘의 마감이 곧 내일의 시작이었다. 글 찍는 기계가 된 기분. 다른 웹소설 작가들은 어떻게 매일 5,000자를 써낼까? 정말 독한 사람들이다. 이럴 땐 몸이 두 개였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가만, 몸이 두 개면 어차피 서로 싸울 것 같다. 데드라인까지 미루다가 서로 네가 하라며 주먹질을 할테지. 그러다가 싸움이 격해지고 한 명이 죽어버리면 깨달을 것이다. '아, 데드라인'. 그렇게 남은 한 명은 울며 겨자 먹기로 마감을 집행할 테지. 남은 한 명이 죽은 건 안중에도 없고 말이다.
작가들이 그런 개고생을 겪고도 마감을 또 미루는 이유는, 어찌 됐든 일은 해결되기 때문이었다. 그게 문제였다. 괴물 같은 마감이 다가오면 어떤 초인적인 힘을 발휘해 그때까지 또 글이 나오긴 한다. 퀄리티가 어쨌든 일은 어쨌든 해결한 것이다. 그러니까 다음에 또 마감이 다가오면 '어떻게든 되겠지'라는 마음에 또 미룬다.
어쩌면 학습 능력이 가장 없는 것이 작가일지도 모르겠다.
나는 마감이 다가오면 그렇게 다른 일에 관심이 많아진다. 그렇게 게을러터졌던 사람이 갑자기 청소를 하거나
빨래, 설거지를 하고 체력을 키워야겠다며 밖에 나가 산책을 해댄다. 또, 마감을 앞둔 놈이 다이소에라도 들리면 무슨 자연사 박물관에라도 온 것처럼 모든 물건이 신묘하다. '우와, 지우개가 샤프처럼 나오네.', '디자인 머그 컵이 2천 원이라고?' 등. 그러는 동안 한두 시간이 훌쩍 지나가고 소중한 작업 시간은 점점 더 쪼그라들었다.
데드라인이 다가오면 주변에 시선을 뺏기는 것이다.
그렇다.이 다가오면 나는 고양이가 된다
마감 시간이 다가오면 나는 고양이가 된다.
주변의 모든 것들이 반짝거려 보이기 시작하고, 나는 마치 고양이가 된 것처럼 동공이 확장된 채 그곳에 관심을 빼앗기고 만다. 데드라인은 고양이를 씻기려는 주인의 마음으로 쫓아오지만, 나는 도망친다. 반짝거리는 걸 지금 당장 쫓아가야 했으니까. 너무 재밌다. 갑자기 세상이 찬란해진다. 마감이 없을 때는 온통 지루한 것투성이였는데 해야 할 일이 생기면 일상이 무슨 놀이동산이다. 그렇게 나는 고양이처럼 이리저리 정신없이 뛰놀다가 애써 무시해 왔던 데드라인이란 놈을 슬쩍 쳐다본다. 남은 시간을 보고 나는 이렇게 중얼거린다.
미-야옹. (하하, 좆됐네.)
더 이상 시간이 무시할 것도 없는 수준까지 안 남아버리면, 그제서야 난 책상 앞에 앉는다. 어디 구석에 짱박혀 있다가 밥시간 때 돼서야 어슬렁어슬렁 기어나와 사료를 와그작 씹어먹는 고양이처럼.
웃긴 건 처음에는 글 쓰는 것이 죽도록 싫은 고역이었다가, 이내 가속도가 붙으면 또 재밌어진다는 것이다. 참 작가란 존재는 이상하다. 싫었다, 좋아졌다 변죽이 들끓는다. 물론 재밌게 후루룩 쓴 글은 시간이 지난 후 다시 보면 이상할 때도 많다. 그러니까 글 쓰는 일이란 참 기묘하다. 쉬운 듯 어렵고, 재미있는 듯, 지랄 맞다.
처음 웹소설에 관심이 있었을 때, 아는 작가 형이 나에게 했던 말이 생각난다.
웹소설은 사람처럼 쓰기만 하면 돼.
그래, 난 사람이 아닌가 보다. 그래서 오늘도 난 고양이가 돼보려 한다. 마감은 직접에 하는 게 제맛이니까.
어린 왕자에도 비슷한 구절이 나오지 않는가.
네가 오후 네 시에 온다면 난 세시부터 행복해지기 시작할 거야.
나는 이걸 이렇게 해석하겠다.
네가 오후 네 시에 마감이라면 난 세시부터 작업할 거야.
고맙다, 어린 왕자.